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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유족 “대통령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들 왜 왔는지 이제야…”

10·29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 인터뷰
윤석열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에 분노 “대통령실, 진실 밝혀야”
등록 2024-06-29 15:23 수정 2024-06-29 23:38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가 2022년 12월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통곡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종철 전 유가족협의회 대표(오른쪽)가 울면서 조씨를 부축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가 2022년 12월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통곡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종철 전 유가족협의회 대표(오른쪽)가 울면서 조씨를 부축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 때 극우 유튜버 30여명을 초대했잖아요.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요. 본인의 힘으로 정치를 하는 게 아니고 어떤 집단과 세력을 함께 유지하면서 정치를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최근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10·29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조씨는 2024년 6월28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정말 억울하면 진실을 밝히는 게 오히려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국민들에게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며 “개탄스럽다는 말로 일축하고 지나가서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에서 흐지부지 넘기지 않고 제대로 진실을 밝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에서 윤 대통령의 ‘10·29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을 공개했다. 김 전 의장의 회고록을 보면, 2022년 12월5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이 독대하며 나눈 대화가 기록돼 있다. 당시 김 전 의장은 1달여 전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자진 사퇴를 설득했는데,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관해 지금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다.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 전 의장은 “극우 유튜버 방송에서 나오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멋대로 왜곡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어떤 부분이 왜곡됐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사과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김진표 전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김진표 전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조씨는 이태원 참사 직후 가장 먼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유가족으로서 목소리를 낸 인물이다. 이후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협의회를 만들고 앞장서서 이태원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웠지만, 최근 1년여 동안에는 건강 등의 이유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언론 인터뷰도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번 회고록과 관련해 꼭 할 말이 있다며 지한씨의 유골함이 안치된 서울추모공원을 찾은 직후 <한겨레21>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참사 직후 극우 유튜버들이 저보고 ‘북한에서 온 아나운서 같다’거나 ‘지한이가 아들이 아니다’라고 했었어요. 저와 남편을 저격한 극우 유튜버들도 많았고요.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윤 대통령이 거기에 동조한 것인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발언 진위를 밝혀야 해요.”

조씨의 말처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극우 유튜버들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았다. 신자유연대 등 극우단체와 유튜버들은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서 매일 집회를 했고, 유가족들에게 조롱 섞인 말을 일상적으로 내뱉었다. 일부 유족들은 이를 듣고 실신하기도 했다.

조씨는 김 전 의장이 회고록을 통해 윤 대통령과의 대화를 밝힌 부분에 대해선 “(늦어서)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밝혀 다행”이라고 했다. “물론 그때 얘기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얘기를 해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수면 아래로 영원히 가라앉지 않게 된 거니까요. 왜 극우 유튜버들을 취임식에 초대했는지 이제 이해도 가고요.”

조씨는 대통령실이 이번 회고록 관련 입장문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밝힌 걸 두고도 “영장청구 의뢰권같이 굵직굵직한 것들을 다 내어줬음에도 마치 특별법을 선심 쓰듯 통과시켜 준 것처럼 한 말은 황당하다”며 “(이태원 특별법에 관해) 저보다도 국민들이 아쉬운 점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존 안보다) 너무나 많이 수정되어 걱정이 많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압수·수색 영장청구 의뢰권과 불송치·수사중단 사건 자료제출 요구권 등이 빠졌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공포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특조위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한 국가의 대통령이 유튜브 등에서 제기된 음모론 수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며 “만일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은 국가의 부재로 목숨을 잃은 159명의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을 생존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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