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발이죠?
준비해간 첫 질문은 던지지 못했다. 그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세계를 방랑하는 맨발의 소녀’라고 알려졌지만 ‘맨발’도 아니고 취약한 ‘소녀’도 아니었다. 이하루. 자신과 타인의 나이를 세지 않으며, 성별과 출신을 따지지 않고, 돈으로 위계를 세우지 않는다. 2014년 12월, 그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국경을 넘어 서서히 움직였다. 6년 동안 수십 개국을 주로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는데 그 거리만 4만4048㎞에 이르러 지구 둘레와 맞먹는다. 그러니 일단 ‘지구 행성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라고 해두자. 다큐멘터리 감독, 음악가, 여행가, 작가 등으로 살아왔으니 예술가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에게 물으니 “굳이 소개한다면 ‘동물해방운동가’”라고 했다. 자신의 모든 활동은 그 일로 수렴한다고 했다.
집 없이 방랑하며 생활해온 그는 세상의 모든 ‘기준’과 ‘경계’에서 벗어난 무정형의 인간 같아 보였다. 세계 어디에도 집이 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종과도 친구 같은 관계를 맺었다. 이하루씨는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의 주장처럼 남녀,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무기체의 이분법적 질서를 거부하고 종의 경계를 허무는 전복적인 삶을 온몸으로 살고 있는 듯했다.
이하루씨의 여행산문집 <사회적응 거부선언>을 출간한 온다프레스의 박대우 대표는 편집하다 잠시 교정지를 미뤄놓고 ‘이 책을 읽고 불편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2023년 6월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강남구에서 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만 이 책은 120권이 팔려나갔다. 2014년 12월부터 2021년까지 수십 개국을 이동한 기록이자 저자 스스로 여행가에서 운동가가 되는 정체성의 변화를 집요하게 성찰한 내용을 담았다. 저자는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집에서 남는 방이나 소파를 이용하는 ‘카우치 서핑’, 주 20~25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워커웨이’, 쓰레기통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찾아내는 ‘덤스터 다이빙’, 빈집을 점유하는 ‘스쾃’을 알게 된다. “자본이라는 도구를 배제한 채 매일의 잠자리와 식량을 탐색”하면서 그는 천천히 이동했다.
6월20일 오전 10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말질로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이하루씨의 북토크가 열렸다. 강정에서 평화 여정을 이어가는 프로그램 ‘섬띵피스’ 기획자 김지아씨가 마련한 이날 북토크에는 열세 사람과 길에서 구조된 강아지 한 마리가 참석했다. 저자는 “두려움을 기반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발을 드러냈다. “극단적인 자본주의사회가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집과 차를 사게 하고, 돈을 벌어야만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세상을 불신하고 무서워하게 되는 것 역시 ‘사회적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북토크 이후 사람들은 해군부대 정문 앞으로 이동해서 몇 가지 구호를 외쳤다. 이하루씨도 커다란 깃발을 손에 들고 앞장섰다. 구럼비 바위 위에 굳건하게 자리잡은 군사기지에 맞서기에 이하루씨와 그의 친구들은 너무 무력해 보였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노래하며 헐렁헐렁 춤추는 이들은 허술한 듯했지만 ‘스왜그’가 넘쳤다.
점심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환대’라고 써붙인 밥상공동체에 모였다. “땅과 물, 하늘에 사는 어떤 동물의 살이나 젖, 알도 먹지 않는” 비건인 이하루씨는 밥과 반찬을 조금 덜어 먹고 초당옥수수를 베어 물었다. 사진 촬영 겸 식후 산책길에는 인근 강정천을 조금 걸었다. 바위에서 비로소 그는 ‘맨발’이 되었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는 “내 책의 핵심은 자연과의 재연결”이라고 말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간신히 마을 카페에서 둘이 앉게 되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방랑가인 줄 알았는데 무척 바쁘네요.
“저는 사실 누구보다 빨리 이동하는 편이에요. 성질이 급해서요. 오랜만에 제주에 와서 섬 전체를 휘젓고 다녔어요. 첫날에는 북동쪽 해안을 따라 20㎞를 걸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만나본 사람들이 맨발이라고 하던데, 오늘은 맨발이 아니에요.
“저도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요즘엔 신발 잘 신고 다녀요. 한 켤레밖에 없어서 밑창이 다 닳았지만요. 맨발로 다닐 때는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거나 왜 신발이 없냐고 묻기도 했는데, 그러면 저는 왜 꼭 신발을 신어야 하느냐고 되물었어요.”
―2014년 12월, 돌아올 기약 없이 집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살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말하자면 ‘자살 여행’을 떠난 거죠. 그런데 떠나자마자 좋았어요. 살 것 같았죠. 결국 그렇게 ‘살자 여행’이 돼버렸어요.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긴 했어요. 책에도 썼다가 편집장의 권유로 삭제했어요. 사람들이 자극적으로 소비할 것 같아서요. 삭제하길 잘한 것 같아요.”
