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높다란 담장이 보인다. 그 너머에 축구장과 농구장, 수영장까지 갖춘 7천 평 규모 캠퍼스가 있다. 1천 명 넘는 학생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교직원 126명이 일한다. 연간 학비가 3천만원 수준이나 입지가 좋아 매년 입학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2006년 외국인 투자 활성화 목적으로 세워진 외국인학교인 ‘용산국제학교’다.
용산국제학교는 정부와 민간 기업의 합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를 적극 유치하려면 외국인 자녀 교육기관도 잘 갖춰야 한다는 이유였다. 건축비 350억원 가운데 100억원을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고 학교 부지도 서울시가 50년 무상 임대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코리아외국인학교재단’이라는 재단법인이 출범해 학교를 설립하고 재원을 모았다. 현재는 재단이 학교 기금 관리 위주로 맡고, 실질적인 학교 관리·운영은 국제크리스천학교(NICS)라는 기관이 위탁받아서 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이 학교가 정작 한국계 교사를 채용 과정에서 차별한다는 내부 고발이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4년 4월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진정을 접수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외국 국적과 달리 한국 국적이거나 한국인 배우자를 둔 사람, 재외동포 등은 기간제 계약직으로만 고용하고 체류비 등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전·현직 직원 7명이 진정을 냈다. 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겨레21>이 전·현직 교사들과 학부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문제 제기한다고 학교가 정책을 바꿀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나 더는 다른 교사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 용기 냅니다.” 진정인 ㅂ씨가 말했다. 그는 재외동포 비자(F-4·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에게 부여) 소지자란 이유로 채용 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는 저를 ‘LDH’로 분류해 계약기간을 2년 미만으로 정하고 체류비 등도 주지 않았어요. 실력이 아닌 인종으로 제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차별하는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죠. 이런 식의 분류는 불합리하다고 했더니 학교는 ‘싫으면 나가라’ ‘다 알고 계약한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용산국제학교의 교직원 지침을 보면, 학교는 교사를 ‘ODH’(Overseas Direct Hire·국외취업자)와 ‘LDH’(Local Direct Hire·국내취업자) 두 유형으로 나눠 뽑는다. ODH는 전문직 외국인 취업비자(E-7)를 보유한 외국인 교사다. 고용 기간에 제한이 없고 주거비와 항공편 등 복리후생을 제공받는다.
반면 한국인 여권을 가진 자(한국 국적자)와 한국인 배우자를 둔 자(F-6비자 보유자), 재외동포(F-4비자 보유자) 등은 LDH로 분류된다. 주로 한국에 장기체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2년 미만 기간제 계약만 가능하고 갱신이 불가하다. 계약서를 쓸 때 아예 ‘계약 갱신 불가함을 인지하고 동의했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 주거비 등 복리후생도 제외된다.
최근엔 한국인 교사를 아예 채용에서 배제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전직 학교 관계자 ㄴ씨는 “교사 채용 시기가 되면 교장이 ‘한국인을 뽑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임원들에게 말했다. 실제로 아이비리그 나온 실력 좋은 교사를 몇 번 추천해봤는데 한국인이면 면접 연락조차 주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용산국제학교 쪽은 구체적인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다만 “관련 부처의 질의에 대해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외국인학교의 설립 목적과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충분히 소명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해당 부처가 내부 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하기 어려운 점 너그러이 이해해달라”고 했다.
교사 채용을 한국 국적 및 비자와 연관 짓는 이유가 뭘까. 교사들은 한국에 장기체류할 가능성이 있는 교사를 학교가 부담스러워한다고 본다. “예전에 어떤 한국인 교사가 부당해고를 당해 소송을 낸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 ‘한국인 교사는 채용 안 한다’는 방침이 명확해졌죠. 아무래도 한국 교사들이 외국 교사들보다 학교에 애착도 많이 갖고 이것저것 바꿔보자고 의견도 많이 내는데, 학교가 그런 부분을 부담스러워해요. 한 번은 ‘경험 많은 사람은 불평이 많다. 차라리 초짜 교사를 쓰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NICS(학교 운영 관리 주체) 쪽이 밝힌 적도 있고요.” ㄴ씨가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한국에 아무런 애정도 없이 그저 모험 삼아 오는 외국인들만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부당해고 사건은 2017년 있었던 일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재미동포 교사가 계약 기간 만료 전에 해고된 것이다. 그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사건 진행 도중 학교와 합의했지만, 이 사건 이후 한국계 교사에 대한 채용 배제가 명확해졌다고 교사들은 본다.
반면 용산국제학교는 ‘교사 길들이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학교는 <한겨레21>에 “교원 모집 및 채용 절차와 전혀 무관하고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학교는 교원의 모집 및 채용 절차 과정에서 법령은 물론 학교 설립 이념과 역할 수행에 어긋남이 없도록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교사들의 주장대로 학교가 한국 국적 등을 이유로 채용 불이익을 준다면 고용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 근로기준법과 고용정책기본법 등은 성별과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정한다. 노동법 위반으로 다퉈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실명을 밝히기 꺼린 진정인들이 인권위 조사를 택했다. 실명 접수를 해야 하는 노동부와 달리 인권위 진정은 익명도 가능하다.
