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까지 신원확인 되신 분들은, (비행기) 앞쪽에 앉으셨던 분들인 건가요?”
2024년 12월29일 밤 9시30분께, 계속 울어서 눈이 빨개진 한 젊은 여성이 전남 무안국제공항의 신원확인 사망자 호명 장소 앞으로 비집고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국토교통부 피해자 가족 지원상담 창구 관계자는 “그건 모르겠어요”라고 답한 뒤 계속 바쁘게 명단을 확인했다. 그러자 “김아무개씨 있나요?” “64년생 아무개씨는요?”라는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교차했다. 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역대 최악의 항공기 참사 현장에서 아직 호명되지 못한 사망자의 가족들은 애가 탔다.
이미 신원확인이 돼 ‘셔틀버스를 타고 시신을 확인하러 가야한다’는 안내를 받은 유가족들도 참담하긴 마찬가지였다. 앳된 10대 딸이 엄마에게 “이름 불렀대. 이름 불렀대” 말하며 망연자실해 했고, 어떤 모녀는 가족의 이름이 호명되자 서로를 껴안고 오열했다. 곳곳에서 터진 울음 소리는 그저 잔혹했다.
무안국제공항 1층 출입문 앞에서 혼자 의자에 걸터앉아 소주를 입 속에 털어넣던 김경학씨는 “기자였던 94년생 딸이 비행기 앞쪽에 앉았더라. 좀 전에 신원확인이 됐다고 연락이 왔다. 같이 여행 간 사위 신원은 확인이 안 됐다. 아내가 의식을 잃었다 찾았다 해서 걱정이다. 답답해서 공항 밖으로 나와있다”고 말했다.
소방청 등 구조 당국이 2024년 12월29일 발생한 제주항공 무안참사의 사망자 179명을 수습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참사 발생 12시간이 지난 밤 9시까지 모두 88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 말은 91명의 신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유가족 수백명은 무안국제공항 대합실 현장을 뜨지 못한 채 현장에서 배부된 담요를 들고 애타게 신원확인을 기다리고 있다.
신원이 파악된 88명의 사망자는 모두 지문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명단이 확인된 유족들은 시신과 소지품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반면 아직 신원확인이 되지 않은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디엔에이(DNA) 채취소로 이동할 것을 안내받고 있다. 사고 비행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의 기체가 꼬리 칸을 제외하면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불에 탄 상황이라, 시신 훼손이 큰 경우 지문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신분증이 없는 미성년자 등은 DNA 검사로 신원을 파악해야 한다. 경찰이 사고현장에서 사망자의 DNA를 모두 채취한 가운데, 탑승자 DNA와 사망자 DNA 간 대조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긴급의뢰할 예정이다.
이날 참사는 오전 9시3분, 타이 방콕에서 출발한 전남 무안행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를 이탈해 담벼락을 들이받고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여객기는 랜딩기어 고장으로 ‘동체착륙’을 시도하던 중 사고가 났다. 국토교통부의 설명을 보면, 오전 8시54분께 무안공항 관제탑이 사고기에 조류 충돌을 경고했고, 8시59분께 사고기 기장이 관제탑에 구조요청 신호(메이데이)를 보냈다. 국토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확인 중이나, 여객기 사고 조사 기간은 통상 6개월~3년가량 걸리는 만큼, 단기간 내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에서 브리핑을 지켜보던 한 유가족은 박상우 국토부장관을 마주치자 “장관님, 진상규명 확실히 해주세요. 제발 꼭 확실히 해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이번 참사로 탑승객 181명(승객 175명, 승무원 6명) 가운데 179명이 사망했고, 생존자인 승무원 2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남도는 유가족과 협의해 12월30일 오전 11시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합동분향소를 차리겠다는 계획이다.
글·사진 무안(전남)=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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