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15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동 정부대전청사 특허청 앞에 검은색 비옷을 입은 150여 명이 섰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특허청 계약해지 피해자는 조사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사회자가 “죄 없는 조사원을 실직으로 몰지 말라”고 선창하자 “몰지 말라”고 따라 외쳤다. 구호에 따라 손팻말을 흔드는 모습이 어색했다. 대부분 집회가 익숙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눈빛은 진지했다. 그 가운데서 한 청년이 앞으로 나왔다.
“우리는 모든 것이 멈춘 사무실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너지고만 있습니다. 모두가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는 조사원이었을 뿐입니다. 계약 해지 뒤에는 이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은 갈라지고, 불에 타는 듯 검어지고, 바스러졌습니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물량 의뢰 재개를 바랍니다.”
발언한 청년은 ‘윕스’ 상표디자인조사부 디자인인프라팀 막내 사원 김희언(30)씨였다. 회사에 들어온 지 1년도 되지 않은 사원이 특허청 앞에서 비를 맞으며 왜 계약을 언급해야 했을까. 집회 경험도 대부분 없는 이들은 어쩌다가 특허청 앞에서 구호를 외치게 됐을까. <한겨레21>은 특허청 선행기술조사 전문기관 윕스의 직원들이 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위기를 맞게 됐는지 들여다봤다.
시작은 2023년 9월 감사원이 2022년도 ‘공직비리 기동감찰 감사결과 보고서’를 내면서였다. 감사보고서에 기재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특허청 간부 ㄱ씨와 퇴직 간부 ㄴ씨가 산하기관 인력·장비 이전을 통해 전문기관을 부당하게 지정했다는 것과, ㄱ씨가 민간 선행조사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는 등 비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특허청은 상표·디자인 등록 출원 심사 과정에서 출원된 상표와 디자인이 기존에 출원됐는지 등을 사전에 조사하는 업무를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 진행한다. 이런 상표·디자인 조사분석 사업은 심사지원 업무를 위한 조사인력과 전담부서 등 일정 요건을 갖춘 민간업체 등을 전문기관으로 선정한 뒤 수의계약을 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윕스는 2005년 상표 전문조사기관으로 지정된 뒤 2008년 디자인 전문조사기관으로 지정돼, 특허청과 10년 넘게 수의계약을 하고 조사분석 사업을 해왔다.
감사원에 따르면, ㄴ씨는 2013년부터 특허청 퇴직공무원의 안정적인 재취업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윕스 등에 전문조사관 직위를 신설하는 계획을 세웠다. 전문조사관 자격을 특허청 5급 이상 심사관이나 심판관으로 3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뒀다. 사실상 특허청 퇴직자가 아니면 채용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ㄱ씨는 고시를 개정해 특허청 출신 전문조사관을 많이 채용할수록 더 많은 수익이 나도록 했다. 윕스나 특허청 산하기관인 특허정보진흥센터(현 한국특허기술진흥원)로선 특허청 퇴직공무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윕스의 경우 2013년부터 2015년까지 17명을 채용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문제가 지적되면서 윕스와 특허정보진흥센터에 재취업이 어렵게 되자, ㄴ씨는 특허청 퇴직자들이 자유롭게 재취업할 수 있는 민간업체를 전문기관으로 신설하기로 하고, ㄱ씨 등을 통해 ‘나라아이넷'을 전문기관으로 지정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나라아이넷이 시설과 인력 등 전문기관 요건에 충족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ㄱ씨와 ㄴ씨는 특허정보진흥센터에 근무하던 13명의 특허청 퇴직공무원과 장비를 그대로 나라아이넷으로 이전해 상호만 바꾸도록 했다. 이후 나라아이넷은 전문기관으로 지정됐다. 13명을 포함해 2016년까지 특허청 퇴직공무원 19명이 나라아이넷으로 갔다.
ㄱ씨는 이와 별도로 2019~2020년 윕스 대표이사로부터 다섯 차례 걸쳐 194만원 상당의 골프 및 대리운전 비용을 받고, 고위공직자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딸을 2020년 11~12월 윕스에 취업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나라아이넷 대표이사로부터 1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내용도 감사보고서에 포함됐다.
다만 나라아이넷 쪽은 <한겨레21>에 전문기관 요건에 충족되지 못했다는 감사 결과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라아이넷 쪽 관계자는 “감사보고서 내용대로라면 나라아이넷에선 전산 장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업무 수행이 불가능했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며 “(실태조사 당시) 특허청 전산 시스템상 나라아이넷에서 정상적으로 납품한 기록이 있다. 감사보고서 팩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전 대표가 ㄱ씨에게 1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넨 것에 관해선 “출판 준비 중인 책 감수를 ㄱ씨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감사 표시로 준 것이고 직무관련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감사원은 ㄱ씨를 징계처분(파면)하고 앞으로 특허청 공무원의 재취업을 목적으로 전문기관을 부당하게 지정하는 등 기관의 이익을 위해 국가사업을 운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런데 불똥은 다른 곳으로 튀었다.
