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파리’는 어떤 명사입니까?’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걸 묻는 것처럼 보였다. 삼색 연기로 사라져간 프랑스 국기 퍼포먼스로 시작된 사상 초유의 스타디움 밖 개막식은 파리 전역을 무대로 4시간 동안 이어진 거대한 동시다발적 콘서트였다. 누가 주인공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형식이었다. 구성이 매끄럽지 않아 어떤 장면과 다음 상황은 제대로 이어 붙지 않았고, 모두가 같은 광경을 볼 수 없는 희한한 경험 속에서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기도 했다. 그 속도감은 때때로 지루하기도 했는데, 이를 참다못한 브이아이피(VIP)들이 현장을 떠나기도 했다(날씨도 안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배를 타고 센강에 입장한 선수들이 서로 혹은 미디어로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내가 보고 있는 장면과 같은 것인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움짤’ 스코어로 기억하라?
확실히 다른 개막식이었다. 그동안 올림픽 개막식은 원형 스타디움이란 단일한 공간에서 세계인의 집중과 응시를 바탕으로 구성되던 것이었다. 우리끼리는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1988 서울올림픽의 굴렁쇠 퍼포먼스가 이 집중과 응시를 탁월하게 배반해 시각적 통쾌함과 청각적 역설을 만들어낸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개막식은 그 배반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못해 아예 개막식이란 형식 자체를 해체하거나 혹은 분절했다. 원형 스타디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파리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긴 퍼레이드 개막식을 택했고, 그 의도는 명확히 각각의 사람들에게 개막식 전체가 아니라 파리를 배경으로 한 각각의 ‘움짤’로 이번 개막식을 기억하라는 권유처럼 보였다.
익숙하지 않아서 뭔가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일감에 흠부터 찾고 있는 심보를 억누르며 이 개막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골몰했다. ‘프랑스는 역시 아방가르드(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 운동)인가’를 읊조리다가, 아니다 오히려 투명한 것이 아닐까, 보이는 바 그대로 프랑스는 이걸 하고 싶어서, 끝내 이 광경들을 전시하고 싶어서 파리에서 올림픽이란 스펙터클을 100년 만에 재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개막식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어떤 이들은 열광하고 또 어떤 이들은 냉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개막식에 대한 평가가 온탕과 냉탕 사이를 오가는 동안 편집된, 부분적으로 짜깁기된 개막식 동영상들의 조회수만 상한가를 치고 있다. 주최 쪽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우리는 기록적인 ‘움짤’ 스코어로 올림픽 개막식을 기억하고 있다. 올림픽이 개막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센강과 파리 시내 명소 전역을 무대로 전개된 개막식은 여전히 ‘소비’되고 더 소비될 것이다.
이런 올림픽 개막식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상상한 적이 있는가. 스타디움이란 협소한 공간을 벗어나 도시 전체로, 참가한 선수들의 축제라는 제약을 축소하거나 해체해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지켜보는 이들이 더 충만하게 개막식과 파리를 볼 수 있게 만든 이 광경이야말로 어쩌면 프랑스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100년 만의 파리 개회식은 아니었을까.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국가주의적 한판 스펙터클이 디지털 시대,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 개인들의 시대에 대한 적응을 비로소 끝냈음을 보여줬다. 그 콘서트의 회로는 개막식을 본 우리가 각자의 프랑스를 생각하고 알고 있는 파리의 문화를 말하고, 그 앎과 낯섦들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다 끝내 그게 모두의 놀이가 되어 결국 파리의 알고리즘에 참전하도록 설계된 쇼다.
