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위장 고용한 사실이 드러난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 기업 ‘크라우드웍스’에 대해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기로 했다. 2024년 4월19일 크라우드웍스 소속 최아무개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에서 최초로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사실이 <한겨레21> 보도(제1513호 표지이야기)로 확인되면서 나온 후속 움직임이다.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ㅅ씨 등 크라우드웍스 작업자와 검수자 12명은 오는 2024년 6월7일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하기로 했다. 이들은 네이버 자회사 라인(LINE) 쇼핑 페이지의 오류를 검수하거나 네이버 일본어 사전 서비스를 유지·관리하는 등 최씨와 유사한 방식으로 일했다. 신청자들에 따르면, 회사 쪽은 이들에게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 세세하게 업무를 지시했고, 근무시간도 오전 9시30분∼오후 6시30분 등으로 미리 특정했다. 근태 기록을 의무로 남기도록 했고 허락 없이 자리를 이탈하거나 할당량을 못 채우면 급여가 깎였다. 계약서상으론 독립성을 보장받는 프리랜서였으나 실제 업무방식은 사용자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크라우드웍스 쪽은 최씨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에 대응하던 2024년 3월 말, 네이버 쪽 일감을 맡은 작업자들의 계약서를 대폭 수정했다. 기존에 명시했던 출퇴근 시간을 삭제하고 업무량도 개인 할당량에서 최저 할당량으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채팅방에 수시로 올라오던 업무 지시도 사라졌다. 문의사항이 있어도 작업자가 기존처럼 네이버 직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고, 크라우드웍스를 거치도록 했다. 최씨 사건에 대응하면서 ‘노동자 흔적 지우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이후 2024년 5월엔 아예 해당 프로젝트를 닫았다. 계약 종료 하루 전인 5월14일 통보해 작업자를 모두 내보냈다. 이후 노동자들 반발이 커지자 몇몇에게 뒤늦게 복직 명령을 내렸으나 이 역시 선별적이었다. 기간제법상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2년 이상 근무자 9명만 복직을 명령하고 2년 미만 근무자 5명은 제외했다. 복직 조건엔 ‘회사(서울 강남 소재)로 출근해야 하며 복직 일자에 출근하지 않을 시 자의적 사직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달았다. 2년 전 재택근무로 알고 이 일을 시작한 경남과 전남·전북 거주자들의 복직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조처다.
“크라우드웍스는 사쪽의 잘못을 시정하는 때조차 더 절박한 약자, 노무 부담이 덜한 약자를 선별했다.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근무조건을 사쪽이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도 계약 위반 소지가 있다.” 사건을 대리한 노무법인 로앤의 문영섭 노무사가 말했다. 사용자가 노동자 합의 없이 근무지 등 근무조건을 바꾸는 행위는 판례에 따라 부당전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크라우드웍스 쪽은 “회사는 서울지노위의 판결(판정)을 존중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완료했다. 이 외에는 구체적 답변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사업자로서 계약하는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누릴 수 없다. 연차수당과 퇴직금 등을 못 받는 것은 물론, 각종 업무상 질병에 대한 보상도 제한적이다. 문제는 최씨처럼 사실상 노동자인 이들도 사업자로 ‘잘못’ 고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기업은 프리랜서 계약을 관행처럼 고집하고 있다.
크라우드웍스도 같은 전략을 취했다가 비판에 직면했다. 2024년 4월 최씨 사건을 심리한 지노위 심문회의에서 한 위원은 크라우드웍스 쪽에 “계약 기간과 임금,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게 왜 근로 계약이 아니냐. 제가 봤을 때 이 계약서는 근로기준법을 잠탈(규제를 몰래 빠져나감)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크라우드웍스 쪽은 “프로젝트 특성상 시간을 정해야 했을 뿐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용역(프리랜서) 계약이 맞는다”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노위는 최종적으로 크라우드웍스 쪽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도 없는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파편화된 플랫폼 업계에서 어떻게 집단 대응에 나설 수 있었을까. 이는 최씨 등이 소속된 프로젝트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실시간으로 쇼핑 페이지를 고치는 업무 특성상 원청 네이버와 하청 크라우드웍스의 깨알 같은 지시가 불가피했다. 오탈자를 고쳐달라거나 경쟁사를 참고해 상품을 노출해달라는 지시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노동자를 동원하면서도 일정한 퀄리티를 내려다보니 사쪽이 근무시간을 통제하고 일일이 지휘·감독했다. 이는 오랜 기간 판례로 축적된 노동자 판단 기준(고정 근무시간, 급여 등)에 대부분 부합했다. 프로젝트 기간도 약 3년으로, 수개월에 그치는 통상의 데이터 라벨링 일보다 훨씬 길었다. 그만큼 노동자들이 해고로 받는 충격이 컸고 대응하려는 의지도 강했다.
다만 이런 사례가 데이터 라벨링 업계에 보편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통상 데이터 라벨링 업무는 계약기간이 수개월에 그치고, 임금도 건당 수수료 체계다. 한때 무료로 제공하던 작업자 교육도 이젠 유료화했다. 사용자에게 종속된 노동자라는 정황증거는 줄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라는 정황증거만 늘고 있다. 게다가 온라인 노동 특성상 노조 조직이 어렵고, 계약 해지로 앱 접속이 막히면 증빙도 힘들다. 이번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나선 ㅅ씨도 “증빙자료가 많이 날아가버렸다”고 말했다. 2년간 회사 메신저가 카카오톡-라인-슬랙-팀즈 등으로 계속 바뀌면서 관련 데이터가 함께 삭제된 탓이다.
노동자 각자가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개별적으로 증빙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적 권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2021년 한때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새로운 산업에 맞춰 확대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법 제정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엔 <한겨레>에 노동자성 판단 기구를 만드는 구상을 내놨다. 잘못된 분류로 노동자가 사회보장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현재는 노동자 범위 확대보다는 플랫폼 노동자 등을 ‘노동 약자’라는 제3의 집단으로 분류, 지원하는 ‘노동 약자 보호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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