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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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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미룬 고속철도 통합, 국토부는 왜 반대하나?

SR 부채비율 급증하자 정부가 시행령 바꿔 대규모 출자 계획
“철도공사와 통합해야” “경쟁 유지해야” 입장차 못 좁혀
등록 2023-06-02 12:27 수정 2023-06-05 16:08
한국철도공사의 고속열차. 한국철도공사 제공

한국철도공사의 고속열차. 한국철도공사 제공

철도 통합 문제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가 자본금 2500억원인 에스알(SR, 수서 출발 고속철도 회사)에 3천억원 이상을 추가 출자하기로 결정하자, 한국철도공사 노조(이하 철도노조)가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밑 빠진 독처럼 돈이 들어가는 에스알을 이번에 한국철도공사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국토부가 2023년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에스알티(SRT, 수서 출발 고속철도) 노선 확대를 두고도 철도노조는 수서 출발 케이티엑스(KTX)를 허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토부와 에스알은 2022년 12월 고속철도의 경쟁-통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결정에 따라 당분간 경쟁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또 에스알티가 본격 운행한 기간이 6년 반으로 너무 짧고, 특히 2020~2022년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이어서 경쟁체제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철도 운영회사 통합과 관련한 주요 쟁점에 대해 국토부와 에스알-철도노조와 한국철도공사의 의견을 들어봤다.

1. 정부는 왜 에스알에 출자하나?

국토부는 기획재정부와의 협의에 따라 국유재산법 시행령을 개정해 정부출자기업체의 범위에 에스알을 포함하기로 했다. 이 개정안은 5월9일 입법예고, 5월3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곧 시행된다. 이 시행령에 따라 에스알이 국토부에, 다시 국토부는 기재부에 출자를 신청한다. 기재부는 7월 안에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이번 출자를 위해 국토부와 기재부가 시행령까지 고친 상황이라 출자는 확정적이다.

정부의 출자액은 지분율 50% 이상, 부채비율 150% 미만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대략 3600억원이 되리라고 예상된다. 현재 에스알의 자본금은 2500억원이고, 지분은 사학연금·기업은행·산업은행 등 재무적 투자자가 59%(1475억원), 철도공사가 41%(1025억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재무적 투자자들은 6월 중순 지분을 철도공사에 모두 팔고 떠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에스알은 100% 철도공사 소유가 된다.

정부는 에스알이 철도공사 단독 소유가 되는 것을 막고, 정부가 에스알의 대주주가 되기 위해 철도공사 지분 2500억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출자할 계획이다. 국토부 김민태 철도운영과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부가 59% 정도 지분을 가지려 한다”고 밝혔다. 기존 재무적 투자자처럼 에스알 지분의 59%를 가지려면 3597억원이 필요하다.

부채비율 문제도 있다. 에스알이 철도사업자로서 면허를 유지하려면 애초 조건대로 부채비율이 150% 미만이어야 한다. 그런데 재무적 투자자가 59%의 지분 전체를 철도공사에 넘기면 이 지분은 에스알의 부채로 처리돼 부채비율이 최고 1천%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스알이 부채비율을 150% 미만으로 유지하려면 대규모 출자가 필요하다.

철도노조 박세증 기획국장은 “공기업인 에스알이 이렇게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면허를 취소하거나 부채비율을 맞추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토부가 이를 피하기 위해 특혜성 출자를 하는 것이다. 한국 철도 가운데 알짜인 에스알을 독자 회사로 유지하기 위해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도 있다. 김민태 철도운영과장은 “현재 에스알의 고속열차는 스스로 보유한 10편성, 철도공사에서 임대한 22편성 등 32편성에 불과하다. 2027년 평택~오송 복복선 개통에 맞춰 14편성을 추가로 구매(5710억원)하기 위해 출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 국토부, 에스알 노선 확대 추진도

국토부의 정책에 따라, 에스알티는 2023년 9월부터 기존 경부선과 호남선 외에 경전선(동대구~창원~진주), 전라선(익산~여수), 동해선(동대구~포항) 등 3개 노선에서 하루 4회(왕복 2회)씩 운행하기로 했다. 기존에 이들 노선에서는 철도공사의 케이티엑스만 운행하고 에스알티는 운행하지 않았다.

철도노조는 국토부의 계획에 반발한다. 철도노조는 에스알티 운행 확대가 추진되던 2021년부터 수서 출발 케이티엑스 운행을 요구해왔다. 이미 철도공사는 경전선과 전라선, 동해선에서 케이티엑스를 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수서 출발 케이티엑스가 허용되면 5편성의 열차를 확보해 세 노선에서 각각 하루 8회 정도 운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세증 기획국장은 “고속철도 노선 가운데 케이티엑스 운행 구간엔 에스알티가 계속 들어오는데, 왜 케이티엑스는 에스알티의 수서~평택 구간에 들어가지 못하나. 매우 불공정한 경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민태 철도운영과장은 “케이티엑스가 수서역으로 들어간다면, 에스알티도 서울역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케이티엑스만 수서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에스알(SR)의 고속열차. 에스알 제공

에스알(SR)의 고속열차. 에스알 제공

3. 10년 동안 계속된 통합-경쟁 논란

철도 운영 사업자가 2개가 된 때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시기다. 앞서 노무현 정부 때는 기존 철도청을 철도시설공단(건설·관리)과 철도공사(운영)로 상-하 분리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현재의 에스알을 민간 사업자에 넘기려다가 여론의 매를 맞고 포기했다. 대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에스알을 철도공사의 자회사로 만들고, 철도공사와 경쟁하도록 했다. 에스알티는 2016년 말부터 운행을 개시했다.

