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조탄압 이후 건설사 하청업체들이 ‘노조 탈퇴해야 일을 주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거기다 팀장은 매일 1만원씩 떼어가고 관리자 워크숍 비용까지 달라 하고요. 이게 정말 정부가 바라는 바람직한 건설현장 모습인가요?”
건설노동자 ㄱ씨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말했다. 그는 2022년 12월부터 경기도 부천 ‘힐스테이트 소사’ 현장의 형틀목수로 일했다. 2023년 3월 현장 노조 단위가 와해된 뒤 임금이 줄고 수수료를 요구받는 등 처우가 크게 후퇴했다. 윤석열 정부가 전방위로 노조탄압을 하며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외치지만, 건설현장 부조리는 전보다 더 심해졌다고 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ㄱ씨는 2021년 6월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처음 가입했다. 노조에 가입한 뒤론 일감 소개업자인 ‘오야지’(도급팀장)를 따라다닐 일 없이 노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소사 현장도 노조 조합원으로 구성된 ‘노조팀’이 따낸 현장이었다. 2022년 12월, 팀장 황아무개씨를 필두로 조합원 11명이 힐스테이트 소사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노조팀’과 ‘오야지팀’의 차이는 중간착취와 불법 재하도급 유무다. 고용이 불안정한 건설현장에선 도급을 가장한 간접고용이 판친다. 일명 ‘오야지’라는 팀장이 일감을 따낸 뒤 팀원들을 모집해 소개료를 받는다. 일감을 따내는 방식도 노동자를 하청업체에 직접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무슨 공정을 마치겠다’는 식으로 물량을 받는다. 팀원으로서는 오야지의 의사에 고용이 달렸고, 임금 일부를 떼이기도 한다. 반면 노조는 노동자를 건설사에 직접 소개하고 물량 단위로는 일감을 받지 않는다. 하청업체도 오야지에게 물량을 떠넘기는 대신 노동자들을 데리고 직접 시공해야 한다.
노조팀 소속이 오야지팀 소속보다 처우가 나았으므로 많은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건설노조 가입 인원 2018년 3만8천 명 → 2022년 7만1천 명). 그런데 2023년 1월 국토교통부가 건설현장 노조를 ‘건폭’이라 부르며 강도 높게 탄압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시공사들이 노조팀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감이 줄자 ㄱ씨의 팀장은 팀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팀장이 ‘요즘은 노조 하면 일감 따기 어렵다’며 노조 탈퇴를 요구했다. 아예 탈퇴 문자 양식을 만들어 조합원들에게 보내주며 ‘이거 보내서 노조 탈퇴하라’고 안내했다. 노조 간부들 연락처도 전부 차단하도록 시켰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문자를 보내야 했다.” ㄱ씨의 말이다. 이에 대해 ㅇ하청업체 쪽은 “노조 탈퇴를 선택한 것도, 스스로 그 계약서를 쓴 것도 노동자들”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3월 조합원들이 노조에서 대거 탈퇴했다. 노동자들 임금도 크게 줄었다. 더는 노조 소속이 아니니 건설노조가 하청업체들과 맺은 단체협약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단협에 정해진 형틀목수 일당은 25만원이었지만, ㄱ씨 등은 1만원 적은 24만원으로 ‘다운계약’을 해야 했다. 반장급은 임금 하락폭이 더 컸다. 단협에 정한 28만원이 아닌 26만5천원에 계약서를 써야 했다. ㄱ씨가 속한 하청업체는 건설노조와 해마다 단협을 맺는 하청업체 쪽 연합체 ‘철근콘크리트서경인(서울·경기·인천)사용자연합회’의 일원이다. 그럼에도 노조가 없어지자 단협보다 낮은 금액이 당연하게 적용됐다.
팀장은 그 금액에서도 매일 1만원씩을 소개비와 밥값 명목으로 가져갔다. 노동자 처지에선 일당이 25만원에서 23만원으로 2만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팀장은 수개월에 한 번씩 ‘회사 워크숍비’ 명목으로 조합원들에게 3만원씩을 따로 걷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안 가고 회사 관리자들끼리만 가는 워크숍이다. 이에 대해 하청업체 쪽은 “팀장이 자재 구매 목적으로 걷었다고 한다. 현재 노동부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노조가 없어진 영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노조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작업 속도 압박이 천지 차이다. 노조가 없어진 뒤로 근무 중 2시간씩 받던 안전보건교육도 퇴근 후 10분짜리로 대폭 줄었다. 공정도 좀더 꼼꼼히 하겠다고 여유를 달라고 하니 바로 거절당했다. 여유가 있어야 품질이 나오는데 쪼들리니 당장 쳐내기 바빴다.” 같은 하청업체의 또 다른 노동자 ㄴ씨의 말이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도 고용불안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2023년 1월, 힐스테이트 소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는 재해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노동자 4명이 다쳤고 공사도 한동안 중단됐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한 휴업수당은 8월 말에야 ㄱ씨 등에게 지급됐다. 그것도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서 겨우 받았다. “팀장이 말해주지 않아 몰랐다. 팀 전체 안 받는 거로 혼자 사 측과 합의해버린 듯하다. 우리는 뒤늦게 노동부에 신고 넣어서 받았지만 지금도 오야지팀 중엔 신청 못하는 사람이 많다. 괜히 부당행위당할까 걱정하는 거다.” ㄱ씨가 말했다.
2023년 9월26일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은 힐스테이트 소사 현장을 감독해 ㅇ업체를 포함한 3개 하청업체가 휴업수당 8570만원을 미지급한 사실(임금체불)과 포괄임금을 이유로 휴일수당을 법정 임금보다 적게 지급한 사실을 적발했다.
ㅇ하청업체 쪽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노임 단가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노조 탈퇴를 했다기에 일반공(비조합원) 기준으로 계약하기로 했고 본인들도 그렇게 동의했다”고 말했다. 또 임금 일부를 떼어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현장이 크고 노동자가 많기 때문에 일일이 다 관리할 순 없다. 그러나 회사 관리자들이 연루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 ㄷ씨는 2023년 6월 국민신문고에 소사 현장을 불법 재하도급으로 신고했다. ‘회사 관리자들을 접대했다’는 팀장의 발언을 토대로 그가 오야지(불법 재하도급 팀장)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부의 답변은 “계약서와 증빙자료를 첨부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장 노동자인 ㄷ씨로서는 내부 자료를 구할 길이 없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그의 신고는 기각됐다.
“현재 건설노조 조합원 상당수가 노조탄압 이후 일감을 구하기 힘들어 오야지 밑에서 불법 재하도급으로 일하고 있다. 특정 공정을 재하도급으로 넘겼다는 계약서 등의 증거자료가 있어야만 혐의가 인정되는데 증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경일 건설노조 법규부장의 말이다.
“정부가 노조를 때려잡으니 일도 안전도 전보다 더 힘들어졌어요. 건설현장 부조리도 더 양산되고요. 정부가 원했던 게 정말 이런 모습이 맞는지 묻고 싶어요.” 건설노동자 ㄱ씨와 ㄴ씨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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