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친구를 입양한 친구 “느슨하고 유연한 제도가 필요해”

50개월 어린 친구 입양한 과정 담은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펴낸 은서란씨 가족 인터뷰
등록 2023-08-12 16:48 수정 2023-08-13 22:00
은서란씨가 ‘입양딸’ 이아무개씨와의 이야기가 담긴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위즈덤하우스 펴냄)를 들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은서란씨가 ‘입양딸’ 이아무개씨와의 이야기가 담긴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위즈덤하우스 펴냄)를 들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어쩌다보니 친구가 딸이 됐다. 2022년 같이 살던 친구 이아무개(39)씨를 자녀로 입양한 은서란(43)씨는 ‘어쩌다보니’에 방점을 찍었다. 처음부터 가족을 원한 건 아니었다. 은씨는 “사실 식구로 함께 잘 살고 있으면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법적 가족이 진짜 간절히 필요하다’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가족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흔이 넘자 은씨도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시골에 사는 비혼 여성으로서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법적 권리를 행사해줄 사람이 필요한 순간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가 최대 고민이었다. 홀로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을 돌보겠지만 누구에게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아마 부모님은 자신보다 먼저 돌아가실 것이고, 먼 거리에 사는 오빠는 본인 일과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은씨가 원할 때마다 오진 못할 것이었다. 믿고 의지할 다른 존재가 필요했다.

애인인지 아닌지가 중요해?

2017년부터 함께 사는 친구 이씨가 그런 존재가 돼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국내법은 ‘법정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를 가족과 후견인 등으로 한정한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장애·노령과 그 밖의 사유 등 정신적 제약으로 후견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된다. 은씨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결혼·혈연은 불가능하니 입양으로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은씨는 2022년 5월, 50개월 더 어린 이씨를 자녀로 입양했다. 양가 부모님과 주변인도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2023년 7월 은씨는 이 과정을 담은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위즈덤하우스 펴냄)를 출간했다. 은씨 이야기가 알려지자 일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우호적 반응이 다수였지만, 포털 기사와 유튜브 콘텐츠 댓글 반응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이 이미 여러 차례 시달려 지긋지긋해하는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이 단순 친구 관계가 아니라 성애적 관계가 아닌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아무개(이)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러면 성애적 관계가 아니면 괜찮고, 성애적 관계가 맞는다면 이런 결합을 통한 가족이 문제가 되는 건가?”

은서란(은) “인터뷰를 통해 동성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댓글에서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다. 같이 살면서 입양까지 했으면 100% 사귀는 사이일 거라고. 어차피 우리가 뭐라 대답하든 본인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을 거라 답변이 의미 없는 것 같다.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고.”

—친구 입양이 전례가 없다시피 하고, 최근 출산을 앞둔 레즈비언 커플 소식과 무관하지 않은 궁금증 같다.

은 “가족이라는 건 정서적 결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본 댓글에 ‘성적 결합이 동반돼서 자식도 낳고 해야 가족이지’라는 식의 반응이 있었는데, 그러면 섹스리스 부부는 가족이 아닌가? 모순이다. 가족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 책 부제를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라고 붙였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가족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1인가구로 살면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했기에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법적 보호자를 만들려면 누군가와 법적 가족이 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이 방법을 선택했다.

나는 오히려 ‘혼인·혈연 관계의 가족이 과연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버려져 가족이 없을 수도 있고, 살면서 사고로 가족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들 가족, 가족 하는 게 가족이 없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사회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자든, 부모든, 자식이든, 형제든 법적 가족이 있어야만 이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거로 인정해주지 않나. 가족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혼인·혈연 중심의 가족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다.”

‘어떻게 입양할 생각을 했지?’

—한국 사회는 결혼·출산이 아니면 가족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믿음이 강한데, 어떻게 입양을 떠올리게 됐나.

은 “사람들이 ‘어떻게 입양할 생각을 했지? 신기하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응이 더 신기했다. 서로 법적 보호자가 될 방법이 법적 가족이 되는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친구와 가족이 되려면 입양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됐기 때문이다. 남들이 신기하게 받아들일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하지?’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거기에 입양은 없는 것 같다. 입양가족의 존재를 머리로는 알지만, 대부분 결혼과 출산으로 만들어진 가족을 중심으로 여기기 때문에 가족 개념에 입양을 선뜻 떠올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가진 가족의 상이 얼마나 획일화돼 있는지를 느낀다. 그 틀이 정말 명확하게 정해진 것 같다. 그것도 일종의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이 아닐까 싶다.”

