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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 직격 1년… 포항 재난대응 얼마나 바뀌었나

2022년 태풍 ‘힌남노’로 10명 사망 등 기후재난 직격탄 맞은 포항의 피해 복구·대비 현장 점검… 항사댐 건설 추진 등 나섰지만 “근본 대책 아냐” 비판도
등록 2023-08-19 11:28 수정 2023-08-21 10:39
2023년 8월 제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간 직후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오어지 앞 풀빌라의 모습. 류석우 기자

2023년 8월 제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간 직후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오어지 앞 풀빌라의 모습. 류석우 기자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덮친 직후 찍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오어지 앞 풀빌라의 모습. 류석우 기자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덮친 직후 찍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오어지 앞 풀빌라의 모습. 류석우 기자

“불안하고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많이 힘들었어요.”

2023년 8월10일 오전, 제6호 태풍 ‘카눈’이 다가오고 있을 때 김은숙(53)씨는 아직 그곳에 살고 있었다. 김씨는 11개월 전 태풍 힌남노 때 아들과 함께 지하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다가 홀로 구조됐다. 김씨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만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후 김씨의 일상은 무너졌다. 안으로는 공황장애와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밖으로는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살았던 공간이어서다. 태풍으로 재난을 겪은 곳에서 태풍에 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밖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방에만 박혀서 그렇게 카눈을 보냈다.

‘역대급’ 위력의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정확히 관통한다는 소식에 경북 포항을 포함한 전국이 긴장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카눈으로 인한 피해는 전국에서 361건이 접수됐지만 다행히 태풍으로 인한 인명사고는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포항도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8월11일 <한겨레21>이 찾은 포항은 마치 큰 피해를 본 도시 같았다. 1년 전 힌남노가 남긴 흔적이 아직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포항 남구 오천읍 냉천 곳곳에 힌남노 직후 쌓아놓은 톤백(흙을 담은 마대)이 있었고, 포클레인과 트럭이 곳곳에서 개선복구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높이가 낮고 교각이 많아 물의 흐름을 막는다고 지적된 냉천교와 인덕교 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한겨레21>은 2022년 9월 포항을 찾아 ‘마른 천'이던 냉천이 기후위기로 어떻게 ‘성난 천'으로 바뀌어 범람했는지를 들여다봤다. 힌남노가 동반한 시간당 100㎜ 이상의 이례적인 집중호우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비돼 있지 않던 포항을 직격해 큰 피해를 남겼다. 1년 가까이 지난 2023년 여름,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포항시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피해를 본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포항으로 향했다.

카눈 앞두고는 “두려워서 잠이 오나요”

영일만의 정중앙에 자리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담벼락을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회사 오른쪽을 따라 영일만으로 흐르는 냉천이 있다. 포스코가 있는 하류부터 냉천을 따라 상류에 있는 저수지인 ‘오어지'로 올라갔다. 냉천 수로 주변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이 있던 자리는 힌남노 때 쓸려간 뒤 그대로 비어 있었다. 물이 꺾이는 구간마다 직격으로 물을 맞아 무너졌던 제방은 아직 다 복구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오어지 앞에 다다르자 카페가 있던 자리에 재해복구사업 임시사무실이 차려져 있었다. 오어지는 카눈이 뿌리고 간 비로 황토색 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2022년 9월6일. 오어지는 새벽 5시를 기점으로 저수율이 100%를 넘어가면서 물넘이 구간으로 물이 계속 흘러갔다. 순식간에 넘친 물은 저수지 앞 주차장을 직격했고 쓸려 내려간 토사와 물이 바로 밑에 있던 풀빌라를 덮쳤다. 당시 건물 한 채가 통째로 떠내려갔던 풀빌라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떠내려갔던 건물은 힌남노 이전 위치로 원상 복귀됐지만 그 앞의 풍경은 그렇지 않았다. 돌로 임시제방을 쌓았지만 그마저도 빈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며 풀빌라 숙박업을 하는 최율호(61)씨는 아예 거처를 옮겼다. 트라우마 때문이다. “말해 뭐 합니까. 지금은 다른 데 나와 있어요. 여기서도 (카눈이 올 때) 한숨도 못 자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틀어놓고…. 트라우마 때문에 포항에 안 있으려고요.”

오어지로부터 약 4㎞ 떨어진 용산2리 주민들도 카눈 예보를 보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곳은 힌남노 때 포항에서 가장 먼저 침수된 마을이다. 당시 집이 완전히 침수된 주민 이종연(80)씨는 지금 집 옆에 놓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 안에 가득 찬 펄을 걷어내도 완전히 닦아내기 어려운 탓이다. 그는 카눈 접근을 앞두고 경로당에서 잤다. “두려워서 잠이 오나요. 잠을 못 잤지요. 저지대라, (물이 못 빠지면) 못이 되는 거예요.”

