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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시 공장 미가동 손해? 오히려 공장 가동이 불법!

파업은 법적 권리, 배상 청구할 수 없어…현대판 연좌제 ‘부진정연대책임’ 폐기해야
등록 2023-07-07 18:00 수정 2023-07-11 15:51
정의당 당직선거 출마자들이 2022년 10월6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2023년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정의당 당직선거 출마자들이 2022년 10월6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2023년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2023년 6월15일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파업에 회사가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 사건 총 6건에 대해 노동자 쪽 상고를 일부 받아들여 파기환송했다. 그간 회사 쪽 거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가정파탄을 일으키고 노동자 본인이나 가족이 자살에 이르게 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는데, 일부 제동이 걸린 것이다.

모든 민주법치국가에서 파업은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사용자가 노동자 개인들을 상대로 거액의 민사소송과 가압류를 일반화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그간 우리나라에서 무제한으로 받아들여진 회사의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처음 제한을 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번 파기환송 판결에 대한 평가는 재계와 노동계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입법 필요성에도 여야 간 견해차가 커서, 또 한 번의 거부권 행사로 인한 정치 실종이 우려된다. 이제는 모두가 냉정을 되찾고, 이 문제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결 방안을 함께 찾아가야 할 때다.

손해는 준법파업-위법파업 간 차액으로 산정해야

파업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로, 민주법치국가라면 어디나 법률상으로도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이 면책된다. 우리나라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에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이 문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 쪽은 이 조항을 통상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파업면책 조항으로 보지만, 사용자 쪽은 “이 법에 의한” 파업만 면책되고 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파업 자체는 면책되지 않는다고 좁게 해석했는데, 법원은 사용자 쪽 해석에 가깝다. 이에 사용자 쪽은 파업마다 세세한 법규 위반을 찾아내고, 이를 근거로 파업 전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노사 간 극심한 갈등이 일시에 폭발하는 게 파업인데, 파업 과정에 법규 위반이 전혀 없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파업면책 조항을 선진국과 같이 보편적 의미로 해석하거나, 입법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파업에 따른 손해를 어떻게 산정할지가 문제된다. 고정비 손해 등 어려운 용어로 포장하지만, 사용자 쪽은 결국 ‘공장을 돌리지 못한 것’이 손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파업이 일어나면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파업시 사용자가 공장을 돌리는 것이 불법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고”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 없다”(제43조). 따라서 정상적 국가라면 파업으로 ‘공장을 돌리지 못한 것’은 배상해야 할 손해가 아니다. 이를 민사법학에서 말하는 손해에 관한 차액설(差額說)의 법리로 설명하면, 그 손해는 ‘파업과 조업 간의 차액’이 아니라, ‘법규 위반 파업과 법규 준수 파업 간의 차액’으로 산정돼야 한다. 대표적으로 폭력과 재물손괴 등이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이며, 고정비 등 공장을 돌리지 못함으로써 생긴 손해는 법규 준수 파업의 경우에도 수반되므로 법리상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

이번 파기환송 판결에선 파업 기간 중 공장을 돌리지 못해도 팔리지 않은 완제품 재고가 있을 수 있다는 점, 파업 뒤 노사 협의에 따른 잔업 등으로 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 등을 손해 산정시 참작해야 한다는 취지로 일부 노동자 쪽의 손해 산정 주장이 받아들여진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조업 중단 손해가 제외돼야 한다는 보편적 기본 법리가 여전히 불분명한 것이 우리나라 상황이므로 입법에 의한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파업은 노동자 개인 아닌 노동조합의 행위

마지막으로, 노동자 개인들에게 조업 중단의 손해 전액에 이른바 ‘부진정연대책임’을 묻는 법리를 폐기해야 한다. 우선, 파업에 책임져야 하는 주체는 노동조합이지 노동자들 개인이 아니다. 파업은 행위론적으로 노동조합의 행위이지 노동자 개인들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 사용자 쪽 잘못이 있는 경우,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담당 직원 개인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위법·부당한 공무집행이 있을 때도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뿐, 담당 공무원 개인에 대한 배상청구나 구상권 행사는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한 국가배상법상 금지된다.(제2조 2항) 업무 수행상 잘못이 있다고 매번 개인배상을 청구하면 담당공무원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파업에 법규 위반이 있다고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자 개인들에게 매번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노동자는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손해배상청구의 상대방은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고 보는 이유다. 더구나 모든 노동자가 부진정연대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현대판 연좌제(緣坐制)다. 주요 선진국은 공동행위로 평가하기 위해 엄격한 기여도 판단을 하며, 단순 가담자 전원에게 연대책임을 묻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환경소송과 집회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 등에서는 이미 선진국과 같은 법리를 채용한 바 있는데, 이번 파기환송에서 노동자 개인별로 평가하도록 판시한 것은 한 걸음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로 개인배상 금지나 부진정연대책임 법리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이는 애초 계획과 달리 전원합의체 판결로 판례 변경을 하지 않은 채 기존 법리로 일부 파기환송하는 방식으로 절충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이 부분도 노란봉투법 제정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 쪽 귀책사유도 입법에 반영될 필요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사용자 쪽 책임이다. 쌍용차 사건에선 외국 기업의 꼼수 기업 인수가, 현대차 사건에선 비정규직 관련 대법원 판결의 무시가 파업의 단초가 되는 등 대부분의 파업에는 사용자 쪽 귀책사유가 적지 않다. 이 점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도 입법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파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혐오감을 냉철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파업이 모두에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편을 주는 파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헌법상 제도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불이익을 서로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나누면서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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