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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처법 유예는 현장 목소리” 노동부인가 중기부인가

2024년 50인 미만 대상 시행 앞두고 설명서 전달…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목숨을 담보로 경영해선 안 된다’는 최소한의 신호
등록 2023-11-22 09:01 수정 2023-11-23 04:33
태안화력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사건 2심 재판이 열린 2023년 2월9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중대재해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 회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태안화력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사건 2심 재판이 열린 2023년 2월9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중대재해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 회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고용노동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에 유예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현장 목소리’가 담긴 설명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자료엔 중소기업의 입장만이 적혀 있었고 유가족과 노동자단체의 의견은 쏙 빠져 있었다.

2023년 11월21일 <한겨레21>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노동부의 ‘50인 미만 기업 중대재해법 추가 적용유예 관련 (설명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현장에서 유예기간 연장, 지원 확대 등 대책 마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성명과 경제6단체 설문조사 결과 등을 소개했다. 민주노총과 김용균재단 등으로 구성된 ‘생명안전행동’이 유예 반대 서명을 받고 의견서를 제출한 사실은 적혀 있지 않았다. 이 설명자료는 22일 법 유예를 논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때 참고자료로 쓰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4년 1월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실업자 양산법” “기업 활동 포기법”…

노동부는 또 법 적용을 우려하는 사업주들 의견을 ‘현장 목소리’라는 제목 아래 3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법이 적용되면 △기업 대표 실형 가능성이 커지고 △대표 실형 시 폐업 및 근로자 피해가 우려되며 △(법에 대응할) 인력·예산 여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노동부는 “현장에서는 “실업자 양산법” “기업 활동 포기법”으로 인식하는 등 절박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중대재해법 적용으로 기업 대표가 처벌받으면 경영 타격과 폐업 위험이 커진다는 취지다.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는다는 뜻은 경영자의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해당 기업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거나 △2명 이상이 동일한 사고로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을 입거나 △연간 3명 이상이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에 걸렸다 는 의미다. 또한 그 재해가 사업주의 의무 위반으로 인한 결과임 이 수사로 명백히 증명될 때 경영진이 처벌된다.

노동부는 경영 타격을 우려하는 중소기업 7개사 임직원들 의견도 덧붙였다. 이 중엔 법 적용을 전혀 준비하지 않는다면서 ‘경영 위축’을 강조하는 이도 있었다. 서울 남부의 금속 가공업 ㄱ사는 “중대법상 의무조항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고 2024년 법 적용에 대비해 별도로 준비하는 사항도 없다”면서도 “중대법 위반으로 대표가 구속된다는 사실 자체로 경영이 위축된다”고 말했다. 중처법의 의의를 부정하는 답변도 있었다. 노동부가 익명으로 소개한 ㄴ사업주는 “맨땅에서 시작해 30년 이상 손수 일구어온 기업인데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여 갑자기 구속된다면 우리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선량한 기업가들의 열의와 보람을 꺾어놓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은 복잡한 쟁점을 안고 있다. 중소기업의 안전 관리 역량이 일정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처벌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과, 역량이 수십년째 답보된 집단에 처벌까지 유예하면 경각심만 떨어진단 주장이 맞선다. 연간 산재 사고 사망자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된다는 사실 또한 해당 집단을 규제할 필요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흡한 안전 관리 수준을 방증한다. 민주노총과 생명안전행동은 이런 상황에서 법을 유예할 경우 중소기업 소속 노동자들 안전이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11월20일 국회에 전달했다. 법률가와 의사 등으로 구성된 ‘중대재해전문가넷’도 11월21일 같은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노동부가 일방향으로 정리한 ‘현장 목소리’와 달리 실제 현장 목소리는 여러 방향으로 나뉘어 있다.

정부는 법 적용이 유예될 경우 기존에 하던 컨설팅과 기술지도 등에 예산을 증액하는 방안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그러나 이 역시 근본적 대책은 되지 못한다. 서울의 한 건설사는 정부 설명자료에서 “중소기업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전향적 지원책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예기간만 연장한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20여명 규모 ㄹ기업은 “정부 공공기관이나 사설업체 컨설팅을 받아봤지만 솔직히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하루이틀짜리 교육이나 컨설팅이 아니라 안전전문가를 소기업에 장기간 파견해 안전관리 업무를 지도해준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28명 규모 ㄹ업체)고 했다.

“2년 뒤에도 똑같은 사정 마주할 것”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실상 형해화된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목숨을 담보로 경영해선 안 된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 법을 건드릴 거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어떤 기업들의 구체적인 법 준수 노력이 있었고 어떤 점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면 나아질지 정부가 면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서 국민들에게 내놔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유예만 할 경우 2년 뒤에도 똑같은 중소기업 사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소규모 기업 안전 관리를 연구해 온 박미진 원진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안전보건정책실장의 말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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