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26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주황색 점퍼를 입은 이영문(74)씨와 허경주(45)씨는 기자회견 30여 분 동안 턱에 힘을 주며 이를 몇 번이나 악물었다. 속 깊은 곳에서 비어져나오는 울음을 삼키기 위해서였다. 닷새 뒤인 3월31일은 철광석 26만t을 실은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2017년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두 동강 나 침몰한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배에 탔던 선원은 24명으로, 2명은 구조됐다. 미수습 선원 22명 가운데 한국인 선원은 8명이다. 이 배에 이씨의 아들이자 허씨의 동생인 허재용(당시 32살)씨가 이등항해사로 타고 있었다. 가족들이 입은 주황색은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면 수압으로 자동 팽창해 바다에 뜨는 구명벌(구명뗏목)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정말 오늘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벌써 7년입니다. 2017년 3월31일 너무나 갑작스럽게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동생을 찾아오겠다고….”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대책위) 부대표는 마이크를 손에 쥔 뒤에도 수초간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이날 대책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예배’ 준비위원회,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등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희생자 7주기 일정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했다. 허씨의 가족은 7주기인 3월31일 오전 서울 중랑구의 한 사찰에서 고인의 넋을 기리는 천도재를 지낸다. 오후엔 기독교계가 대책위와 함께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한다.
대책위는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뒤 7년 만에 처음으로 ‘주기’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이제까지는 참사 발생 1년이 돌아왔다는 뜻으로 ‘년’을 써왔다. 주기는 고인이 떠난 날인 기일을 기리겠다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대책위와 가족이 선원들을 떠나보내는 일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3월17일 <한겨레21>과 만난 허재용씨의 첫째 누나 허영주(47) 대책위 공동대표, 둘째 누나 허경주 부대표는 “7년 동안 저희는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선원 22명의 유해가 이역만리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어서다. 정부는 2019년 심해 수색에서 선원들의 주검을 수습하지 않았다. 가족은 미수습인 채로 동생의 장례를 치를 수도, 사망신고를 할 수도, 추모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실제 공식 행정상 허재용씨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수년이 지난 뒤에도 주민세 고지서, 민방위훈련 통지서, 운전면허 적성검사 안내통지서가 날아왔다. ‘유족’이란 표현을 쓸 수 없었다. 그동안 ‘실종자 가족’ ‘미수습자 가족’이란 표현을 써온 까닭이다.
올해 ‘주기’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 건 최근 행정기관과 사법부가 선박회사 폴라리스쉬핑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놔서다. 2023년 12월5일,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은 선사의 불법행위와 안전관리 소홀이 침몰 원인이라고 재결(선고)했다. 해심원은 해양에서 일어난 선박사고를 조사해 원인을 규명하고 처분을 내리는 기관으로, 해심원의 해양안전심판은 행정심판의 일종이다.
1993년 일본에서 건조된 스텔라데이지호는 15년 동안 유조선으로 운항했다. 폴라리스쉬핑은 이 배를 인수해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한 뒤 2009년부터 화물선으로 운항했다. 배는 선령이 오래될수록 부식 때문에 강판 두께가 얇아져 강도가 약해진다. 노후 선박일수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선사는 보강 비용과 그 기간 운항하지 못해 생기는 영업손실을 먼저 고려했다.
해심원은 선사가 “배 바닥에 승인되지 않은 장치를 설치했고, 선체 검사나 보강 조처하지 않았다”며 “무리하게 화물을 실어 격벽 등 선체 구조에 변형이 발생해 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항행을 강행했다. 이후 선박을 수리하면서도 주위 구조를 살피지 않고 변형 부위만 고쳤다”고 지적했다. 선사는 기상 악화가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해심원은 “선사가 해야 할 충실한 보수·유지 의무를 등한시한 것” 때문에 침몰에 이르렀다고 봤다.
뒤이어 2024년 2월7일,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장기석)도 업무상 과실선박매몰·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폴라리스쉬핑 임직원 3명에게 금고형을 선고했다. 김완중 회장에겐 금고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전·현 임직원 2명에게도 각각 금고 2년,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임직원 4명은 무죄선고가 났다. 선사와 검찰은 항소했다.
이렇게 선원들 죽음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공식적 판단이 조금이나마 나오면서 가족들도 마침내 애도할 수 있게 됐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이게 결코 끝은 아니지만, 선사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이 나온 시점에서 천도재를 지내 선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쉼표를 찍자는 거지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미수습자들은 여전히 바다 깊은 곳에 있고, 침몰 원인도 명명백백히 규명되지 못했다. 선사의 책임도 일부만 인정됐다. 법정 싸움은 몇 년 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여기까지 사안이 진척된 것도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가족들의 피눈물 맺힌 노력 덕분이었다.
정부 대응은 참사 직후부터 미흡하지 않은 점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침몰 직후 상황은 “국가는 없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선사의 늑장 보고로 정부가 침몰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12시간이 지나서였다. 이 때문에 정부 대응도 늦어졌다. 침몰 뒤 약 13시간30분이 지나서야 해양수산부의 비상대책반, 외교부의 재외국민보호대책반이 가동됐다. 침몰 해역에 수색선과 항공기가 도착한 시점은 침몰 이후 각각 11시간, 42시간이 지난 뒤였다.
