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주는 음식을 먹어라.”(루가복음 중)
2023년 10월18일 오후 20여 명의 사람이 서울 종로구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매달 한 번 있는 한국희망재단(이사장 서북원)의 후원미사였다. 재단은 인도, 아프리카, 네팔, 라오스 등 16개국에서 32개 현지 협력단체와 함께 22만3천여 명에게 자립 기반을 만들어줬다. 지역개발, 식수, 교육, 환경, 보건위생, 인권옹호, 긴급지원 분야에서 활동한다.
이철순(70) 한국희망재단 이사(이하 직함 생략)는 미사 중에 가만히 기도를 올렸다. 그는 재단의 얼굴이다. 2005년 설립 때부터 2023년 봄까지 상임이사로 일하며 지구촌을 누벼온 그는 최근 평이사로 물러났다. 사회운동 경력 50년. 물러날 때를 알고 스스로 짐을 싸는 버릇은 생애를 걸쳐 거듭됐다.
이철순은 1953년 경기도 안성 죽산면 용설리에서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20살 때인 1973년 가톨릭노동청년회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20대 후반 필리핀에서 유학하며 사회사업을 공부했다. 졸업 직전 아일랜드 성골룸반 신학대학에서 열리는 ‘국제사회 정의를 위한 특별연수회’에 참여하려 짐을 쌌다. 졸업장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88년부터 홍콩에 본부가 있는 아시아여성위원회(CAW)에서 집행위원장으로 6년 동안 일했다. 1970~1980년대 동아시아 산업화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여성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위해 설립한 아시아 유일한 국제단체였다. 1996년부터 9년간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로 일한 뒤 이철순은 다시금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에서 공부했다. 귀국 뒤 ‘일하는여성아카데미’를 설립해 여성노동자가 자기돌봄을 할 수 있도록 재교육의 장을 만들었다.
은퇴를 생각하며 활동을 줄여가나 싶었지만, 반대였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2005년 국제단체 경험이 있던 이철순과 강경희 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현 희망재단 이상준 상임이사 등이 주도해 사재를 털어 한국희망재단을 만들었다. 그저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돈이나 식량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전쟁, 기후위기, 차별에 시달려 마실 물조차 없는 가난한 여성과 아동에게 협력자가 되어 그들의 자립 의지를 키우는 것이 사명이었다.
한국희망재단에서 그는 말 그대로 ‘희망’을 봤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달리트 여성 공동체는 이제 마을 의원까지 배출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뒀다. 글도 못 읽던 탄자니아 마사이부족 여자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갔다. 극심한 차별에 시달리는 네팔 랄리트푸르 지역 소수민족 사별 여성들은 시설 지원을 받아 유기농업을 위한 자립에 나섰다. 후원미사를 마친 초가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안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삶과 노동,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19년 전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를 거의 끝낼 즈음 <한겨레>와 인터뷰하셨죠. 그때 은퇴하시는 줄 알았어요.
“저는 은퇴는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이번에도 2023년 초부터 상임이사를 그만두겠다고 다른 이사들을 설득하셨다고요.
“2022년엔 6개월을 외국에 나가 있었어요. 2005년부터 일했는데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할 만큼 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필요했고요.”
―신나게 일하신 것 같아요.
“나는 재밌었어요. 주민들의 눈동자가 변하고, 아이들의 모습이 변하고, 마을이 형성되니까요. 단백질이 부족해 배가 볼록하던 아이들이 마을에서 생산한 달걀을 먹고 배가 쏙 들어갔어요. 탄자니아 산간지방 여성들이 염소가 새끼를 낳았다고 춤추고, 차별받던 인도 달리트 여성들이 유기농공동체를 만들어서 먹고살 수 있게 됐어요. 사람들이 확확 변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들 하잖아요.
“먼저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갔다 온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했대요. 제가 항변했죠. 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고요. 유목하던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더는 그 생활을 할 수 없어, 땅을 개간하고 농사짓고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파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지 않냐고 했죠.”
―여기서 보내는 돈이 허투루 쓰일 우려는 없었나요.
