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수소를 먹으면 몸에 오래 잔류한다며?”(동창1)
“오 노~ 어디서 그런 가짜뉴스를. 삼중수소는 땀이나 소변으로 다 빠져나가. 그리고 바나나에도 삼중수소가 있거든. …정확한 팩트부터 알아야 해.”(의사)
“알았어, 다음부턴 아무 정보나 믿지 말아야겠다.”(동창1)
“나도 우리 횟집 가게 손님들 불안은 덜어줘야겠다.”(동창2)
2023년 3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카카오톡 대화로 구성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상황극의 일부다.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는 동창들의 대화방에 현직 의사가 나타나 ‘과학적’ 답변을 늘어놓자 친구들이 의심을 점차 해소한다는 설정이다. 이 대화는 오염수 방출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만들고 싶어 하는 여론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정부기관 가운데 방류 찬성 여론을 앞장서서 만드는 주체 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은 장밋빛 기대와 다르다. 오염수 방류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 반대 의견은 78%(한국갤럽 6월30일 기준)로 여전히 압도적이다.
정부의 메시지가 효과를 못 보는 이유가 뭘까? 여당은 국민을 거짓 선동하는 야당의 ‘괴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야당은 무조건 안심시키려고만 하는 정부가 도리어 선동꾼이라고 맞받는다. 학자들은 생소한 원전 관련 용어를 연일 쏟아내며 진실 공방을 벌인다. 문제는 이 모든 것에 있다. 바로 ‘위험 소통(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다.
먼저 정부가 주장하는 ‘진짜 뉴스’의 맥락을 살펴보자. 정부와 여당은 ‘일본이 재처리하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입장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완전히 과학적으로 처리됐으면 마실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를 문제 삼는다면 북한 우라늄 폐수가 더 큰 문제”(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발언이 그 예다. 또 전문가를 앞세워 홍보자료를 배포(‘핵공학자가 말하는 희석된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의 안전성’ 등)하고, 찬성 쪽 학자들로 패널을 채운 ‘방사선 바로 알기 대토론회’를 정부 산하기관 주도로 열기도 했다.
핵심 근거는 △일본이 희석해 방류하는 오염수 수치가 일반인 연간 피폭 기준치인 ‘1밀리시버트(mSv)’ 이내이며 △일본의 재처리장비(ALPS·알프스)로 62개 방사성물질(핵종)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고 △혹 삼중수소 등을 제거 못하더라도 생명체의 몸에 남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특히 일본이 방류하는 오염수의 방사능 수치가 극히 낮다는 점을 든다. 정부의 주장에 찬성하는 학자들도 “방류된 오염수 희석해서 마시겠다”(박일영 충북대 교수), “후쿠시마 걱정한다면 괴담에 선동된 것”(정범진 경희대 교수) 등의 발언으로 정부 입장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의문도 있었다. △현재 방출 기준치를 초과하는 오염수가 전체의 70%를 차지하는데 완벽한 재처리를 담보할 수 있는가 △재처리시설이 가동 초기 고장이 잦았고 지금도 일부 물질을 못 걸러내는데 장기간 안전한 방류가 가능한가 △저선량 방사선이 인체나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학술적 검증이 부족하지 않은가 등의 문제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등은 저선량(100mSv 미만) 방사선의 인체 영향 평가는 불확실성 때문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와 백도명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오염수 안전성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허용치 기준만 보면 오염수 방류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제로 약속한 수준만큼 재처리될지, 해양환경 등 변수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영역이다. 방사능에 의한 생태계와 인체의 영향은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그 여파를 확인할 길도 없다. 현재 파악되는 정보로는 국민이 안전하다고 믿기 충분치 않다.
사실 국민의힘도 일본이 방류를 공식화한 2021년 4월엔 ‘방류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일본이 입장을 굽히지 않고 2023년 5월 한-일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일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정치적 이익에 따라 태도를 바꿨다는 의심을 살 만한 상황이었지만, 해명은 따로 없었다.
지속되는 홍보에도 여론이 요지부동하자 정부·여당은 설득 실패의 이유를 야당에서 찾았다. 이른바 ‘가짜뉴스 선동’ 주장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은 6월28일 어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앞세워 국민들에게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선동정치가 극에 달한다. (…) 과학적이고 안전한 대응을 통해 과학이 괴담을 이기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이 있는데 야당이 퍼뜨린 괴담 때문에 믿지 못한다는 취지다. 윤 의원은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태와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유사 사례로 거론했다.
