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기존대로 사법부 판단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점을 양해해달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2심 판결이 나온 2024년 9월12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 사건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한 말이다. 약 1년7개월 전으로 돌아가보자. 대통령실은 이 사건 1심 판결 선고 직후인 2023년 2월14일 잘못 알려진 사실관계를 바로잡겠다며 입장을 냈다. 당시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가 “주가 조작꾼 이아무개씨에게 속아 그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매를 일임하다가 매매에 사용된 계좌를 회수하고, 그 후 수년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간헐적으로 매매한 것은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가 주가조작에 관여한 적은 없다”는 그간의 대통령실 해명이 1심 판결 내용과 충돌하지 않는다며 “매수를 유도당하거나 계좌가 활용됐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아울러 “김건희 여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높은 빈도로 거래하고, 고가 매수(직전가와 비교했을 때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반복해서 사들여 시세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행위)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직접 낸 내역이 있어 기소된 ‘큰손 투자자’ 손아무개씨의 경우에도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쉽게 말해, 김 여사보다 더한 사람도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김 여사에게는 더욱더 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방어 논리는 손씨가 2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힘을 잃게 됐다. 한겨레21은 이 사건 1·2심 판결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확인된 사실은 무엇인지, 최근 2심 판결이 2023년 2월10일 선고된 1심 판결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김건희 여사의 혐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규명돼야 하는지를 짚어봤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수입자동차 판매회사 도이치모터스의 권오수 전 회장이 코스닥 시장 상장 뒤 주가가 떨어진 2009년 12월23일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약 3년간, 속칭 ‘주포’(주가조작을 총괄·기획하고 실시하는 주범을 가리키는 말) 역할을 한 이씨와 전주(사업 밑천을 대는 사람) 손씨 등 다수의 공범과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주가조작은 다른 말로 ‘시세조종’이라고도 한다.
권오수 전 회장이 투자자문회사,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 등과 공모해 주가조작에 직간접적으로 사용한 계좌 156개 중 일부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보유한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다. 서울중앙지검은 2021년 10월 권오수 전 회장을 포함한 피고인 9명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김건희 여사는 피고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피고인들이 사용한 범행 수법 중 하나가 ‘통정매매’다. 주식 거래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주식을 파는(매도) 사람과 그 주식을 사들이는(매수) 사람이 서로 짜고 주식을 매매하는 행위다.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전인 2008년 12월께부터 이 회사 비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초기 투자자다. 도이치모터스 제품 및 디자인전략팀 이사를 지냈을 만큼 권오수 전 회장과도 잘 아는 사이다. 권오수 전 회장은 주가조작 시작 후인 2010년 1월께 투자자인 김건희 여사에게 ‘주식을 관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며 이씨를 소개했다. 이후 김건희 여사는 10억원이 입금돼 있던 신한투자증권 계좌에서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매를 이씨에게 일임했다. 이씨는 김건희 여사를 만나기 전인 2009년 11월께 권오수 전 회장으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 관리와 시세조종을 의뢰받고 주가조작을 주도적으로 실행한 인물이다.
1·2심 재판부는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 6개 중 3개 계좌(대신증권·미래에셋증권·디에스증권)가 주가조작에 사용된 점을 인정했다. 대신증권 계좌는 권오수 전 회장 쪽이, 미래에셋증권·디에스증권 계좌는 투자자문회사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쪽이 시세조종에 이용했다. 블랙펄인베스트먼트는 2023년 7월20일 폭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아무개 상병의 소속 부대 지휘관이었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명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청탁한 인물로 지목된 이종호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다.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직원이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김건희’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파일엔 김건희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의 주식 잔고와 인출 내역이 기재돼 있었다. 법원은 블랙펄인베스트먼트가 관리한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를 “피고인 이종호 전 대표가 직접 운용하여 시세조종에 이용한 계좌”로 판단했다.
이처럼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상장 전부터 이 회사에 투자했고,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된 사실은 법원에서 모두 인정됐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가 권오수 전 회장 등 주가조작범들의 권유로 주식을 거래한 정황을 보여주는 녹취록이 2심 판결문에 새로 등장했다. 다음은 2010년 1월25일 김건희 여사와 신한투자증권 쪽과의 통화 녹취록이다. 단 아래 김건희 여사 명의 신한투자증권 계좌는 주가조작에 사용된 계좌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담당자: 아, 네, 이사님. 지금 4만 주 샀고요. 2439원이고, 되면 정가에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네, 알겠습니다.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담당자: 예예예.