“상호 신뢰는 필수적이에요. 사실 이것저것 일이 안 되고 있다고, 아프리카에 유치원으로 쓰라고 준 건물을 창고같이 쓰는 것을 보면서 화내는 분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건 과정이에요. 나는 이해가 되었어요. 이미 ‘아프리카화’한 사람이었거든요.(웃음)”
예수의 말을 직접 듣고도 믿지 않는 게 사람이다. 연대는 상대를 믿으며 오래 참고 알아가는 일이다. 재단은 각 사업을 지나칠 정도로 투명하고 확실하게 공개하며, 이사장부터 후원자까지 기회 닿는 대로 파트너 단체와 지원자들을 만나도록 한다. 희망재단 회원 중 매달 회비를 내는 이는 6천여 명인데 가톨릭 신자가 상당수다. 은퇴하면서 2억~3억원씩 내놓으며 교육사업에 써달라는 교사들도 있다. 제주에서 초대 교육감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여성교육운동가 최정숙(1902~1977)을 기리는 모임 회원들은 기금을 모아 아프리카 최빈국인 부룬디에 2018년 ‘최정숙여자고등학교’를 짓도록 했다.
―한국희망재단은 지부가 없다면서요.
“맞아요. 그 지역의 파트너 단체와 함께 일하죠. 지부를 만들어 사람을 파견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노동자로 계속 고용되는 형태일 수밖에 없어요. 그 나라 사람이 그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게, 역량을 강화하도록 도와서 그들 손으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을 제대로 키워내면 우리가 떠나도 건재하게 자기 나라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마사이족을 오래 지원하셨죠. 빠르고 용맹하다고 들었어요.
“한 10년쯤 됐나봐요. 그들은 엄청 적극적이었어요. 유치원 지을 때 지원했더니 주민들이 철근을 도난당할까봐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어요. (조금 전 미사 때 복음처럼) 마을에 들어가면 우리는 차려주는 대로 먹어요. 음식 대접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계획을 짜서 서로 음식을 나눠 마련하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바뀌는 거죠.”
―여성과 아이들의 고통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여자아이들 조혼을 좀 막아볼까 싶어서 학교 근처에 기숙사를 지었어요. 엄마들은 딸이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하기 바랍니다. 마사이족은 오랜 유목 생활로 문맹률이 90%였고, 전통 부족어만 써서 탄자니아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를 쓰지 못했어요. 1년쯤 지나니 아이들이 전교에서 1, 2등을 하는 거예요. 고기와 단백질을 많이 먹어서 머리가 좋다는 얘기도 있어요.(웃음) 이제는 대학까지 가는 아이가 많아요.”
―아프리카는 가부장적 문화가 심각할 거 같아요.
“일부다처제에 가부장성이 강해 여성 순결을 의미하는 할례가 성행해요. 그것도 10살 안팎의 아이들을 대상으로요. 마취 없이 그냥 칼로 하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과 출혈이 있고 죽기도 해요. 탄자니아 고산지대에서 할례로 먹고사는 여성들은 그게 수입원이라는 거예요. 그걸 해결해줘야 하는구나 싶었죠. 처음엔 염소 두 마리를 샀어요. 새끼를 낳아서 2년 만에 할례 시술 여성 30여 명이 염소를 돌아가며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할례가 없어졌나요.
“4년 전 어느 마을 회의에서 조사원이 보고하는데 할례가 제로(0명)였다고 했어요. 박수 치고 난리가 났죠. 그 뒤에 보건소를 지었어요.”
2006년 재단이 처음 연대한 이들은 인도 달리트 여성이었다. 달리트는 카스트 안에도 속하지 않는 최하 계급이다. 달리트에게 법적으로 부여된 토지는 상층 카스트나 정부 소유로 묶인 경우가 많았다. 현지 파트너 단체 ‘달리트 해방을 위한 인권포럼’과 협력해, 2006년부터 법적 대응으로 토지 반환 운동을 벌였다. 타밀나두주 2448평(8092㎡)을 되찾았고, 칸치푸람 등지에서 2011년 기준으로 150만 평(495만8677㎡) 넘게 되찾았다. 그 땅엔 여성 유기농업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달리트는 공동우물조차 쓸 수 없다면서요.