특허청은 감사보고서 발표 이후 ㄱ씨의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한편, 민간 선행조사 업체들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윕스도 그중 한 곳이었다. 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업체였다가 특허정보진흥센터에 재취업한 특허청 공무원들이 자리를 옮겨 상표·디자인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나라아이넷과 달리, 윕스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일한 사람이 많다. 장혜진(43) 윕스 상표디자인조사부 디자인조사팀 팀장과 디자인인프라팀 허윤민(40) 차장도 윕스에서 경력을 시작한 사례다. 장 팀장은 16년째, 허 차장은 18년째 일하고 있다. 윕스에는 이들을 포함해 특허와 상표, 디자인 조사 업무를 하는 조사원만 160여 명이 있다. 특허청에서 재취업한 공무원들은 2015년 17명이었지만 이후 계속 줄어 현재 2명만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에는 상표 조사분석 사업만 물량을 안 주더라고요. 그러다 국정감사에서 계속 지적되고 (윕스가) 카르텔(담합)로 지적되니까 다른 사업 물량도 안 주기 시작했어요. 불안에 떨었는데, 결국 11월 특허청에서 남은 모든 사업도 계약을 해지했어요.”(장혜진 팀장) 특허청이 계약 해지한 규모는 상표심사지원(약 19억원)과 디자인심사지원(약 24억원)을 합쳐 43억원 수준이다. 이 중 미지급된 금액은 8억5천만원 정도다. 윕스는 계약 불이행에 따른 보험비 등을 고려하면 약 11억원의 피해가 났다고 본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 팀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대표가 특허청 간부와 골프를 치고 비용을 낸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일감은 끊겼지만 회사에선 계속 월급이 나왔고, 2024년엔 다시 원상복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11월 열린 ‘부정당업자 지정을 위한 계약심의위원회’(계약심의위)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로 연기됐다. ‘부정당업자’란 계약 이행 과정에서 부정행위 등을 한 사업자로, 지정될 경우 최대 2년 간 입찰 참가자격이 제한된다.
“일단 부정당업자 지정도 안 됐고, 내년은 문제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후 특허청 담당 사무관이랑 통화하면서 내년 물량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어려울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거예요. ‘부정당업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계약하느냐’라는 말을 들은 직원도 있었어요.”(장혜진 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직원들은 우선 회사에 공식 입장을 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회사는 특허청에서 2024년 물량을 전면 중단한다면 두 달 반 안에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노사협의회에 나온 사 쪽 인사는 “정리해고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윕스의 2022년 매출은 360억원 정도다. 이 중 특허청 계약으로 얻는 매출은 절반 수준이다.
윕스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처음엔 (특허청이) 특허(조사분석 사업)까지 다 주지 않겠다는 얘기가 있어서 직원들에게 통보했다”며 “(영향받는 인원이) 160여 명 정도인데, 우리가 그 인원을 다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원 재배치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업무 자체의 특성 때문에 재배치할 자리가 없다”며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회사에서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은 특허청 앞으로 갔다. 12월15일 집회 직전, 다시 특허 분야는 물량을 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저희가 희생양인가요. 특허 물량은 줄 테니 상표·디자인은 포기하라는 건가 이런 의심이 들죠.” 상표·디자인 물량만 못 받더라도 50억~60억원 정도의 피해를 볼 것으로 윕스는 예상했다. 장 팀장이 이어 말했다. “대표가 골프 친 것 잘못했죠. 그런데 그게 사업취소까지 돼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골프 친 시점에 ㄱ씨는 산업재산정책국장, 전 상표심사정책과장이었거든요. 전혀 관계가 없어요.”
