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다. 법조계에서는 스마트폰이 ‘자백’을 누르고 ‘증거의 왕’으로 올라섰다고도 말할 정도다. 수사기관이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한둘이 아니다. 공범과 주고받은 연락, 갤러리에 남은 불법 촬영물, 지피에스(GPS)로 추적된 그날의 동선…. ‘형사사건은 증거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보니 수사기관은 수사 대상자의 스마트폰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수사 대상자들은 이를 숨기려 애쓴다.
수사기관이 스마트폰을 확보했더라도 압수할 수 있는 것은 영장 범위 내다. 더구나 최근 법원은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 정보가 가득한 스마트폰에 대한 압수에 신중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영장 범위를 넘어서는 피압수자의 스마트폰 정보를 통째로 복사해 검찰 디지털수사망(D-NET·디넷) 서버에 저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2024년 3월21일 <한겨레>와 탐사보도 매체 <뉴스버스>는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의 스마트폰 속 전자정보를 검찰이 동의 없이 통째로 복사해 디넷에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023년 9월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팀장 강백신 반부패1부장)을 꾸리고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대권 주자 윤석열’ 검증보도를 한 언론인들을 7개월째 수사 중이다. 뉴스버스는 2021년 9∼10월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던 대검 중수부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 과정에서 대장동 관련 비리 혐의를 알고서도 이를 은폐했다고 보도했는데, 검찰은 이 대표를 윤 대통령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면서 2023년 12월 이 대표의 스마트폰을 압수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검찰은 2024년 2월5일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 중 범죄 혐의와 관련된 정보만 선별하는 작업을 마친 뒤 이 대표에게 ‘압수정보 상세목록’과 함께 스마트폰을 돌려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자신의 스마트폰 전체를 복제한 이미지 파일이 디넷에 올라간 사실을 확인했다. 이 대표 쪽에서 거듭 항의하자 검찰은 2주 뒤 이 대표에게 삭제 사실을 알리면서 ‘디넷에 접속하여 업로드한 전부 복제 이미지를 삭제했다’는 확인서를 써줬다. 검찰의 스마트폰 통째 저장 사실이 보도되자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대검 내부 기준과 법리, 규정에 맞게 엄격하게 (압수물 처리가) 진행된다”며 “(디지털 증거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 스마트폰을 전부 복제한 이미지 파일을 디넷에 보관한 것이 문제없다는 취지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압수수색 등을 할 때는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근거해야 한다는 ‘영장주의’를 규정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기본권 침해가 동반되는 압수수색에 대해 제한을 뒀다. 형사소송법에는 2011년 ‘범죄 혐의와 관련이 있는 것’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항이 신설되기도 했다.
대법원도 2011년부터 전자정보 압수수색 요건을 엄격하게 보는 판례를 내놓았는데, 이때 ‘선별압수’ ‘참여권 보장’ ‘영장 제시’ ‘압수목록 교부’ 등의 원칙이 확립됐다. 여러 법원은 영장을 발부할 때 이런 판례를 반영해 만든 ‘압수 대상 및 방법의 제한’ 별지 양식을 첨부하고 있다. 이 대표가 받은 별지 양식에도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의 탐색·복제·출력이 완료된 뒤에는 지체 없이 피압수자 등에게 압수 대상 상세목록을 교부하여야 하고, 그 목록에서 제외된 전자정보는 삭제·폐기 또는 반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압수 대상이 아닌 자료는 바로 삭제 등 조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의 스마트폰 통째 보관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영장주의를 위반한 셈이 된다.
논란이 일자 대검찰청은 “공판과정에서의 증거능력 다툼의 소지에 대비”하기 위해 예규 등에 근거해 “사후 검증 등에 필요한 전자정보 이미지 파일 일시 보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검찰청 예규인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 및 관리 규정’에는 전체 이미지 파일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 예규에 대해 2021년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연구보고서(‘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대검 예규는 이미징 복제본 전부를 보관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는데, 범죄 무관 정보는 영장으로 수집이 허용된 범위가 아니므로 그 보관은 영장주의 위반으로 보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또 “‘검증을 위해’ 범죄 무관 정보의 보관이 필요한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미 대법원은 2013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 판결에서 피압수자가 ‘원본과 이미징한 매체의 ‘해시값’(디지털 지문에 해당)이 동일하다’고 확인해준 문서로 증거의 무결성·동일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남겼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절차에 참여한 수사관이나 전문가들의 증언 등으로도 무결성·동일성 증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전체 정보 없이도 증거의 무결성·동일성 입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검찰의 스마트폰 통째 저장이 ‘민간인 사찰’ 등의 범죄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2월 기준 스마트폰을 통째 복제한 이미지 파일이 디넷에 총 5만441건 저장됐고, 검찰은 그중 3만5891건을 폐기해 1만4550건을 보관하고 있었다.
문제는 당사자도 자신의 어떤 자료가 디넷에 보관돼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검찰이 통째 저장한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법원 판결문을 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의 ‘장충기 문자’, 이석채 전 케이티(KT) 회장의 채용비리 사건 등에서 앞선 다른 사건에서 압수한 스마트폰 전자정보를 검찰이 디넷을 압수하는 방법 등으로 확보해 ‘재활용’했다는 정황은 확인된다. 압수된 전자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대표와 유사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뉴스타파> 기자들은 디넷에 올라간 자신의 압수정보 접근 로그 기록 등을 요구하는 소송 제기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실태 파악을 위해서는 수사나 조사가 필요하다. 조국혁신당은 검찰의 디지털 증거 보관 및 폐기 실태를 알기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검찰 관계자 등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정혜민 한겨레 기자 jhm@hani.co.kr·전광준 한겨레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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