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15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를 일으킨 ㅅ건설회사 남아무개(61) 회장이 구속 기소됐다. 이날 인천지검 형사5부는 미추홀구 일대에서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하며 세입자 161명에게서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남 회장을 구속 기소하고, 공인중개사 등 공범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건축왕’으로 불린 남 회장은 2013년부터 미추홀구에서 ‘나 홀로’ 아파트와 빌라 등을 지었다. 남 회장의 계열 건설사들이 지은 주택을 이들과 한통속인 공인중개사들이 소개하고, 공통된 관리업체가 관리했다. 검찰은 남 회장 일당이 무리하게 건축사업을 확장하던 중 대출이자 연체 등으로 다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임에도 그 사실을 숨긴 채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해서 대규모 피해를 준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2023년 1월 <한겨레21>(제1447호 표지이야기)은 인천 미추홀구를 찾아 ‘건축왕’ 남 회장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을 취재했다. 당시 만난 세입자들은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정부 대책은 굼뜨기만 했다. 기사를 쓰고 한 달여 뒤, 비극이 일어났다. 미추홀구 ‘깡통전세’ 피해자 ㄱ(38)씨가 2월28일 오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ㄱ씨는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2021년 10월부터 2023년 3월 초까지 1년5개월 넘게 홀로 살던 남성이었다. 그는 근저당이 설정된 집에 보증금 7천만원의 전세계약을 맺고 입주했다. 계약 당시 근저당 규모와 전세보증금을 합쳐도 시세보다 낮다는 공인중개사 말을 믿었다. ㄱ씨는 시세가 부풀려져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2022년 말 집이 경매에 부쳐진 뒤, ㄱ씨는 2023년 초 은행에 찾아가 전세자금 대출 연장을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라는 이유였다. 그는 유서에 “더는 못 버티겠다. 자신이 없어. 뭔가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이게 계기가 돼서 더 좋은 빠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썼다.
<한겨레21>이 보도 50여 일 만에 다시 취재한 인천 미추홀구 깡통전세 피해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가 집계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수는 5천 명 이상으로 1인가구, 신혼부부, 노인 등 주거 취약계층이 대다수다. 이 가운데 2023년 3월 기준 피해 가구 가운데 65%가 경매 대기 중이거나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피해자 이지영(37)씨는 피해 주택 경매가 시작된 지 불과 4개월여 만인 2023년 2월에 내쫓겼다. 그는 2019년 8월 입주해 2021년 8월 보증금 6300만원으로 재계약한 상황이었다. 전세자금대출도 4800만원 받았다. 2022년 7월 집이 경매로 넘어간 사실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통보받았고, 첫 경매는 9월 말에 시작됐다. “(경매 낙찰자에게) 정부가 대책을 낼 것 같으니 최대한 기다려달라, 돈이 없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책을 내놓으려면 1~2년이 걸리는데 왜 생돈을 (이자로) 내가며 기다려줘야 하나, 당장 집을 빼달라라는 말을 들었다.”
이지영씨는 경매 낙찰이 된 뒤 최우선 변제금으로 2700만원을 받았고, 이 돈으로 서울 동작구에 보증금 2800만원, 월세 25만원인 집을 구해 살고 있다. “(고인의 선택을 보며) 공감이 됐다. 나도 저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정신 차리고 살기 위해 회생 절차를 진행하려 한다. (깡통전세 피해) 대책이 늦게 나오는 동안 피해는 볼 대로 다 봤다.”
이씨는 어렵게 집은 구했지만 전세대출 이자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고통이 커지고 있다. 전세대출 이자는 2020년 월 9만원에서 현재 월 20만원으로 늘었다. 2020년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연 2% 이자를 내며 쓰던 돈 2800만원도 2021년에는 갱신이 어려웠다. 이후 2022년 제1금융권에서 신용대출로 갈아탔고, 이자는 월 15만원에서 1년 새 28만원으로 불었다. 이씨는 “전세대출금을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1년에 1천만원 모으는 것도 힘들다. 다 갚고 재기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3월10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국토부는 이날 △긴급주거 선택권 확대 △전세대출 연장 안내 강화 △전세사기 피해자 대상 대환대출 시행 등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 지원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정부 대책이 미흡하다고 반발하며 주거 안정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빠른 방안은 금융기관 등이 정부 협조를 받아 피해 주택 경매 절차를 중지하는 것이다. 또 안정적 주거를 위해 보증금 관련 채권을 사들이거나 피해 주택을 공공주택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요구한다. 전세금을 미리 피해자에게 지급한 뒤, 남씨 일당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피해자들은 △지원 사각지대 구제(소급 적용) △피해 주택 현황 조사 △전세사기 관련자의 수사와 처벌 등도 바란다.
이씨처럼 정부 대책이 발표되기 전 경매에서 집이 낙찰된 가구는 정부 대책을 소급 적용받지 못하니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세대출 만기 시점을 금융 당국이 연장하지 않으면 전세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연장해주더라도 높아진 이자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이씨 같은 피해자가 개인회생을 선택하는 이유다.
깡통전세 피해자이기도 한 박주애 대책위 사무국장은 “(고인을 비롯한) 피해자는 경매 시작 뒤 매각 기일이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며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건 아닌지, 혹시 구제 대상에서 빠지는 건 아닌지, 대출 연장은 가능한지, 신용불량자가 돼서 대출을 이용 못하는 건 아닌지, 이런 걱정도 계속한다. 모두가 피해보증금을 받을 순 없다고 하니 정부 대책밖에 기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법무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내어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기재부 장관이 직접 나서달라.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이미 경매가 완료됐거나 정부가 발표한 대환대출이 시행되는 5월 이전에 경매가 완료되는 피해자들, 근린생활시설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의 경우 대부분의 지원 대책에서 제외되는 등 치명적인 사각지대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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