용산2리를 가로지르는 소하천인 용산천은 마을을 가로질러 냉천까지 뻗어 있었지만 마을 앞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90도로 꺾였다. 포항시는 2017년 용산천 유로 변경을 허가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힌남노 이전에도, 주민들은 홍수 피해를 겪을 수 있다며 문제제기를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힌남노 때 큰 피해를 봤다. 용산2리 주민 15명은 2022년 12월 서울중앙지법에 포항시와 아파트 건설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상태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에 있는 이종연씨 집.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로 인해 집 안에 펄이 가득 차 가전제품을 밖으로 내놓은 모습. 류석우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에 있는 이종연씨 집.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로 인해 집 안에 펄이 가득 차 가전제품을 밖으로 내놓은 모습. 류석우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에 있는 이종연씨 집. 2023년 8월 집 옆에 컨테이너를 설치한 모습. 마을 뒤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류석우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에 있는 이종연씨 집. 2023년 8월 집 옆에 컨테이너를 설치한 모습. 마을 뒤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류석우 기자

트라우마로 포항 떠난 주민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던 냉천 인덕교 인근 ㄱ아파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해 보였다. 주차장은 새롭게 페인트칠했고, 입구엔 차수벽을 설치했다. 물이 밀고 들어왔던 아파트 담장은 새로 만들어졌고, 무너졌던 냉천 제방은 톤백을 쌓아뒀다. 그러나 제방에 쌓아 올린 모래주머니도, 새롭게 설치한 담장도, 주차장 차수벽도 여전히 이곳에 사는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진 못했다.

김은숙씨는 “주차장 앞에 보호막(차수벽)을 설치했지만 솔직히 그게 얼마큼 막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힌남노가 오고 나서 위에선 이제 뭐 이것저것 (안전 관련 조처가) 시행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만 한다”고 털어놨다. “모래주머니는 설치됐지만 (냉천을) 바라볼 때마다 조마조마해요. 아파트 앞 다리(인덕교)만 해도 조처해야 하는데 아직도 안 됐어요. 이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라고 해도 어쨌든 일이 난 거잖아요. 그럼 잘못된 것을 다 고쳐야죠.”

힌남노 피해 이후 ㄱ아파트 주민들은 냉천 주변에 설치했던 편의시설 등을 다 없애달라고 포항시에 의견을 전달했다. 피해 당시 이장이던 황병건(70)씨는 “공청회를 할 때 냉천 정비 문제를 다뤘는데 공원이나 편의시설은 전부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물길이 흘러가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없애자고 의견이 모여서 포항시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앞 냉천 구간은 강 주변 편의시설을 만드는 `고향의 강' 사업에서 제외됐지만, 주민들의 요청으로 포함된 곳이었다.

포항시도 주민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친수’(親水)보단 ‘치수’(治水)에 초점을 맞춰 하천을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옛날에는 친수 공간을 상당히 많이 뒀는데 이제는 치수 쪽으로 가고 있어요. 사람이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하천 관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기조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산책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없앨 겁니다.” 김수호 포항시 생태하천과장이 말했다.

냉천 관리 주체인 경상북도는 2023년 6월부터 냉천 등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5개 하천의 개선복구 사업을 시작했다. 예정 사업비만 1716억원이다. 단순 복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맞춰 하천 관리도 개선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지방하천으로 분류돼 80년 빈도의 강우량에 맞춰 관리되던 냉천은 앞으로 상·중·하류를 나눠 관리된다. 상류는 그대로 80년 빈도지만, 하류와 중류는 각각 200년과 150년 빈도의 강우량 수준으로 높였다. 현재 냉천 하류에서 진행하는 준설 작업도 그 일환이다.

김수호 과장은 “냉천은 상류가 통수단면(물이 흐르는 면적)이 넓은 편이라 먼저 하류를 집중적으로 공사해 현재 10만㎥ 이상 들어냈다. 그만큼 홍수 대응 능력이 커진 것”이라며 “냉천 전체적으로는 78만㎥ 정도 더 들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제6호 태풍 '카눈' 영향으로 경북 포항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냉천 둔치에서 중장비 작업자가 토사와 암석을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제6호 태풍 '카눈' 영향으로 경북 포항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냉천 둔치에서 중장비 작업자가 토사와 암석을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항사댐, 지진 때문에 안 됐다가 홍수 때문에 통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가장 중요하다'며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항사댐 건설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아파트 건설을 위해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아놓은 용산천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다며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처음 건설 계획이 나온 항사댐은 홍수 피해 예방과 냉천의 건천화 방지, 안정적인 물 공급, 일자리 창출 등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2017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뒤 댐 건설 예정 부지가 활성단층이 지나는 곳이라는 주장이 나오며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힌남노 이후 홍수 피해 예방이라는 목적 아래 댐 건설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22년 말엔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와 사업적정성 검토도 면제받았다.

