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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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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왜 ‘노잼 도시’가 아닌가

국내 여행 선호 도시 순위에서 대전은 8위… 지역에 관한 잘못된 프레임을 깨려면 결국 ‘서울 문제’를 풀어야
등록 2024-07-12 20:28 수정 2024-07-19 08:29
성심당은 대전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2024년 6월20일 평일 낮에도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 김규원 선임기자

성심당은 대전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2024년 6월20일 평일 낮에도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 김규원 선임기자


대전은 ‘노잼 도시’인가? 대전의 대명사가 된 ‘노잼 도시’, 노잼의 대표 도시가 된 ‘대전’. 어떻게 이 둘은 연결됐고 단짝이 됐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얻으려고 2024년 6월19일 대전으로 향했다. 고속열차(KTX)를 타고 1시간 남짓 만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먼저 대전역의 동쪽에 있는 소제동 관사촌으로 향했다. 대전의 대표적 힙플레이스(세련된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원래 일제 때 철도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을 위한 일본 양식 관사촌인데, 해방 뒤 한국인들이 들어가 70년가량 살았다. 현재는 일본식 관사가 40채가량 남아 있다.

2015년께부터 ‘익선다다’와 같은 사업자들이 관사를 세련된 카페나 음식점으로 개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제동 관사촌은 코로나19가 극성이던 2020년 전후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대전의 대표 방문지로 꼽혔다. 일본식 주택이 카페나 음식점으로 개조됐다는 점에서 복고·이국 취향을 자극했다. 대전역에서 바로 걸어갈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대전은 빵의 도시?

이곳에서 지역 창업가, 부동산·음식 사업자로 활동 중인 유준상씨를 만나 “대전이 노잼 도시냐”고 물어봤다. 그는 대전이 노잼 도시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전만의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대전에 있는 것은 다른 도시에도 다 있다. 바다가 없어서 강원도 양양처럼 서핑을 할 수도 없고, 서울 성수동, 연남동처럼 다양한 문화나 자유로운 분위기도 없다.”

그래서 “여기 소제동 관사촌은 대전만의 독특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건 그렇다”고 했다. “철도 관사촌은 전국에 매우 드물고, 여기 오면 관사를 개조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레트로(복고)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성심당은 대전만의 독보적인 빵집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역시 “그렇다”고 했다. “요새 성심당 왔다가 소제동 관사촌 등 대전을 여행하는 사람이 많다. 성심당 빵 덕에 대전이 빵의 도시가 됐다.”

이번엔 대전역을 가로질러 서쪽 구도심 쪽으로 향했다. 여행자들이 대전에서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은 구도심인 은행동 쪽이다. 은행동에 대전 여행의 심장인 ‘성심당’이 있기 때문이다. 성심당은 은행동에서 본점과 케익부띠끄점, 옛맛솜씨(전통 과자), 문화원(음료, 기념품), 우동야(일식), 플라잉팬(양식), 테라스키친(경양식), 삐아또(이탈리아 음식) 등 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성심당 빵집은 은행동 외에도 대전역, 대전 롯데백화점, 대전컨벤션센터(DCC) 등 3개 매장이 더 있다.

성심당은 2023년 매출액 1243억원, 영업이익 314억원으로 대기업 빵집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최대의 빵집이다. 대전 이외에는 지점을 내지 않는데도 국내 사업 영업이익으로는 2023년 양대 제빵 대기업인 뚜레쥬르(214억원)와 파리바게뜨(199억원)를 앞섰다. 성심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정규직 960여 명, 비정규직을 포함해 1200여 명이다.

대전을 찾아간 6월19~20일 평일 대낮에도 성심당 본점과 케익부띠끄점 앞에 수십m의 줄이 서 있었다. 성심당을 찾는 것은 대전 방문자들에겐 일종의 ‘성지순례’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심당 빵집이 전국에서 오직 대전에만 있다는 점도 이런 성지순례의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성심당 11개 매장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1만7천여 명, 1년엔 6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성심당의 경영혁신본부 김정숙 부장에게 “대전이 노잼 도시냐”고 물었다. 김 부장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노잼 도시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전은 소박함과 따뜻함이 있는 도시다. 철도·도로 교통의 중심지여서 누구나 들르게 되는 도시이고, 전국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성심당 빵뿐 아니라 칼국수나 두부두루치기, 한화 이글스도 엄청난 인기가 있다. 매력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노잼 도시냐”고 물었는데, “매력 있는 도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소제동 철도 관사촌은 대전의 대표적인 힙플레이스로 알려져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소제동 철도 관사촌은 대전의 대표적인 힙플레이스로 알려져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도시가 꿀잼이어야 할까

성심당 주변의 은행동은 본래 대전 원도심의 중심지여서 문화공간이 많다. 예를 들어 가톨릭문화회관, 대전창작센터, 대전평생학습센터, 대흥동 성당 등이 전통적 문화공간이라면, 독립서점 ‘다다르다’는 비교적 최근 들어선 문화공간이다. 현재 은행동을 중심으로 원도심엔 소극장 8곳, 극단 20여 곳, 갤러리 20여 곳, 라이브 클럽 6곳, 예술영화관 1곳이 있다고 한다.