이 학교의 채용 과정은 국적 외에 종교와 문화권에 따른 채용 차별 소지도 있다. 용산국제학교 교사 채용 절차를 진행해보면, 기독교인이 아닌 자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가” “아래의 신앙 선언문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를 클릭하면 다음 채용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식이다. 또 지원자에게 서구권 대학 학위 보유 여부를 물으며 “그렇지 않으면 전형을 끝낼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인데 마치 기독교재단 학교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해마다 교사가 나가니까 아이들이 제일 상처받습니다. 수학 정말 잘 가르치던 교사도 최근에 떠났고요. 한국인이면 아무리 실력 좋고 아이들한테 인기 많아도 2년 안에 떠나야 해요. 수업 스타일도 매번 달라지니까 학생들이 혼란이 크죠. 왜 이렇게 하냐니까 ‘너같이 경험 많은 사람 데려오면 불평만 한다’는 거예요.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죠.” 또 다른 전직 교사 ㄷ씨가 말했다. 그는 “다른 학교에서도 이렇게 드러내놓고 채용 차별하는 사례는 들어보질 못했다”고 말했다.
잦은 교사 교체에 학부모들도 불만이다. 최근까지 이 학교로 자녀를 보냈던 학부모 ㄹ씨는 이렇게 말했다. “매년 교사들이 나가니까 아이들이 눈물바다예요. 교육의 질도 떨어지죠. 빈자리 메운다고 학교가 최근에 또 무더기로 외국인 교사를 채용했는데, 그 사람들이 수업시간에 유튜브 틀어놓고 강의한다는 거예요. 발음도 알아듣기 어렵다고 아이가 과외를 따로 해달라더군요. 더는 거기 둘 수 없어서 애를 유학 보냈어요.” 그는 “이미 외국인 투자자 자녀 상당수는 교육의 질에 실망해 떠났다. 재단과 운영기관이 교육에 신경 쓰지 않으니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학교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덧붙였다.
학교와 학부모 갈등은 최근 들어 극에 달했다. 2023년 5월 교사 경력과 자격이 없는 비교육자 출신 교장(총감)이 부임한 게 계기였다. 용산국제학교 학칙을 보면, 교장은 2년 이상 교사 경험이 있고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 운영관리기관인 NICS 쪽은 그와 관련이 없는 재무 관리 쪽 임원을 총감(Head Master)으로 임명했다. 외국인학교는 교육과정별로 교장을 따로 두고, 그 상위 직책으로 총감을 둔다. 교장들의 교장인 셈이다. 그해 5월 학부모 300명이 “학칙 위반”이라며 교장 해임 탄원서를 학교와 재단에 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에 대해 학교 쪽은 “학교의 운영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자가 곧 ‘교장’은 아니다. 영어로 ‘Principal’인 사람만 학칙상 교장에 해당한다”며 학칙 위반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교사와 학부모는 재단 이사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운영기관인 NICS와도 계약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단 이사회는 학교 운영에 전혀 관심이 없고 NICS는 교육의 질보다 금전적 이득에만 관심이 있다”(학부모 탄원서)는 이유다. 학교의 각종 인사 결정 주체로 지목되는 NICS와 학교 재단은 2026년까지 위탁계약 관계다.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재계약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NICS는 최초 선정 당시에도 불투명한 선정 방식으로 적격성 논란이 있었다.(제628호 ‘용산국제학교에 국제적 반발!’) 학부모들은 재단 이사장인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앞으로도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재단은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겨레21>의 채용 차별 관련 질의에도 “학교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용산국제학교만의 일일까. 노골적 채용 차별까진 아니어도 교사를 단기 계약직으로 쓰고 내보내는 악습은 다른 외국인학교에서도 느는 추세라고 학부모 ㄹ씨는 말한다. “우리나라 노동법상 교사와 2년 이상 계약하면 노사 문제가 있으리라는 걸 학교들끼리 많이 공유한 상태예요. 그래서 계약 갱신 불가를 원칙으로 삼죠.”
정부 돈과 서울시 땅이 무상으로 들어갔어도 이 학교를 감시하는 정부부처는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용산국제학교가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사립학교’이므로 서울시교육청이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립학교법 조항 상당수가 외국인학교 적용 제외라 적극 개입하기 어렵다. 제출 받는 서류도 단순 임면 보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국인학교는 자율적 운영을 이유로 사립학교법에 따라 교사 재임용을 객관적으로 심사할 의무 등을 면제 받는다. 학교 재단의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비영리법인 규정과 재단 정관에 따라 시설·재단관리에 필요한 재단의 사업계획 등을 주기적으로 보고받으나, 이외에 교육 감독은 담당이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상업적 목적에 치중해 외국인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2024년 2월에도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또 다른 외국인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사건을 대리한 노무법인 로앤의 문영섭 노무사는 “교육당국인 교육부가 학교의 비위를 살펴야 하는 것은 물론, 법인 설립 취소 권한까지 가진 산업부도 학교 재단의 공익 저해 행위를 살펴야 한다. 외국인학교라는 이유로 국내법을 손쉽게 회피하는 무법지대로 놔 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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