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17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주얼리지원센터 1층에는 ‘작은 보건소’가 차려졌다. 보석을 만드는 주얼리 노동자가 일터와 가까운 곳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도록 임시로 만들어진 진료소다. “짧게, 길게, 길게, 다시 마시고!” 김범석 이대목동병원 임상병리사가 수검자들이 숨을 올바르게 들이쉬고 내뱉도록 안내했다. 김 병리사는 “일정 시간 동안 내쉬는 숨의 양을 계산해 폐 기능을 진단하는 검사”라며 “매년 검사하셔야 하는 분들인데,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라 어려워했다”고 했다.
보석세공업체는 종로 귀금속거리에서부터 서순라길 일대에 800여 곳(2020년 전국사업체조사)이 빽빽이 모여 있다. 이들 업체 10곳 가운데 8곳은 5명 미만 사업장이다. 주얼리 노동자는 금속을 깎거나 표면에 광을 내면서 과산화수소, 시안화수소 등 15개에 달하는 유해인자에 노출된다. 산업안전보건법(제130조)은 이런 유해인자에 노출된 노동자를 특수건강검진 대상으로 한다. 유해인자로 인한 직업병을 조기에 찾기 위함이다. 주얼리 노동자는 특수건강검진 의무 대상이지만 시행률은 3.6%(2019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에 그친다. 제조업 평균 특수건강검진 시행률 11%(2017년 고용노동부)보다도 낮다. 대부분 사업장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대목동병원 이화건강검진센터는 2023년 자선사업으로 특수건강검진 시행률이 낮은 서울 도심형 제조업체(주얼리·인쇄)를 방문하고 있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신청 접수 등 진행을 돕고, 서울근로자건강센터에서 사후관리를 맡는다. 김현주 이화건강검진센터 센터장은 “특수건강검진은 사업장 보건과 노동자 건강 관리를 위해 필요하지만, 개별 사업주가 여력이 없어 소홀한 경우가 많다”며 “지역사회나 지자체가 나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진료소를 찾은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듯 분주했다. 귀금속세공업체 사무직으로 일하는 ㄱ씨는 “빨리 돌아올 수 있겠느냐는 사장님 연락을 받았다”며 검진 중 일터로 돌아갔다. 주얼리 노동자 정영호(50)씨는 함께 검진 온 동료를 기다리다 “일감이 밀렸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2019년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실시한 ‘서울지역 주얼리 제조업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실태 연구’를 보면 주얼리 노동자들은 특수건강검진 홍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검사받을 시간이 부족해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나왔다.
이날 진료소를 찾은 주얼리 노동자는 총 33명이었다. 업체 기준으론 7곳이다. 종로3가 일대 보석세공업체 800여 곳 가운데 극히 일부다. 김 센터장은 “방문자 가운데 두어 명을 제외하곤 모두 특수건강검진을 처음 받는 이들”이라며 “고혈압과 같이 일반검진으로도 알 수 있는 질병을 오늘에야 발견한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사업단의 김남수 전문위원은 “참여한 업체는 전부 협회(서울주얼리산업협동조합) 소속으로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주얼리 노동자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날 검진은 정부가 50명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 비용을 대주는 ‘건강디딤돌 사업’을 통해 진행됐다. 건강디딤돌 사업은 4대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주얼리 노동자의 약 80%가 4대보험 미가입자다. 대다수 주얼리 노동자에겐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2022년 종로구에서 건강디딤돌 사업 지원을 받은 업체는 총 75곳(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었다.