‘다다르다’의 김준태 대표에게 “대전이 노잼 도시냐”고 물었다. 그도 이 질문에 긍정하지 않았다. “도시의 정체성은 다양한데, 이를 획일화하는 말이다. 타인이 경험한 것을 나도 똑같이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전에도 너무나 많은 자원이 있는데, 성심당만 알려졌을 뿐이다. 사는 동네, 도시를 스스로 탐색하면 어디서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김 대표는 ‘노잼 도시’라는 말의 뿌리를 서울에서 찾았다. “‘노잼 도시’는 서울의 우월감, 비수도권의 열등감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남산타워가 있는데, 다른 도시에도 다 남산타워가 있어야 하나. 각 도시의 정체성이 다르고, 재미가 다른데 말이다. 서울뿐 아니라 대전에도 재미를 느낄 만한 충분한 문화 인프라가 있다.”

대전의 대표적 음식인 두부두루치기. 김규원 선임기자

대전의 대표적 음식인 두부두루치기. 김규원 선임기자


대전 중앙로 옛 충남도청 부근의 한 두부두루치기 음식점에서 대전 출신 도시·교통 전문가인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을 만났다. 일제 때 지방에 지은 대표적인 공공 건물인 옛 충남도청은 머잖아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으로 바뀔 예정이다. 또 두부두루치기는 얼큰한 칼국수와 함께 대전 사람들에게 ‘영혼의 음식’으로 꼽힌다.

두부두루치기를 먹으면서 “대전이 노잼 도시냐”고 묻자 박 소장은 “도시가 꿀잼이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노잼, 꿀잼이란 말 자체가 잘못됐다. 힙이나 핫 플레이스도 뭔지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서울의 ‘경리단길’이 인기였는데, 지금은 망했다고 한다. 그걸 따라서 망리단길, 황리단길, 행리단길을 만들었으니, 그게 오래가겠냐. 다 모래성 같은 것이다.” 노잼-꿀잼 도시라는 프레임 자체가 틀렸다는 이야기였다.

통계를 봐도 대전을 노잼 도시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게 확인된다. 2024년 6월26일 순위 조사기관인 랭키파이가 발표한 국내 여행 선호 도시 순위를 보면, 대전은 8위였다. 7대 도시 가운데 부산, 대구에 이어 3위였고, 대전 앞에는 제주, 경주, 여수 등 국내 유명 관광 도시들이 있었다. 대전은 이 순위에서 꾸준히 10위 안에 든다. 대전시는 2024년 5월 역사·문화·자연·과학·먹거리·쉼터 등 6개 분야에서 무려 43개의 도시 브랜드 자산을 발표했다.

관광 이외 도시 순위에서도 대전의 위상은 높은 편이다. 대전은 2023년 세계지식재산기구가 발표한 ‘2022년 글로벌 혁신지수' 중 과학기술 집약도 부문에서 세계 3위, 아시아 1위였다. 2021년 산업연구원이 평가한 ‘지역별 혁신 성장 역량’에선 전국 1위였다. 대전은 2023년 12월 매체 <잡플래닛>이 분석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도시’ 순위에서 서울에 이어 2위였다. 2023년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7대 도시 청년들의 ‘행복감’과 ‘삶 만족도’ 순위에서도 모두 부산에 이어 2위였다. 대전은 2024년 사회안전지수 순위에서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4위였다. 통계에서 대전은 나름 핫한 도시였다.

왼쪽부터 김준태 다다르다 대표,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김규원 선임기자

왼쪽부터 김준태 다다르다 대표,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김규원 선임기자


2015년 시작된 ‘노잼’ 밈

관계자들에게서도, 통계에서도 대전이 ‘노잼 도시’라는 점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책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를 쓴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은행동 독립서점 ‘다다르다’에서 만났다. 주 연구위원에게 “책 제목에 쓴 것처럼 대전이 노잼 도시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주 연구위원도 “대전은 노잼 도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왜 대전을 ‘노잼 도시’라고 부르는 걸까? 주 연구위원은 “‘서울 집중’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을 탁월한 것으로 여기고 서울을 지향하고 서울을 기준으로 삼는다. 뭐든 서울이 표준이 되고 지방은 아류가 된다. 지방 도시는 그 자체로 설명되지 않고 서울을 통해서만 설명된다. 결국 대전은 서울에 비춰 ‘노잼 도시’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 연구위원은 “소셜미디어 확산, 공간 소비 행태도 이런 프레임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노잼도시 대전’이란 표현을 대유행시킨 ‘지인이 대전에 온다!’는 흐름표 밈은 2015년께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4년 뒤인 2019년 대전시가 서울 광화문 앞에서 ‘대전 방문의 해’를 선포하자 소셜미디어에서 폭발했다. “감히 성심당밖에 없는 대전 따위가 ‘방문의 해’를 서울 광화문에서 선포하다니”라는 식의 놀림이 계기였다. 이후 ‘대전’과 ‘노잼 도시’는 서로 가장 중요한 연관어가 됐다. 심지어 ‘노잼 도시’는 이제 대전의 도시 브랜드처럼 됐다. 역시 무플보단 악플인가?

