창이 큰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중년 여성, 면접용 증명사진을 찍듯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어린 남자아이, 안경을 낀 똘망똘망한 눈빛의 어린 여자아이, 머리가 하얗게 센 어색한 표정의 노년 남성….
제주항공 참사 사흘째인 2024년 12월31일 저녁 7시, 희생자 179명 위패와 영정을 모신 무안국제공항 1층 합동분향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광판 이름이나 명단 속 숫자로 존재했던 희생자들의 얼굴과 위패가 분향소에 나란히 자리했다. 흰 천막에 가려져 있던 얼굴들이 눈앞에 보이자, 주검 수습 과정에서 울다 지쳐가던 유가족들은 다시 한번 가족의 영원한 상실을 실감한 듯 통곡을 토해냈다.
“딸!”
일렬로 긴 줄이 늘어선 가운데 한 중년 남성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와 분향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참사 희생된 딸 사진 앞에서 그를 목놓아 불렀다. 긴 줄을 의식해 오래 서 있지도 못한 채 빠져나온 그는, 옷 소매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경황없이 공항에 뛰쳐나온 듯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머리를 틀어올린 여성은 “우리 애기 어떻게 해…우리 애기 어떻게 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 중년 여성은 차례가 지나 분향소를 나왔다가, 다시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른 가족이 팔을 붙잡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거기 왜 있어. 놔, 놔. 엄마 여기 있어. 여보,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아요.” 여성은 희생된 가족의 사진 앞에서 책상을 두드렸다가, 주먹을 쥐고 자신의 다른 한쪽 손바닥을 내리쳤다. 자신의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분홍 장화를 신은 서너살쯤 돼보이는 어린 아이는 어른들이 큰 소리를 내며 울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마 옷깃을 잡았다. 엄마는 아이를 들어올려 껴안고 분향소 밖으로 빠져나왔다.
80대를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 노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바닥을 밟았다.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빠져 나오는 노인의 걸음은 엇박자로 균형을 잃어 한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그의 주변으로 “아… 아… 아…” 다른 유가족들이 가슴에 통증을 느낄 때 내는 듯한, 신음을 토해냈다.
현장에 있던 언론사 관계자들, 공무원들은 노인의 모습을 보고 눈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안(전남)=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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