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네들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월급 조금만 줘도 돼. 한국에서 일하면 자기 나라에서 받았던 월급의 몇 배를 벌어서 가잖아. 어차피 그래도 일할 거 아니야.”
농장에서 만난 사업주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월급을 많이 받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최저임금을 받으며 농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이주노동자도 농장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했다. 더위와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환경, 열악한 주거환경, 고립된 농촌 생활 때문이었다.
“어떤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월급을 조금만 받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비스나씨는 어떤 생각이 들어요?”
20대 여성인 캄보디아 노동자 비스나씨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와서 돼지 머릿고기 발골 작업을 하는 식품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왼손으로 돼지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뼈를 잡아 비틀어 빼는 동작을 해 보이며, 뼈를 발라내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중에 견과류를 생산하고 포장하는 식품공장으로 일을 옮겼다. 그는 한국에서 9년 넘게 일했다.
비스나씨는 잠깐 생각하더니 눈을 부릅뜨고 내게 다시 물었다. “아, 그래요? 우리가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최저임금의 절반만 주고 싶다고 그래요? 그럼 우린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세금도 절반만 낼게요.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음식값도, 버스값도 절반만 낼게요. 그러면 될까요?”
최근 최저시급 적용 없이 ‘월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여론의 뭇매를 맞자 철회됐다가, 슬그머니 재발의됐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저렴하게’ 고용해서 저출생을 해결하겠다고 한다. 최저임금법을 고의적으로 어기고 누군가를 차별하겠다는 발상이다.
2019년 9월, 한국산업인력공단 캄보디아EPS(고용허가제)센터에서 센터장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센터장은 최저임금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원조’가 아닙니다. 내국인이 일하지 않는 곳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으로 노동력을 공급받으니 오히려 우리가 더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보다 더 낮게 임금을 주는 것은 차별입니다.”
외국인고용법 제22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최저근로조건에 대한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 최저임금법 1조에는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한다고 나와있다. 성별, 피부색, 국적, 인종, 종교, 성적지향 등과 관계 없이 노동자는 최소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며, 이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노동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점은 국내법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합의된 사안이다. 1958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제111호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고용과 직업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은 철폐돼야 하며, 노동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면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8년, 한국도 이 협약에 비준했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한다면 이 협약에 위반된다. 이주노동자와 자국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점은 국제사회의 규범이다.
만약 이주민이 없다면, 한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최저시급의 몇 배를 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른 인건비는 한국 사회의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주민 덕분에 한국 사회가 유지되는 셈이다. 외국인이라고 최저임금보다 낮게 임금을 주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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