그러나 철도공사와 에스알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2021년부터 ‘거버넌스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2022년 12월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경쟁-통합 사이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고, 경쟁체제가 정상 운영된 기간이 3년에 불과해 분석에 한계가 있으므로 경쟁 또는 통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고 결론 내렸다.

철도노조 추천으로 거버넌스 분과위원으로 참여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은 “2016년 이후 운영해온 고속철도 경쟁체제가 별 경제성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거버넌스 분과위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거버넌스 분과위에서 통합 판단을 유보한 것은 시간 끌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4. 고속철도 경쟁 체제에서 나온 결과

철도공사와 에스알 등 2개의 철도 운영사가 경쟁한 기간은 2016년 12월부터 현재까지 6년 반 정도 됐다. 거버넌스 분과위에서 경쟁 찬성 쪽이 밝힌 장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승객들에게 1년 평균 1506억원의 추가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처음부터 에스알티가 케이티엑스보다 10% 낮은 요금을 책정했고, 케이티엑스도 마일리지를 다시 도입했기 때문이다.

또 에스알티가 케이티엑스보다 더 많은 선로 사용료를 냄으로써 고속철도 건설 부채를 갚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에스알티는 운송 수입의 50%, 케이티엑스는 운송 수입의 34%를 선로 사용료로 낸다. 에스알티는 1년에 975억원의 선로 사용료를 더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스알티의 요금 인하와 선로 사용료 인상은 사실상 국토부의 정책이었지 경쟁의 결과는 아니었다.

반면 통합 찬성 쪽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철도 운영사가 2개여서 매년 발생하는 중복 비용이 406억원에 이른다. 또 사학연금 등 재무적 투자자에게 6월 중순까지 지급하는 이자 총액도 770억원에 이른다. 중복 비용과 이자 비용은 철도공사가 에스알을 통합 운영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다.

수송 비용도 에스알티가 케이티엑스보다 비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승 인하대 교수가 분석한 2017~2019년 고속철도 1인당 1㎞ 수송 비용은 케이티엑스가 78.4~87.1원, 에스알티는 108~111.4원이었다. 에스알티의 수송 비용이 1.2~1.4배 정도로 더 컸다.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통상 고속철도는 산출이 증가하면 평균비용(수송 단가)이 감소하며, 두 회사가 통합해 산출이 증가하면 평균비용은 더 감소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반철도의 적자 등 전체 철도 사업의 건전성이다. 철도공사는 고속철도 개통 이후 꾸준히 흑자를 내왔다. 그러나 고속철도를 제외한 일반철도는 만성적인 적자 상태다. 2014년 이후를 보면, 고속철도는 매년 1천억~7천억원의 흑자를 내서 매년 –3천억~-6천억원인 일반철도의 적자를 메워왔다.

그러나 에스알이 본격 운행된 2017년 철도공사의 매출은 2463억원, 영업이익은 918억원이나 급감했다. 그해 에스알 매출은 5801억원, 영업이익은 419억원이었다. 두 회사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철도공사에서 발생했을 실적이다. 에스알은 고속철도 매출의 4분의 1 정도를 가져갔다. 결국 철도공사는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과 2021년 고속철도 부문에서 1220억원과 2506억원의 흑자를 내고도 일반철도의 대규모 적자로 인해 철도사업 전체에서 각각 –5351억원, -3643억원의 큰 적자를 냈다. 에스알은 전혀 책임지지 않는 문제다.

2023년 4월24일 철도노조가 서울역에서 주최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일부 개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4월24일 철도노조가 서울역에서 주최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일부 개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5. 통합-경쟁, 어느 길로 가야 하나?

철도노조는 에스알을 철도공사에 통합하면 현재 상황에서도 하루 52회 운행 추가, 좌석 3만 석 추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매년 중복 비용 406억원, 이자 비용(6년 동안 770억원), 정부 출자 3600억원 등을 줄일 수 있다. 매년 3천억~6천억원에 이르는 일반철도의 적자를 상쇄하는 일도 훨씬 더 수월해진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고속열차 운행 횟수를 늘릴 수 있으므로 당장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철도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일반철도 공공성 유지를 위해 통합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후위기 차원에서 철도의 교통 분담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2027년까지는 일단 그대로 가겠다는 생각이다. 2027년은 고속철도 병목 구간인 평택~오송에 복복선이 완공돼 고속철도 운행 횟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2027년이 되면 에스알티의 운행 횟수도 더 늘어나, 철도공사와의 경쟁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 이윤상 철도국장은 “기존 철도공사 독점체제에서는 철도 공기업의 효율성을 측정하기 위한 비교 대상이 없었다. 에스알을 만든 것은 철도공사와 경쟁할 수 있는 비교 대상을 만들어 철도산업을 효율화하려는 것이다. 에스알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 효과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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