1924년부터 외친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그 시절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나도 심각한 ‘올림픽 키드’였다. 하지만 그렇게 올림픽에 도취됐던 모든 때 한 번도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와 국가를 여기를 사는 나의 세계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란 권유를 받진 못했던 것 같다. 엄마의 오랜 앨범에는 1988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을 열렬히 환영하던, 낯선 8살 꼬마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땐 그 올림픽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몬주익의 영웅이 오르막을 오를 때, 내 생애 최대치의 도파민을 쏟아붓고 함께 탈진하며 우리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우리가 알고 있는 이 올림픽 표어가 1924년 파리올림픽 당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하다보면 나아갈 수 있으리란 소년의 긍정 같은 마음을 품었지만, 그 개막식에 유럽의 문화 수도로 일컬어지는 바르셀로나가 어떻게 녹아 있었는지는 솔직히 평생 갈 수 없는 나라의 이야기 같아서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정확히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던 쓰라렸던 패배의 기억들도 마찬가지다. 그때나 지금이나 올림픽은 곧 세계의 무대일 뿐이니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내 마음속 올타임 넘버원 선수’가 이끌던 한국 농구대표팀이 이름도 생소하던 아프리카 나라에도 참패하며 전패를 기록했을 때, 언뜻 알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세계라는 벽’ 앞에서 내가 증발하는 기분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건 거기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어느 도시여서가 아닌 그 나라의 대표팀 ‘드림팀’에 들었던 주눅이었다.
형식을 헐어버린 선택과 헐려버린 형식
오히려 우리에게 올림픽이란, 올림픽에 대한 도취란, 꽤 오래 우리 안의 ‘국가주의 증후군’에 따른 집착이었다. 그러다보니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와 도시에 관한 이야기와 감상은 본게임이 시작되기 전 양념처럼 전해지던 교양일 뿐이었고,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메달 색깔이 정해지는 본게임이 시작한 뒤 우리 선수가 이기고 지고,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국가의 선수가 이기고 졌다는 것에서 보상받고 만족감을 채우는 승부의 세계였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둘러싼 첨예한 호불호와 다양한 향유 양상을 보면서 이제 다른 방식으로 올림픽을 지켜볼 요령이 생겼단 생각도 든다. 물론 꽤 오래전부터 패배한 선수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승패보다는 승부 자체를 즐기자는 사회적 감각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번 올림픽에 이르러서 우리는 본격적이고 보편적이게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의 정치적 역사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개최 도시의 과거와 오늘을 같이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전에는 ‘평론’의 이름을 단 감식안 좋은 전문가들이 그걸 가려냈다면, 보편 명사 파리에 이르러서는 그게 보편 다수의 집합적이면서도 개별적 비평 활동으로 전환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게 매체 발언권을 가진 전문가 비평의 시대에서 에스엔에스 개인의 시대로 전환했음을 상징하는 모습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개막식을 역대 최악의 개막식으로 꼽으며 화려함만 강조된 ‘국뽕쇼’라고 나무란다. 또 다른 이들은 프랑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적 역량과 예술적 감각을 역사 도시 파리의 현재와 잘 버무려 보여줬다고 평한다. 서로 다른 감식안들이 이처럼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 이유는 형식을 헐어버린 선택과 헐려버린 형식을 자유롭게 논할 수 있게 된 미디어 환경에 개인들이 조응해 만들어낸 현상이다.
올림픽 말고 파리를 물어야죠
누군가에게 파리는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에 맞선 노동자들이 파업해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도 기꺼이 인정하는 투쟁의 도시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명품 쇼핑과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지는 소비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가 ‘유러피안’이라고 상정하고 부르는 예민한 교양인들이 몰려 살고 있을 곳이지만, 최근 현대화를 이룬 제2세계 국가들에 비해 낡고 낙후된 도시 인프라를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어떤 이들은 당장 〈오페라의 유령〉과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보러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가졌을 것이고, 소수자들에 대한 정치적 포용을 강조하는 장면이 연달아 등장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이란 문제에 핏대 세운 공격을 하고 싶은 호승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건 프랑스인도 우리도 살고 있는 바로 오늘의 문제, 박제된 역사문화 공간으로서의 파리가 아닌 연결된 도시로 새롭게 등장한 파리란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개막식은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 개막식이 물었다.
‘왜 100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느냐고요. 아니요. 질문이 잘못됐어요. 올림픽 말고 파리를 물어야죠. 당신에게 파리는 어떤 명사입니까?’
김완 <한겨레>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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