그러나 위험 소통 연구자인 김영욱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과학-괴담 프레임’이야말로 소통 실패의 원인이라고 본다. 전문가의 일방적 정보 전달만 있고 일반인과의 쌍방향 소통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마치 과학을 닫힌 진실인 양 오해하고 ‘우리가 옳다’고만 한다. 그런데 과학은 불확실성도 내재하고 있어 진실-비진실을 함부로 나눌 수 없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은 기후위기처럼 대다수 과학자가 인정하는 상식도 아니고 국내외 과학자들끼리도 논쟁이 있지 않으냐. 일반인이 다양하게 의견을 듣고 판단을 내릴 주체적 권리가 있는데 그냥 ‘정보를 전했으니 믿으라’는 건 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회적 주체들끼리 숙의하는 과정이 실종되고 전체주의만 남는다.”
그는 2008년 광우병 논란과 2016년 성주 사드 배치의 전자파 논란도 ‘괴담 정치’라고 하기엔 과하다고 본다. “광우병 논란의 경우 당시 논의 주제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된 소를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였다. 일본도 20개월 이상 소고기를 안 받았는데 우리가 덜컥 받아오겠다고 했다가 국민 반대로 취소한 것 아니냐. 성주 참외 논란도 당시 두 진영이 정치 공방을 하며 나온 구호였고 실제 참외 불매로 번진 적은 없었다. 집회 중에 나온 몇몇 과격한 구호를 선별해 민중이 거기 속았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프레이밍 아닌가.”
역사에서 반복된 것은 괴담 논란만은 아니다. 국민의 불안을 괴담으로만 치부하다 뒤집힌 사례도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 노출을 우려하는 여론이 커지자, 이명박 정부는 “편서풍 때문에 일본의 방사성물질이 한반도까지 거꾸로 날아오기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지정학적 근거를 강조했다.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를 ‘국민을 선동하는 불순한 세력’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빗물에서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며 방사능의 국내 유입이 확인됐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극미량의 요오드·세슘은 아무 탈 없다” 는 의학적 근거로 맞받았다.
당시 핵공학자들도 “1mSv 미만이면 문제없다” “엑스레이 촬영도 하지 않느냐”며 국민 불안을 앞장서서 잠재웠다.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다. 다만 “원전산업의 앞날은 일본에 달려 있다. 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김경민 한양대 교수, <동아일보> 2011년 3월19일치)는 학자들의 말로 미뤄 원전산업 활성화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내용은 과학사회학자인 강윤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부교수가 당시 정부와 전문가그룹을 관찰해 쓴 ‘원전사고와 위험커뮤니케이션, 전문성의 정치’라는 논문에 자세히 실려 있다.
“‘과학적 논증과 정치적 괴담을 구분하는 건 일종의 프레임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전문성이 가치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일종의 ‘전문성 정치’(전문가의 지식이 정치 담론화하는 현상)가 강한데요. 오염수 방류 문제는 이제 과학만이 아니라 정치 영역, 나아가 정치적 책임 문제로 봐야 합니다.” 강윤재 교수가 말했다.
결국 국민 불신을 해소할 방법은 호언장담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일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송진호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연구교수는 일본 재처리 설비의 정화 능력부터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고 본다. 도쿄전력이 최근에 게시한 자료만 봐도 여전히 정화가 미흡한 것이 확인되는데 30~60년의 방류 기간에 알프스 성능이 제대로 유지되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일본 정부가 2011년 대량의 오염수를 앞바다에 방류한 적이 있어 그에 따른 해양생태계 영향 연구도 필요하다.
“해양 방류를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우리 정부가 판단한다면 이런 부분을 일본에 선제적으로 요구해 국민의 안전할 권리를 대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송진호 교수의 말이다.
수산물 수요 급감의 대책도 필요하다. 여당은 ‘가짜뉴스 근절’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소비심리는 여론전으로 쉽사리 되살리기 힘들다는 게 2011년의 경험칙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대형마트 수산물 수요는 20% 이상 급감했고 지역 횟집들은 파산했다. 수산물 소비심리는 3년이 지난 2014년 초에야 조금씩 회복했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인근 항만에 사는 우럭에서 기준치의 180배에 이르는 세슘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이때도 “연안에 정착해 사는 어종이라 우리 앞바다까지 안 온다”는 ‘생물학적 근거’로 맞받았다.
지금 ‘기준치 이내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정부는 2019년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금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때는 ‘기준치와 무관하게 국민 건강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방사선 허용치가 있더라도 국민은 그보다 덜 방사선에 노출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한국이 선택한 위생 보호 수준이 정당한가를 따질 때는 수산물 자체의 방사능 수치에 대한 고려만으론 부족하다. 연간 방사선 노출 기준 1mSv는 상한선일 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선 노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은 존중돼야 한다.” 2019년의 한국 정부가 1mSv라는 ‘과학적 사실’을 반박한 논리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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