―눈이 빨개졌어요. 아직 그 일이 가슴에 남아 있나봐요.
“눈물이 나네요. 제가 보다시피 눈물이 많아서.”
―이 감독님이 만든 다큐멘터리영화 <파랑새 방랑학교>에서도 동물 우리 앞에서 한참 뚝뚝 우는 장면이 있어요.
“소들이 나가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제가 좀 충격을 먹었어요. ‘내가 이것을 몰랐다니’ 싶어서 울었어요. 주로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마다 울음이 터지는 것 같아요.”
―교감을 잘하나봐요.
“그건 아니지만, 청소년 때 동물원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땐 나도 이 동물들처럼 갇혀 있구나, 억압돼 있구나 느꼈어요. 내 삶이 소중하다, 내 자유가 소중하고 자유롭게 살기에 나는 마땅한 존재라는 감각이 여행 전에는 없었어요. 만날 죽고 싶어 하는 사람한테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집을 떠난 뒤 내 존엄에 대해 스스로 느끼게 된 거죠.”
이하루씨가 살던 기숙형 고등학교에선 밤 12시 소등과 아침 6시 점등이 일상이었다. 여행하면서 그는 2천 명이 넘는 공동체에 머물기도 했다. 달의 주기를 따라 자연에 파묻혀 지내며 서로 축복하는 유럽의 ‘레인보 개더링’(무지개 모임)에서는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매끼 식사 뒤에는 형편껏 서로 물질이나 축복의 마음을 나눴다. 이하루씨는 레인보 개더링에서 계곡으로 흐르는 깨끗한 물을 마시며 축복을 느꼈다고 했다. “문득 살아 있다는 것이 저주나 악몽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나의 존재와 삶이 소중하게 느껴졌다.”(책 104쪽)
―외롭지는 않나요.
“저는 외로움, 불안감, 연애와 결혼, 성공, 심지어 꿈마저도 ‘정상화’하려는 ‘사회적응’의 일부라고 봐요. 자본주의가 주입하는 욕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혼자 있을수록 더 자유롭고 충분하게 느껴져요.”
―그래도 욕구가 있을 텐데요.
“먹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게 아니에요. 대단한 희생도 아니고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실제 제 모습에 가까워요. 그렇게 내가 해방되는 경험을 하는 거죠.”
―‘영상’은 언제부터 했나요.
“2017년부터예요. 그해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을 보고 축산업에 의문을 처음으로 품었어요.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독재 시대 1년 만에 군부에 저항하는 사람이 100만 명 넘게 살해됐죠. 감독은 작정한 듯 학살 주역의 순수하고 무지하며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충격적이었죠.”
―그게 바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잖아요.
“한나 아렌트는 이름만 알고 책을 읽어보진 않았어요. 그런 말을 했군요.”
―홀로코스트 학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아이히만은 누군지 알죠. 2019년 방문한 오스트리아 ‘진 캠프’에서 큰 논쟁이 있었어요. 제가 동물 학살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했다고 일방적으로 비난받았거든요. 진보 잡지를 내는 커뮤니티였는데 그들은 학살되는 동물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문제제기를 묵살했어요. 이후 나치 홀로코스트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럴수록 축산업과 홀로코스트의 실질적, 역사적 연관성은 더욱 명확해졌죠.”
―한국에서도 동물 학살을 인간 학살과 비유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있어요.
“이것은 왜 학살이 아니냐고 저는 묻고 싶어요. 그래서 부제목에 ‘학살의 시대’를 넣었고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제 책의 ‘평화에 대해서'에 반론을 담았으니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동물해방에 관한 영화 <검은 환영>(2020년), <플래닛 A>(Planet A, 2022년)를 만들었는데, 잔혹한 다큐멘터리였어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요.
“저는 연출가가 아닌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현실을 그대로 담은 장면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야말로, 현실에서 폭력성을 인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 풍부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대로 이전에는 그런 장면을 보고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인도적으로 길러서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죠. 학살자의 언어였어요. 인도네시아 군부 학살자도 ‘공산당을 몰살해야 하지만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공산주의자, 페미니스트, 난민, 장애인, 도살장에 매달린 닭의 자유는 어째서 그렇게 없어도 되는 양 취급해야 할까요.”
―그래서 기록을 하게 됐나요.
“기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이 변화했어요. <검은 환영>을 촬영할 때는 도살장 앞에서 트럭 안의 돼지를 찍는데 운전기사님이 왜 남의 사유재산을 촬영하느냐며 경찰을 부르고, 자기가 돼지를 싣고 와서 무시하냐는 말도 했어요. 그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요. 농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육식을 하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육식 기반으로 구조화된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하루씨는 이스라엘에서 한 커뮤니티 공간의 주인이 20년 가까이 저지른 성폭력을 고발하고 ‘미투 운동’을 촉발했다. 히피 공동체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숨기던 여성들과 연대해 가해자를 심판대에 올렸다. 그 역시 돈을 적게 가진 채 입국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구금된 적이 있었기에 자유를 박탈당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그리스에서는 난민들과 함께 지냈고 유럽과 미국, 대만과 한국에서 동물해방 활동에 참여했다. 대담한 반면, 조마조마한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그의 여행기를 두고 박대우 대표는 “현대 사회가 지닌 모순을 순서대로 맞닥뜨리고 무너뜨리는 격렬한 쟁론과 연대의 르포”라고 말했다.