김건희 여사: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 예.
통화는 다음날(2010년 1월26일)에도 이뤄졌다.
담당자: 아, 네, 이사님. 네네. 지금 2440원까지 8천 주 샀고요, 추가로.
김건희 여사: 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
담당자: 네네. 추가로 2440원까지 그렇게 사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 사면 문자로 수량과 가격 보내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네, 그러세요.
2심 재판부는 위 통화 내용을 살폈을 때 “김건희 여사가 해당 계좌를 증권사 직원에게 거래를 일임시켜두었다거나 증권사 직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권오수 전 회장 등의 의사로 운용되고 있음이 확인될 뿐”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권오수 전 회장 등’에는 김건희 여사 명의 신한투자증권 계좌를 관리한 이씨도 포함된다.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보유한 자신의 계좌들이 주가조작에 이용된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그의 계좌가 주가조작 밑천으로 사용됐음은 분명하다. 피고인이 아님에도 김건희 여사 이름은 이 사건 1심 판결문(이하 별지 제외)에서 37회, 2심 판결문에서는 87회 등장한다. 이 사건에서 전주 역할을 한 또 다른 인물로 손씨가 있다. 손씨는 2010년 8월께 이 사건의 또 다른 ‘주포’ 김아무개씨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수를 권유받고 본인과 배우자 명의 계좌를 이용해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손씨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손씨는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관하여 이른바 ‘작전’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긴 하나, 다대한(많고 큰) 자금을 동원해 공격적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그중 일부 매수주문이 고가 매수되거나 우연히 통정매매로 분류됐을 뿐”이라며 “손씨는 큰손 투자자 혹은 이른바 전주에 해당할지언정 피고인들과 공모하여 시세조종 행위에 가담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해 손씨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을 용이하게 해 이를 방조한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 적용했다. 2심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다.
앞서 본 것처럼 대통령실은 1심 재판부가 손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을 말하며 김건희 여사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손씨에게 유죄(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를 선고했다. 손씨가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결을 유지하면서도 공소장 변경으로 추가된 방조죄는 있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손씨는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김씨가 시세조종 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직접 운용하는 계좌와 배우자 명의 계좌를 이용해 2010년 10월21일께부터 2012년 9월5일께까지 주가 부양을 용이하게 하고, 주가 하락 시기에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도하지 말아달라는 김씨의 요청을 일부 수락해 주가 하락 방지를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사건 시세조종 행위 범행을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손씨는 김씨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들을 보냈다. “오늘 또 사기 치면 용서 안 한다”(2012년 3월21일) “너 어떡할 거야. 나까지 이 수렁에 빠지게 해놓고”(2012년 3월29일) “네가 조금이라도, 인간이라면 상황이 이러면 천벌 받아. 하나라도 해결해줘야지, 하나라도”(2012년 4월6일). 2심 재판부는 손씨의 이런 태도를 “단순히 종목 추천을 받아 자기 책임하에 투자한 사람의 태도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봤다.
결국 김건희 여사의 혐의 여부를 가르는 건 김건희 여사가 권오수 전 회장과 이종호 전 대표, 주포 이씨와 김씨 등과 주가조작을 공모하거나 가담했는지, 자신의 계좌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한다는 사실을 최소한 미필적으로나마 알았는지, 주식을 거래할 때 이종호 전 대표 등 주가조작범과 상의한 사실이 있는지다. 검찰은 2020년 4월 이 사건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로 지금까지 햇수로 4년이 넘도록 김건희 여사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김건희 여사가 이종호 전 대표와 2020년 9월23일부터 10월20일까지 40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제이티비시(JTBC)가 보도했다. 당시는 검찰이 이 사건 수사를 본격화한 시점이다. 제이티비시는 또 이종호 전 대표와 함께 김건희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디에스증권 계좌를 주가조작에 이용한 인물로 지목된 민아무개씨에게 이 사건 주포 김씨가 보낸 편지 내용도 보도했다. 편지에는 “잡힌 사람들은 구속기소가 될 텐데, 내가 가장 우려한 김건희 여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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