하천 전문가인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천 관리는 목표에 맞게 대책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특정한 방법 하나를 두고 만병통치약처럼 할 수는 없다”며 “무조건 ‘댐이면 된다’ ‘준설이면 된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놓고 여러 대안을 어떻게 잘 조합해서 만들어갈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침귀 포항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도 “이미 저수지가 두 곳이나 있는 상태에서 차라리 보강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수백억원을 들여 댐을 또 만든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며 “기존 시설을 보강하거나 관리하는 노력 없이 국비를 받아 댐을 만드는 게 능사가 아니다. 댐으로 홍수 관리를 하겠다면, 우리나라 좁은 땅덩어리에 모든 골짜기마다 댐을 지을 것이냐”고 비판했다.

오어지 상류 지역 주민들은 댐을 짓기 전에 오어지를 한 번이라도 청소나 했느냐고 지적했다. 오어지가 있는 항사리 이장 변갑재씨는 “오어지가 한 50%는 펄로 차 있다”며 “옛날부터 청소한 적이 없어 정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펄이 원체 많이 차뿌니까. 힌남노 때 물이 얼마 전에 맑아졌는데 또 뜬물이라. 펄만 없으면 정화가 되는데 펄이 원체 많으니까… 솔직히 말해가 청소 한번 해가 함 써보고 안 되면 댐을 짓든가 해야지. 못은 저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댐만 추진)하면 되나.”

다만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저수지 준설은 농업용수 용량이 부족할 때 하도록 돼 있다”며 “주민들 처지에선 저수지도 홍수 조절용으로 쓰면 안 되겠느냐고 볼 수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부처 간 협의해 새로운 역량을 넣거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수지는 원래 홍수 조절 기능이 없고 농업용수 관리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당장 펄을 걷어내는 등의 준설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두 개의 저수지 사이에 댐을 또 짓겠다는 계획은 추진하면서도, 마을 앞에 들어선 아파트 건설 현장 때문에 천이 직각으로 꺾여버린 용산2리는 방치돼 있다. 포항시에서 하천의 폭과 깊이를 좀더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주민 박선옥(86)씨는 이렇게 말했다. “도랑을 넓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막힌 걸 뚫어야 나가지.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동네를 다 베려뿌이 그게 문제지.” 장영태 포항시농민회 회장은 “포항시에서 몇몇 주민에게 차수벽을 만든다고 땅을 팔라고 한다”며 “동네 사람들은 지금 차수벽을 만들면 더 고립돼버린다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올해도 ‘닮은꼴’ 오송 참사… 2024년엔 없어야

지방자치단체에서 대비가 어수선한 와중에 힌남노 때 1조원 넘는 피해를 본 포스코는 2023년 자체 대비에 나섰다. 정문부터 냉천 옆 3문까지 약 1.9㎞에 걸쳐 높이 2m의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 문제는 배수시설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아 힌남노 때처럼 냉천이 범람하면 포스코에서 물길이 막혀 인근의 다른 지역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포항시도 이에 반발해 배수 대책 마련을 요구한 상태다.

포항의 경우 그나마 힌남노 때 피해를 본 경험이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기후위기 시대 집중호우와 홍수 피해는 포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2023년 7월엔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에서 14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해 전국에서 4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다. 김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시간당 50㎜ 호우가 발생한 게 1998년이었고, 최근 10년 동안은 시간당 100㎜ 이상 호우가 많이 발생했다”며 “기후위기 시대에 외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대응도 달라야 한다. 100㎜ 넘는 비가 오는데 과거처럼 50㎜ 정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은숙씨는 오송 참사를 보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당장 올해도 태풍이 또 언제 올지 모르고 내년에도 비슷한 위험이 있을 수 있잖아요. 오천에 보면 냉천 인근에 학교가 있거든요. 거기에도 강이 넘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지대가 낮거든요. 아이들도 지켜내야 하는데 이른 시일 내에 잘 (대비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2023년에도 여전히, 하천이 위험하다.

포항(경북)=글·사진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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