―60여 나라를 돌아보니 한국은 어떤가요.
“극단적 자본주의의 대표주자라고나 할까요. 난개발과 생태계 파괴, 물신숭배가 가장 활발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하면 오지게 참견하고요. 제가 가본 나라 중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설명한다면요.
“정상성에 대한 추구, 욕구가 세계에서 가장 심한 편인 것 같아요. 성소수자, 병역거부자, 동물을 안 먹겠다는 사람 등 자신과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왜 그렇게 가만두지 못하는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거기서 벗어날 때 너무 살기 힘든 거죠. 혐오도 많고요.”
―‘정상성’이 주는 안정감도 있잖아요.
“이상적 이미지가 강요되니까 사람들이 불행한 거죠. 성공 모델을 주입하고 모두가 그것을 향해 달려가죠. 사실 정상성에 부합하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도 않아요. 안정감이라는 말도, 자본주의로 인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포장된 언어라고 생각해요. 저는 불안정한 게 재밌고 좋은데요.”
―저자가 부럽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비정상은 맞아요. ‘정상’들 사이에서 나 혼자 ‘비정상’이기 때문에 힘들다면 떠나는 게 답이에요. 그 세계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도 하는데요.
“저는 다달이 나가는 고정지출을 최대한 0으로 맞춰놓고 생활해요. 여행할 때는 한달에 보통 5~10만원 정도 썼는데, 그 정도는 한 달에 하루이틀만 일해도 벌 수 있죠. 필요한 금액이 적을수록 일해야 할 시간이 줄고, 그만큼 자유에 가까워지겠죠. 자본주의 사회가 소비를 끊임없이 촉진하기 때문에 개인을 탓하기는 어렵지만,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책을 보니 ‘권력’에 대해 많이 사유하는 것 같아요.
“권력에 대해 지금의 생각을 갖게 된 세 가지 전환점 같은 게 있어요. 길에서 만난 남성에게서 내 목숨이 그에게 달려 있다는 위협을 느낀 사건이 한 번 있었고, 여권을 빼앗긴 채 외국인구금소에 잠시 갇힌 일도 있었죠. 그때 위계와 폭력이라는 감각이 피부로 와닿았죠. 그런 경험과 더불어, 자연으로 인해 되찾은 나의 자유와 존엄이 소중하다는 감각이 결합됐어요. 그러자 비로소 이 세상에서 ‘내가 쥔 권력’과 책임을 돌아보게 됐고요.”
―반자본주의적 여행가를 키운 생각이군요.
“저는 여행자로서 나를 지칭한다면, 그냥 ‘노마드’라고 하는 편이 맞는 것 같아요. 여행이 아니라 사는 건데, 그저 돌아다니는 게 편한 사람이에요.”
―2014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상당히 멀리 왔어요.
“그러게요. 돌이켜보니 여행 초기 바다 위에서 살 때가 제일 좋았어요. ‘카우치 서핑’을 하다보니 세일링 보트 위에서 지내볼 기회가 있었죠. 집도 차도 갖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미래에 배 한 척을 마련할지도 모르겠어요. 버려진 배를 고쳐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도 몇몇 알고요.”
―부초 같은 삶이네요.
“친구가 재미삼아 사주를 봐 줬는데 ‘역마살’이 4개가 있다고 했어요. 하하. 그러고보니 제 운명따라 흐름대로 살고 있기는 한가 봐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저는 되고 싶은 게 없어요. 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때그때 되고 말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없고 도덕적이거나 금욕적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우연히 거기 있었을 뿐이에요. 인간이 모든 종 가운데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을 지배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결벽증을 갖고 있던 ‘문명인’이 운 좋게 도시를 떠나 자연과 재결합하게 된 거죠. 그렇게 변화한 것이 지금의 저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겠죠.”
세계 어디에도 집과 친구가 있는 사람, 여러 나라에 혈족이 아닌 다양한 친족을 가진 사람, 지구라는 행성을 이동하면서 그 스스로 급격히 진화하는 어떤 히치하이커, 이하루는 그런 사람이었다. 강정에서 취재진과 함께 택시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린 그는 자신을 재워줄 지인의 집으로 다시 이동했다. 35ℓ 배낭이 가진 짐의 전부였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제주=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천칭자리’는 양쪽 무게의 균형점을 찾아 방황하는 이유진 선임기자가 무겁고도 가볍게 사는 사람을 만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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