은 “생활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가족과 같은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이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전통적 가족제도를 붕괴시킨다는 이유로 엄청난 반대와 비난을 받고 있다. 가족을 더 넓은 사고로 확장하지 못하고 계속 동성애 반대에만 매몰돼 있어 안타깝다. 1인가구는 늘어나는데 언제까지 전통적인 가족제도만 고집하면서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우리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해 더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랐는데 오히려 ‘동성혼 반대’로 수렴된다. 같이 가족처럼 사는 사람에게 법적으로 어떤 자격과 권리, 의무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한데 제도적 테두리로 들어가기 위해 동성커플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게 너무 이상한 것 같다.”

—귀농하면서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어떤 모습이었는가.

은 “예전에 살았던 작은 마을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이 많았다. 할머니들은 서로 내 집처럼 왔다 갔다 하고, 누가 병원에 가면 항상 같이 다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이웃 할머니들이 돌봐주고. 그분들을 보면서 서로 저렇게 도우면서 이웃끼리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서로 필요한 순간에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족이 아닌 넓은 범위의 사람도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혼인과 혈연 중심의 법적 가족은 같이 살지 않더라도 가족으로서 어떤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꼭 동거하진 않더라도 이웃끼리 서로 실질적인 돌봄을 하고 있다면 이들에게 보호자의 권한을 일부 부여하면 좋겠다. 그럼 더 많은 1인가구가 살기 편하지 않을까? 비혼 가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만큼 보호자 권한을 가족에만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느슨하고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복지제도 안에서 한 개인에게 모든 돌봄을 다 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돌봄 관계가 많아지면 사회적 비용도 줄어드는 게 아닌가?”

논의 확대되길 바랐지만 수렴되는 결론은 하나

—자연 곁에서 살고 싶어서 귀촌했고 조용한 일상생활이 흐트러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소란스러움을 감수하고 책을 출간한 이유는.

은 “일단 우리 이야기를 기록해서 책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그동안의 삶을 한번 정리하고 나면 앞으로 다가올 삶을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친구를 입양했습니다>는 내게 맞는 삶을 찾아 방황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내 개인적 성장기다.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일종의 참고 도서다. 유난스럽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어요!’라고 소리치려던 건 아니다. 가끔 내 인터뷰 영상과 기사에 남겨진 비난 섞인 댓글을 보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주로 어떤 반응을 보나.

은 “‘결혼해 가정을 꾸려 아이 낳고 살 것이지, 의무는 안 하고 혜택만 받으려 제도를 악용했다’는 식의 댓글이 많다. 법적 가족이 된다는 건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이다. 그걸 고려하고라도 1인가구가 법적 보호자를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친구를 입양했다. 또 ‘내가 낸 세금으로 이 인간들한테 혜택 주기 싫다’고도 하는데, 도대체 성인 자녀를 둔 65살 미만 부모가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 나도 혜택을 받고 싶다.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본인들이 내 보호자를 해줄 건가? 내 노후를 보장해줄 건가?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간혹 유산 때문에 원가족과 다툼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서로 물려줄 재산도 없고 부모님에게 받을 재산도 없어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둘이 재밌게 살면 됐다

2023년 5월25일은 은씨와 이씨가 가족이 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기 일주일 전쯤 두 사람은 은씨의 이모할머니, 은씨의 어머니와 충남 태안군 안면도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4대가 가족여행을 간 셈이다. 80대 후반인 이모할머니는 두 사람이 몇 년 전부터 같이 산다는 건 알지만 아직 입양 사실은 모른다. 결혼하지 않은 조카 손녀에게 어느 날 30대 후반 자녀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은씨는 이모할머니가 크게 놀라진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모할머니가 평소 ‘친구끼리 그렇게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모할머니는 ‘우리 때는 결혼을 당연한 거로 알고 살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여자가 능력만 있으면 그럴 필요 없다. 둘이 재밌게 살아라’라고 말했다. 입양 사실을 알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보던 은씨가 말했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라고 하실 것 같아요.”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