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텔롯데는 서울 구로구 롯데시티호텔 임대인에게 ‘코로나 대유행 때 지불한 임대료 일부를 돌려달라’며 2021년 5월 소송을 걸었다. “전염병 등 불가항력적 사유가 있으 면 계약 조건 수정에 협의하기로 한다”는 계약서상 조항을 근거로 임대료 감액을 주장한 것이다. 1심에선 임대료가 30% 감액(원고 일부 승소)됐지만 2심에선 패소했다. 이 사건은 원고패로 확정됐다.
#2. 멀티플렉스 영화관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 주식회사는 대구 등 전국 각지의 영화관 임대인들을 상대로 임대료 감액분을 돌려달라는 소송 8건을 내 모두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에 타격을 입은 점 등이 감액 사유로 인정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낸 임대료 일부를 돌려달라며 뒤늦게 소송을 내는 임차인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임대료 감액 사유에 해당하는데 당시에는 반영이 안 됐다는 취지다. 영화관·호텔·면세점 등 대기업 임차인은 물론 헬스장·영어학원 등 소상공인 임차인도 소송에 나서는 추세다. 2022년 상반기부터 소송이 줄이어 여러 사건이 1심 결론이 났다. <한겨레21>이 코로나19에 따른 임대료 반환을 요청한 22건의 소송 결과를 살펴보니, 하급심 법원마다 결과가 달라 업종·지역별로 희비가 교차했다.
임차인들의 임대료 감액 청구 근거는 민법 제628조와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1조가 정한 ‘차임증감청구권’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계약한 대로 임대료를 내야겠지만, 예상치 못한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계약한 임대료와 실제 임대 가치 사이에 큰 괴리가 생길 경우 계약 수정을 허용하는 제도다. 자칫 계약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관들은 인정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코로나19 관련 소송에서도 하급심 재판부는 해당 업종·지역의 매출이 큰 타격을 입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정부 방역 지침 등 코로나19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결과인지를 주로 따졌다. 코로나19와 매출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코로나19 이외에 매출에 영향을 준 다른 변수가 있으면 청구가 기각됐다.
대표적으로 희비가 엇갈린 산업은 영화와 호텔이다. 전국 각지의 영화관 임대인들에게 소송을 낸 롯데컬처웍스와 씨제이 씨지브이(CJ CGV)는 각각 8건과 2건의 소송 모두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했다.1 재판부는 영화관 운영사들의 감액 청구 주장 자체는 받아들이되, 감액 청구 비율을 이들이 주장하는 50~60%보다 낮춘 20~30%로 판결했다. 2심이 진행 중인 롯데컬처웍스 1건을 제외하고 10건 중 9건의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반면 호텔업계는 대부분 패소했다. 각각 서울 종로구와 서울 마포구 호텔을 임차한 호텔신라와 주식회사 대림이 임대료 감액 청구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2 그나마 호텔롯데의 경우 롯데시티호텔 건에서 1심 승소했으나 이후 2심에서 원고패로 뒤집혔다.3 호텔롯데는 부산 해운대 롯데호텔 건에 대해서도 1심 일부 승소 뒤 2심이 진행 중이다.
두 업종을 가른 차이가 뭘까? 우선 코로나19가 끼친 피해의 크기가 달랐다. 판결문을 보면, 한때 1800만 명에 이르던 월평균 영화관 관객 수(2019년 3~12월 기준)는 이듬해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이후 350만 명 수준(2020년 3~12월 기준)으로 약 80% 급감했다.4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있던 대구 달서구 롯데시네마는 2020년 3월 한 달간 관객이 ‘0명’인 적도 있었다. 이 영화관의 월별 매출은 전년보다 68~100% 줄었다. 이들 영화관 운영사에 대해 재판부는 “상영관 휴관과 좌석 띄어 앉기, 음식물 섭취 제한 등 정부의 방역 지침으로 영화관 매출 손실이 컸다”며 임대료를 감액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호텔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낙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서울 구로구 롯데시티호텔의 2020~2021년 연간 객실 매출액 감소분은 2019년의 50~60% 수준이었다.5 광화문 신라스테이와 마포구 글래드호텔은 각각 판매 객실 수와 투숙객 수가 오히려 2019년보다 소폭 더 늘기도 했다. 호텔들이 고객을 잡기 위해 객실 단가를 낮춘데다 재택근무도 활성화된 영향이다. 두 호텔의 매출도 구체적 수치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2021년 3월부터는 전년을 상회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두 사건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는 △15년 단위 장기 임대차 계약에서 일시적 관광 수요의 급감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고 △호텔 기업들이 호텔 외에 관광상품, 면세 판매 등으로도 수익을 올리는 우량 상장법인이라는 점을 공통된 근거로 들어 호텔 기업들의 감액 청구를 기각했다.