영세한 귀금속세공업체는 종로 귀금속거리 뒷골목에 밀집해 있었다. 2023년 3월9일 <한겨레21>이 찾아간 골목엔 1층에 귀금속 대리점을 둔 상가 건물마다 5평 남짓한 작업장 4~6곳이 층층이 들어서 있었다. 좁은 공간에 환기구라고는 오래된 환풍기와 손바닥만 한 창문뿐이었다. “위이잉~” 한 작업장에서 주얼리 노동자 백아무개(59)씨가 성인 새끼손톱만 한 금속을 다듬고 있었다. 작업장 안에선 매캐한 화공약품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작업실 귀퉁이엔 작업에 쓰이는 메틸알코올(메탄올)과 청산가리가 놓여 있었다. 천장에 달린 알루미늄 배기관은 먼지와 부식으로 검게 변해 있었다.
“형님, 돈 드는 거 아니니까 이번에 놓치지 말고 꼭 신청해보셔요.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계속 도와주신다고 하니까.” <한겨레21>과 함께 백씨의 작업장을 찾은 김정봉(42) 종로주얼리분회 부지회장(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 말했다. 녹색병원의 ‘특수건강검진 지원 사업’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녹색병원은 2021년부터 4대보험 가입 유무와 관계없이 주얼리 노동자에게 무료로 특수건강검진을 해주고 있다. 2021년 녹색병원 검진에서 주얼리 노동자 15명 가운데 1명이 만성폐쇄성폐질환을, 2명이 폐기종을 진단받았다.
“주얼리 노동자는 특수건강검진만 못 받는 게 아니라 4대보험도, 근로기준법도 없어요.” 김 부지회장이 노란색 월급봉투를 꺼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월급을 봉투에 든 현금으로 받고 있었다.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얼리 노동자 80%는 4대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데, 근로기준법이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것을 악용해 사업주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신고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주얼리 노동자의 특수건강검진 시행률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음성화된 금거래 구조’ 때문에 이런 비공식 근로계약 관행이 자리 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귀금속 제조업체에서 신고하지 않은 금을 구매하거나 납품 대금을 금으로 받는 경우가 잦은데, 이 때문에 신고하는 매입·매출보다 인건비 규모를 작게 하려고 정식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2019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
변수지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공인노무사)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관리하는 이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른 정부 지원 사업에서도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7월부터 약 반년간 시범 운영한 상병수당 사업에서도 주얼리 노동자들은 접근이 어려웠다.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업무 외 질병이나 부상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워질 때 치료에 집중하도록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신청하려면 당사자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이거나 △고용·산재보험 가입자, 혹은 △자영업자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료를 보면, 종로구는 시범 운영 지역 6곳 가운데 가장 참여율이 낮았다. 종로 지역 신청자 가운데 고용·산재보험 가입자는 2.2%에 불과했다.
주얼리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작업장 안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종로구를 귀금속 특화지구로 지정해 산업육성책을 펴지만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엔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2022년 도심 제조업 노동환경에 대해 조사한 최용희 정책연구팀장(도심권 서울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은 “시가 ‘글로벌 뷰티산업 육성’ 같은 정책을 펴지만 관광자원화와 관련 일자리 창출에만 신경 쓸 뿐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등 작업장 안전 문제로까지 관심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가 작업환경 개선 등에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상 사업체 수가 자치구당 40곳 정도로 적고 주얼리 업체는 지난해에야 지원을 시작한데다, 사실상 비용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등 제대로 된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개선도 이뤄지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2018년 귀금속세공업체 밀집 지역 산업안전 실태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총 9곳 가운데 7곳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감독 대상 20곳 중에선 16곳이 서면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20곳 모두 기초노동질서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주얼리산업 기초노동질서 정착과 고용보험 가입 등 제도권 편입’을 추진과제로 내세우기도 했고, 주얼리 노동자들이 2018년 7월 노조를 만들고 근로기준법 준수, 환경조사와 특수건강진단 실시 등을 서울시와 고용노동부, 사업주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체감할 만한 변화는 아직 없다.
김정봉 부지회장은 “아직도 2018년에 제기한 문제를 두고 싸운다.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를 당해도 늘 증거 부족으로 피해받고, 특수건강검진 같은 기본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사업주나 노동청의 방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유지인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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