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사가 나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피부양자 자격이 취소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2020년 가을, 소성욱·김용민씨 부부를 그들의 신혼집에서 만났을 때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인터뷰하다가 조심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그들은 연애 7년차에 결혼해 신혼 2년째에 접어든 동성 커플이었다. 성욱씨는 건강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터였고, 용민씨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였다. 이성 커플의 경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사실혼 관계에 있다면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여느 부부라면 어렵지 않게 누리는 권리였다. 두 사람은 “될지 안 될지 의아한 마음”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누리집에 문의글을 올렸고 ‘(피부양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성욱씨는 용민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얻었다. 둘 사이를 인정해준 건강보험 쪽의 처분은 실수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침묵한 채 가만있으면 피부양자 자격으로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욱·용민씨 부부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기사로 보도돼도 괜찮다”고 말했다.
“차근차근 해보는 거죠. 피부양자 신청도 결혼의 수많은 권리 중 하나잖아요. 저희가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인터뷰도 안 했을 텐데….”(용민) ‘어차피 안 될 걸 알기에’ 혼인신고도, 피부양자 등록도 시도조차 못한 동성 커플이 주변에 많다고 했다. 용민씨는 “가능할 줄 모르고 아예 안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알리면 누구든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날 피부양자 자격 취득 사실을 드러내고 인터뷰하기로 결정한 건 여느 부부와 동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얻기 위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그렇게 <한겨레21> 제1335호 기사로 이들의 사연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 뒤 ‘건보공단의 피부양자 취소→행정소송→1심 패소→항소’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그 걸음이 모두의 한 걸음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2년4개월여 흐른 뒤다. 2023년 2월21일 법원에서 이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3부(이승한·심준보·김종호 부장판사)는 성욱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동성 부부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한 건 아니었으나 동성 결합을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건 차별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대우했는지”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커플 상대방이 다른지, 다르게 대우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건보공단쪽에 거듭해서 물었다. 건보공단은 ‘동성배우자는 민법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온 피부양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다 재판이 마무리될 무렵 참고 자료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하기도 했다. “배우자(配偶者)는 ‘부부의 한쪽에서 본 다른 쪽, 즉 남편 쪽에서는 아내를, 아내 쪽에서는 남편을 이르는 말’로서 (…) 남녀 간의 혼인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동성 간의 결합에 확대해서 해석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주장을 종합해 살펴본 재판부는 사회보장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비춰봤을 때 현재 민법상 가족이 아니라 해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이 제도에서 배제하고 차별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 뒤 용민씨는 기자와 주고받은 문자에서 “끝까지 힘내겠다”고 말했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았다. 건보공단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당연하면서도 여러 번 곱씹게 되는 그 문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한솔 <한겨레> 기자 sol@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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