헬스장과 영어학원도 대비를 보였다. 헬스장의 경우 정부의 방역 지침에 직접적 타격을 받았다. 차임 감액 청구 소송을 낸 서울 강남구 ㄷ헬스장과 ㄹ헬스장의 사례를 보면 2020년 3~4월은 운영이 아예 중단됐고, 2020년 8월부터 2022년 4월까지는 집합 금지와 영업시간 제한 조치를 거의 매달 번갈아 가며 받았다.6 재판부는 “영업 금지·제한 조치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고객 수가 상당히 감소했을 것이 경험칙상 충분히 인정된다”며 두 헬스장 각각에 임대료 30% 감액을 인정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점포들의 감액 청구는 기각됐다. 서울 서초구의 ㅎ영어학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원생 수가 크게 줄었다며 임대료 30% 감액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임대차계약이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2020년 6월 체결됐고 △2019년 대비 2020년 매출액의 감소폭도 20% 수준에 그친다며 코로나19는 ‘예측할 수 없는 경제변동’이 아니라고 봤다.7 또 ㅎ학원이 점포 위치를 이전한 것도 영어학원의 매출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 송도의 ㅅ부동산 공인중개사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쪽은 정부의 방역 지침으로 손님이 줄어 매출이 하락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부동산 중개업 특성상 부동산 경기 사이클의 변화로 원고의 매출이 변동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청구를 기각했다.8
상가가 자리한 지역에 따라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 명동의 한 액세서리 판매점은 상품의 특성과 무관하게 외국인 매출 비중이 큰 상가라는 점을 판사가 주로 고려했다.9 이 상가는 2019년 대비 2020년 매출이 90% 감소했다. 판사는 “원고의 점포가 있는 서울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을 통한 매출이 전체 매출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라며 외국인 매출 감소 영향을 고려해, 임대료 20% 감액을 인정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입점한 에스엠(SM)면세점도 인천국제공항을 상대로 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50% 임대료 감액이 적법하다’는 확인을 받았다.10 이 기간 비행기가 뜨지 않아 면세점 고객이 전년도의 90%까지 줄어든 점을 재판부가 감안한 것이다.
앞 사례만큼 코로나19와 매출 감소의 연관성을 촘촘히 입증하지 못하면 감액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북 전주의 한옥마을에서 디저트를 파는 ㄴ상가에 대해 재판부는 “코로나19 사태로 한옥마을 관광객이 줄어들어 사업 매출에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긴 한다”면서도 매출 감소 등의 증거만으로는 감액 청구의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봤다.11 재판부는 오히려 “(ㄴ상가가 판매한) 마카롱이 시대적 유행과 관련 있는 식품”이라며 “원고가 새로운 점포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품) 종류를 변경한 점 등에 비추어 고객 수요의 감소가 매출액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 합정동의 주상복합 메세나폴리스에 있는 화장품 판매점도 ‘증거 부족’으로 패소했다.12 재판부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이 사건 점포의 2020년도 매출이 전년에 비해 약 33% 감소한 사실이 인정되기는 한다”면서도 “매출의 감소가 온전히 코로나19 사태의 발생으로 인한 것이라거나 코로나19 사태가 매출 감소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화장품 판매업이 호텔·면세점처럼 코로나19로 매출이 현저히 감소한 업종이 아니고 △합정동이 외국인 관광객 위주의 상권도 아니며 △그 기간 경영진의 실책에 관한 언론 보도도 다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감액 청구를 기각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는데도 임대료가 조정되지 않자 ‘감염병 위험을 임차인만 과도하게 감내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커졌다. 일부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추는 ‘착한 임대인 운동’도 벌였지만 개개인 임대인의 선의에 기대야 해 한계가 컸다. 이에 국회가 2020년 9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1급 감염병을 차임 감액 사유에 포함했고, 법원도 코로나19를 차임증감청구권 적용 사유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 사례에서 보듯 아직은 매출 감소와 감염병의 인과관계가 뚜렷한 일부 사례에 한해 적용되는 형편이다.
“법관이 사정 변경을 이유로 한 차임 감액 청구를 받아들인다는 건 결국 민법의 기본 원칙인 ‘계약 준수 원칙’에 예외를 둬 계약을 수정한다는 의미다. 법관 입장에선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상가 임대인 중에 은행 빚으로 이자를 다달이 내는 경우도 많아 임차인보다 우위에 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법관이 앞으로도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지속될 수 있다.” 김현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차임증감청구권의 적용 범위가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한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법)는 “차임증감청구권은 계약자의 경제적 구제책이라기보다는 차임 시세의 적정성을 유지하려는 취지에 더 가깝다 . 코로나19로 인해 건물을 처음 약속한 대로 쓰기 어려워졌고 실질적 임대 가치도 하락했으니 양자의 경제 사정과 별개로 차임을 재조정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10·29 참사로 인한 이태원의 상가 차임 시세 하락이나 홍수로 인한 반지하 주택의 차임 시세 하락 등 예측할 수 없는 사정으로 임차인과 임대인이 분쟁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수 있다. 그 경우 차임증감청구권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 기준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판결 참조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가합548311 외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합592642 외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36472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가합548311
5.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36472
6.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단5279503 외
7.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5049778 외
8. 인천지방법원 2021가단284584
9.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5025147
10. 인천지방법원 2020가합65769
11. 전주지방법원 2021나12646
12. 서울서부지방법원 2020가합4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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