공간을 둘러싼 활동 변화도 ‘노잼 도시’를 만들어낸 원인이었다. 최근 청년층은 자기만의 공간·도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주 연구위원은 말했다. “원래 도시 삶의 즐거움 중 하나는 자기만의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삶의 재미를 자기 공간 밖에서 찾으려 한다. 사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대신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곳을 찾아가서 돈으로 소비한다. 신상(새 상품)만 따라다닌다.”

‘지방 도시는 노잼’이란 프레임은 청년 인구의 수도권 집중으로 더 강화된다. 청년들이 소셜미디어 활동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국가통계포털의 ‘국내 인구 이동’ 통계를 보면, 2023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전체 인구는 4만6869명인데, 20대는 5만6911명이 순유출됐다. 20대를 제외한 세대에선 1만42명이 거꾸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순유출됐다. 다시 말해 20대의 수도권 순유출이 없었다면 현재 전국의 인구는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순유출된다. 그러나 20대의 수도권 집중은 수십년 동안 계속된 일이다. 20살 전후의 대학 진학, 20대 중후반의 취업이 주요 원인이다.

대전의 대표적 근대 건축물인 옛 충남도청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으로 바뀔 예정이다. 대전광역시 제공

대전의 대표적 근대 건축물인 옛 충남도청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으로 바뀔 예정이다. 대전광역시 제공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방 도시에

자원의 수도권 집중과 수도권의 전국 지배, 청년층의 지속적 수도권 인구 이동, 소셜미디어의 확산, 공간 소비 행태의 변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보인다. 과연 이런 흐름 속에서 대전과 같은 지방 도시들이 ‘노잼 도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이 거대한 흐름을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잼 도시’ 프레임을 깨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박용남 소장은 ‘꿀잼 도시’ 대신 ‘포용하는 도시’를 제안했다. 포용하는 도시는 사회적 약자가 동등한 기회를 누릴 공간이 많은 도시다. “지방 도시에도 도서관, 미술관과 같은 공공 문화시설, ‘BRT’(간선급행버스)나 보행자 전용 공간 같은 공공 교통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공공 문화시설을 만들고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게 된다”고 말했다.

주혜진 연구위원도 문화적 측면을 강조했다. ‘노잼 도시’ 프레임은 부당하지만, 지방에서도 문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문화예술은 주류 문화와 하위 문화(서브컬처)가 다양하게 발달했는데, 아무래도 지방엔 다양성이 부족하다. 이것이 청년들이 지방 도시를 떠나는 한 원인이 된다. 지방 대도시에도 국립 문화시설이 필요하고, 지역 축제도 필요하다. 또 청년들의 자생적인 문화 활동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노잼 도시 프레임의 원인 중 하나인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을 막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제안자인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서울의 대학으로 청년층이 빠져나가지 않게 전국의 9개 거점 국립대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9개 거점 국립대에 대해 10년 이상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면 거점 국립대들이 1970~1980년대의 높은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면 청년들도 자신의 고향을 덜 떠나게 될 것이다.”

특히 김 교수는 전국의 대도시에 좋은 대학을 키워야 인재와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조적 도시가 되려면 창조적 기업과 대학, 인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창조적 인재가 있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 대전뿐이다. 여기에 좋은 대학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창조적 인재와 대학, 기업을 수도권에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지 못하면 결국 한국은 불균형 발전으로 실패하고 말 것이다.”

‘서울을 파묻어야 한다’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다른 원인인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현재 가장 효과적인 일자리 만들기는 수도권 공공기관들의 2차 지방 이전이다. 이미 공공기관 1차 이전을 통해 각 지역의 인재들이 그 지역에 자리잡는 효과가 검증됐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공약이니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역에 좋은 대학이 있으면 인재가 모이고 창업도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좀더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주혜진 연구위원은 ‘노잼 도시’와 같은 잘못된 프레임을 깨려면 결국 ‘서울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서울을 파묻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모든 한국 사람의 머릿속에 서울이 너무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을 좀 잊을 필요가 있다. 대신 지방을 좀더 조명하고 노출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거기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대전=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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