공교롭게도 2017년 3월31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날이었다. 먼바다에서 일어난 선박사고였기에 관계 부처의 유기적 대응이 필요했지만, 부처들은 서로 책임을 넘기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2019년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과 여행사 직원 등 30여 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했을 때, 정부가 대응을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려 부처 간 유기적으로 협력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허영주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는) 무정권 시절이었던 거지. 정부는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나. 대통령이 부재한다고 정부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무정부 상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허경주 부대표는 2017년 4월 중순, 실종 선원 가족들이 요구해 열린 정부 브리핑을 기억한다. “‘도대체 누가 이 상황을 책임지느냐’라고 물었을 때, 외교부 국장은 ‘매뉴얼이 국민안전처에 있으니 국민안전처의 책임’이라 말하고, 국민안전처 밑에 있던 해경 담당자는 ‘해외 재난은 외교부에서 총괄하는 것’이라며 우리 앞에 일렬로 앉아서 서로 (업무) 핑퐁을 하고 있었다.”
잘못 끼운 첫 단추 탓에 이후 7년은 노숙농성, 1인시위, 기자회견, 서명운동 등으로 채워졌다. 허재용 이등항해사 가족은 대책위를 만들고 침몰 원인 규명과 유해 수습을 요구했다. ‘자력구제’나 다름없는 과정이었다. 가족들은 침몰 당시 생존한 필리핀 선원 2명을 구조한 그리스 선박을 찾았다. 이 선박의 선원들이 스텔라데이지호의 생존 선원을 구조한 직후 찍은 영상을 어렵게 확보해 국정감사장에서 틀었고, 폴라리스쉬핑 전·현직 직원들에게 받은 제보를 공론화했다. 선사의 미흡한 안전관리는 스텔라데이지호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사건·사고가 숱하게 있었다. 녹슨 스텔라데이지호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마음이 무너졌다. 허재용씨는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하게 일했다는 사실을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참사 2년 만인 2019년 2월, 정부는 1차 심해 수색을 했다. 심해 수색 예산을 확보하려 국회 문턱이 닳도록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닌 끝에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수색대는 수색이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선체 위치와 선원의 유해를 확인하고도 바다에 두고 왔다. 가족이 유해 수색·수습을 요청하지 않아 용역업체와 맺은 계약에 유해 수습 내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족들이 크게 분노하는 지점이다.
허영주 대표는 “정부는 심해 3천m에서는 수압 때문에 10원짜리처럼 납작하게 짜그라져 유해가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유해 발견 가능성을 일축했기 때문에 유해에 대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거짓말한 건 쏙 빼놓고 ‘가족이 요청하지 않았다’는 말이 앞뒤가 맞느냐”라고 했다.
1차 수색의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블랙박스’ 구실을 하는 항해기록저장장치(VDR)를 수거했지만, 데이터 칩이 훼손돼 복원이 불가능했다. 이후 대책위는 진상규명과 유해 수습을 위한 2차 수색을 계속 요구했으나 관련 예산은 해마다 전액 삭감되고 있다. ‘민간인 사고에 국가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논리를 넘지 못해서다.
폴라리스쉬핑 임직원이 금고형을 선고받은 재판 결과도, 대책위가 2022년 2월 공소시효를 약 한 달 앞두고 시민들과 함께 침몰의 책임을 묻는 고소·고발에 나선 덕택에 나왔다. 검찰은 2019년 2월 선사 임직원 등을 선박안전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했다.
7년 동안 온 힘을 진상규명과 동생을 데리고 돌아오기 위한 일에 쏟았다. 허재용씨 가족 가운데 몸이 성한 사람은 많지 않다. 스트레스로 면역기능에 문제가 생겨 피부질환, 중이염, 공황장애 등 각종 병을 얻었다. 허 부대표는 7년 동안 “미운 사람도 있었지만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서” 견뎌왔다고 했다.
손팻말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하는 노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은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 한쪽을 내줬다. 종교계는 스텔라데이지호 희생자와 가족을 위한 기도와 예배를 했다. 부산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법원 앞에서 손팻말 시위와 재판 방청을 함께했다. 연대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만나게 됐다.
이들과 만나면서 ‘똑같은 일을 겪는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을까’란 생각을 혼자만 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정부 대응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등 참사가 발생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참사 수습에만 골몰할 뿐, 재발 방지와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 보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를 포함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 8개가 모여 2023년 말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만든 까닭이다. 허영주 대표는 “우리도 처음에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생긴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같이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2024년 3월11일, 허경주 부대표는 경기도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대학생 약 50명 앞에 섰다. 앞서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이 대학으로부터 참사가 일어난 원인, 직후에 유족들이 겪었던 일, 이 참사가 왜 사회적 참사인지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참사 7주기를 앞둔 대책위가 강의에 나섰다. 강의가 진행된 2시간 동안 일부 학생은 눈시울을 붉혔고, 볼에 흐르는 눈물을 재빠르게 닦아내기도 했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허 부대표에게 다가와 노랑·주황 리본이 함께 걸린 고리를 보여줬다. 허 부대표와 학생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한겨레21>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둘이 그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었다.
“본인이 중학생일 때 광화문광장에 있던 ‘노란리본공작소’에서 리본 만들기 봉사를 했대요. 아직도 그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더라고요. 스텔라데이지호를 기억하고 이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이 아직 있음을 저한테 꼭 알려주고 싶었대요. 진짜 고마웠어요.”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단독] 노상원 ‘사조직’이 정보사 장악…부대 책임자 출입도 막아
“안귀령의 강철 같은 빛”…BBC가 꼽은 ‘올해의 이 순간’
[단독] 비상계엄 전날, 군 정보 분야 현역·OB 장성 만찬…문상호도 참석
‘28시간 경찰 차벽’ 뚫은 트랙터 시위, 시민 1만명 마중 나왔다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공조본, 윤석열 개인폰 통화내역 확보…‘내란의 밤’ 선명해지나
28시간 만에 시민들이 뚫었다...트랙터 시위대, 한남동 관저로 [영상]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