“접촉하면 오염된다는 생각 때문에요. 2014년엔 다른 카스트와 함께 쓰는 힌두교당에 달리트가 출입했다는 이유로 상층 카스트가 불을 질러서 저희가 긴급구호도 했습니다. 물이 없어 급수사업을 시작했고, 물이 생긴 뒤엔 텃밭을 만들게 했죠. 물 긷던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됐고, 텃밭을 만들었고, 열매를 따 먹게 됐죠. 계와 비슷한 마을은행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발전하는 데서 재미를 느꼈죠.”
―인도에서도 여성들의 변화가 아주 컸을 것 같은데요.
“정치에서 늘 소외됐던 달리트 여성 150명이 마을의회인 판차야트 의원으로 선출되기까지 했어요. 마을 예산과 사업 방향을 제안하고 요구할 수 있는 조직에 참여하면서 공적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생긴 거예요.”
20대 때 접한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교육학)는 이철순에게 큰 영향을 줬다. 남아프리카에서 프레이리의 방법론을 배울 때 에세이를 제출하고 석사학위를 따는 식의 ‘죽은 교육’은 받을 수 없다고 고집부렸다. 학위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프레이리의 민중교육 방법론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지도교수를 배정받았고, 그때 만난 교수가 다리를 놓아 짐바브웨 도서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프레이리의 방법론을 배우기 전에는 전태일이 그의 스승이었다.
―노동운동을 한 계기가 전태일 때문이었다고요.
“친구가 저한테 지나가다가 그 (분신) 장면을 봤다고 얘기하는데 믿기지 않았어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어떤 사람은 목숨을 바칠 만큼 고통스러운데, 나는 대체 뭘 하는 거지 싶었어요. 전태일은 노동자 권리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 거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당으로 갔죠. 세례를 받고 민중교육 방법론을 배웠고 배운 대로 모든 것을 실천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것도 믿기지 않는데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가톨릭노동청년회 때부터 방법론을 배웠죠. 거기서 예를 든 게 연못 얘기예요. 오염된 연못에 물고기들이 죽고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건 물고기 한두 마리 낚아서 다시 좋은 물에 넣어주는 게 아니라 물 자체를 정화시키는 거잖아요. 제가 희망재단을 하면서 접목한 방법론이 그런 거예요. 왜 신발이 없어? 왜 돈이 없어? 왜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 왜 부모는 가난해? 거듭 질문하며 뿌리를 찾아가요. 그럼 하루에 한 끼 먹기 힘들다는 얘기가 쫙 나와요. 제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얘기해주고 바꾸는 거예요.”
―젊은 시절 얘기로 돌아가서, 첫사랑 얘기도 좀 해주세요.
“필리핀에서 공부할 때 제 첫사랑이 약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받았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 거지,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성당에서 진정한 기도를 올렸죠. ‘저는 이렇게 나약합니다. 이런 고통에도 힘들어하니 아파할 때 제 곁에서 위로해주세요’라고 빌었어요. 그 순간 진짜 내가 누군가에게 기댄 느낌을 받았어요. 그날로 고통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나도 모르게 나도, 그 사람도 해방시킨 거예요.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이 말을 하면서도 이 가슴에 남아 있는 게 없어요.”
―요즘도 내면을 돌아보는 수행을 하시죠.
“위파사나 수행 같은 걸 지금도 하죠. 얼마 전에도 열흘 수련원에 다녀왔어요. 저에게도 시간을 주자는 뜻이죠. 화두를 잡고 저도 스스로 정화하는 거예요.”
―평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썼으니 이제 좀 자신을 위해 누릴 때도 되지 않았나요.
“글쎄요. 앞서 말했지만 저는 은퇴란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어떤 일을 얼마나 하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경제가 나빠지고 정부가 예산을 줄여 여성노동자들이 요즘 다시 힘겨워지는 때가 됐는데요.
“그러게요. 고용노동부에서 고용평등상담실 2024년 예산을 삭감했다고 하더군요. 성차별적 환경과 직장문화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는데 걱정입니다.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히 발전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한국희망재단 hope365.org, 후원계좌: 국민은행 855401-04-008784)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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