2024년 계약 물량을 정하는 사업 물량 산정심의위원회는 2024년 1월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부정당업자 지정 여부다. 특허청은 11월 열린 부정당업자 지정 계약심의위에서 “추후 검찰 수사 결과 뇌물성이 인정되면 즉시 부정당업자로 지정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윕스 쪽은 당시 특허청에 의견서를 내어 △대표이사가 대신 지급한 ㄱ씨의 ‘골프 비용 및 대리운전 비용’, 부사장이 ㄱ씨 딸에게 제공한 ‘아르바이트 기회’는 뇌물에 해당하지 않고 △금품 등 제공 행위는 입찰·낙찰 또는 계약의 체결·이행과의 관련성도 없다며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내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골프 비용 제공 등이 있었던 것은 2020년이고, ㄱ씨가 상표정책심사과장으로 있던 때는 2014~2017년이기 때문에 금품 제공과 직무 사이에 관련성이나 대가관계가 없다는 취지다. 또 ㄱ씨가 상표정책심사과장으로 있던 시기, 특허청의 전체 발주 물량 대비 윕스의 수주 물량 비중도 디자인의 경우 2014년 약 60.6%에서 2017년 47.8%로, 상표 비중은 2014년 44.9%에서 2017년 35.4%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특허청은 <한겨레21>에 보낸 서면답변에서 “(2023년) 계약 해지는 감사원 감사 결과 및 국가계약법 제5조의 3 위반에 따른 것”이라며 “국가계약법 제5조의 3 계약 해지와 관련한 민법상 ‘금품·향응 등 제공(청렴계약이행서약서 제3항)’은 제27조 부정당업자 지정과 관련한 형법상 ‘뇌물’보다 범위가 넓다”고 설명했다.
다만 검찰 수사 결과 뇌물성이 인정돼 기소되더라도, 재판에 의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서 다툴 여지가 있다. 윕스도 특허청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잘못된 처분으로 인해 윕스가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대표이사 등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 및 법원의 재판을 마칠 때까지 처분은 보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를 상대로, 대표를 상대로 싸우는 게 맞죠. 근데 특허청 물량 없으면 저희는 그냥 끝이에요. 그래서 생존권 보장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특허청은) 왜 우리한테 와서 그러냐고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어요.”(허윤민 차장)
장 팀장과 허 차장 등 윕스 직원 4명은 12월15일 특허청 담당 과장 및 사무관들과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특허청 담당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과 저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요. 이렇게 와서 윽박지르지 말고 법적인 절차를 밟으시라고요. 여러분 입장에선 생존권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들이 있어요.” 특허청은 생존권 외에 고려할 사안이 구체적인으로 무엇인지를 묻는 <한겨레21>에 “특정 업체 직원의 생존권 외에도 전체 사업의 공정성·투명성, 국가 정책 방향 및 예산, 참여자의 적법·성실한 사업 수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윕스 같은 외부 조사분석 전문기관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부정당업자 지정을 검토하는 것 외에, 특허청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한 조처는 무엇일까. 애초 감사로 드러난 핵심 문제는 특허청 내부에 있었다. 특허청 공무원들의 재취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만약 ‘카르텔'이 있다면 그건 특허청 내부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간 재취업한 특허청 공무원들에 대한 조사나 조처는 전혀 없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소속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선행조사업체에 전문조사관으로 재취업한 특허청 출신은 53명으로 집계됐지만, 모두 퇴직자 신분이라 관련 조사와 조치를 피해갔다. 특허청 내부에서 구조를 만든 ㄴ씨도 퇴직해 아무런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ㄱ씨만 12월 초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서 파면이 결정됐다.
예방책은 더 허탈하다. 산자중기위 소속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특허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특허청은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내부 점검 및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근본적으로 해당 사업에 대한 재검토 및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상표조사 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하고 인공지능(AI) 상표심사 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허청 내부 간부들로부터 문제가 시작됐는데, 특허청 내부의 구조 개선 없이 외부 상표조사 사업만 없애겠다는 뜻이다. 이번에 확정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상표심사 지원사업과 디자인심사 지원사업 모두 2023년에 비해 각각 25억7천만원(약 22%), 6억6천만원(약 10%) 감액 편성됐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2023년 10월12일 국정감사에서 “선행조사기관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서 특허청의 퇴직공무원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면서도 “(선행조사기관에서) 심사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어서, AI(인공지능)를 통해 심사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약속드렸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안 한 게 아니에요. 특허청 고시를 보면 조사원들은 이 일만 할 수 있도록 돼 있어요. 보안 문제도 있고 정해진 자리에서 이 일만 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정말 억울하죠. 이걸 어디에 가서 어떻게 따져야 하나요.” 특허청만 믿고 10년 넘게 일한 대가가 눈앞의 정리해고 위험이었다. 진짜 ‘카르텔’을 향해야 할 처벌과 대응이 눈에 보이는 외부 사업으로만 향했다. 설상가상 인공지능으로 사업 자체를 전환하겠다는 기조 속에 다른 업체로도 이직하기 어렵다. 이를 지적하는 조사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대전=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2024년 1월2일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관한 나라아이넷 쪽의 반박을 넣어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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