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9일 아침, 대구 남구 대명동 <뉴스민> 사무실에 대표부터 막내 기자까지 전원이 모였다. 기자들이 상반기 취재할 기획 기사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뉴스민>은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 진보 인터넷 매체다. 2022년부터 <뉴스민>에 합류한 기자 김보현은 미리 준비해온 청년 일자리와 관련된 아이템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표 천용길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회사가 재정 위기 상황입니다. 3월까지만 월급을 줄 수 있는 상황이고, 지금 세 가지 방안 정도가 떠오르는데 일단 같이 얘기해봅시다.” 천용길은 <뉴스민>이 처한 상황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뉴스민>을 해산하거나, 규모를 줄여서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방법이 있고….” 아무도 몰랐던, 어쩌면 외면했던 이야기였다. 기자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기왕 시작한 만큼 재정 안정성을 확보해 최대한 오래 버텨볼 생각입니다.” 2012년 5월9일, <뉴스민> 창간 일주일이 막 지났을 무렵 천용길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제911호 ‘보수의 중심에서 민중언론 세우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그는 자기 말대로 버텨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가치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동시에 돈을 벌기는 어려웠다. 창간 이후 10년은, 그래서 위기의 연속이었다.
천용길은 경북대 교지 <복현> 후배인 이상원과 함께 그해 5월1일 <뉴스민>을 창간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기사를 쓰겠다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뭘 취재해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취재 경험이 없다보니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일단은 노조, 시민단체들이 이야기하는 것부터 충실히 다루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23년 2월10일 <뉴스민> 사무실에서 만난 편집장 이상원이 말했다.
주요 일정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지방자치단체 행사나 기자회견 일정을 알려주는 사람도, 중요 재판을 공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현장에서 우연히 타사 기자들을 만나도 동료 취급을 받기 어려웠다. 그렇게 무작정 부딪히던 2013년 여름, 월급 50만원을 받는 기자 생활에 회의감이 들었던 이상원은 <뉴스민>을 그만두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이상원의 빈자리는 <복현> 시절부터 천용길과 함께했던 박중엽이 채웠다.
매년 우후죽순 늘어나는 신생 인터넷 매체를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뉴스민>이 창간한 2012년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한 매체는 전국에 3914개였다. 그 뒤 해마다 1천여 개씩 늘어났다. 그해 대구·경북 지역에서 실제 활동하는 인터넷 매체만 140개에 이르렀다.
창간 2년 무렵에야 <뉴스민>이라는 언론사가 지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9월22일, <뉴스민>은 “시민의 ‘우환’ 이우환미술관, 농락당한 대구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2009년부터 대구시가 추진한 이우환미술관 건립을 두고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때였다. 당시 대구 시민단체들은 건축비 297억원과 작품구매비 100억원 등 400억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되는 계획에 반대했다. 이 와중에 2014년 9월 이우환 화백이 기자회견을 열어 작품구매비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억원이 넘어선다고 밝히며 논란은 더 커졌다. <뉴스민>은 김범일 전 대구시장과 이우환 화백이 주고받은 편지를 처음 공개했다. 김 전 시장이 미술관 건립을 요청하고, 이 화백이 미술관 건립에 필요한 요건을 적어 답한 내용이었다. 2010년 10월 이 화백이 보낸 편지엔 그가 구매해야 한다며 적어놓은 작가들의 명단이 있었는데, 이 작가들의 작품만 해도 대구시가 밝힌 작품구매비 100억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기사가 나간 뒤 대구시 담당 과장이 연락해, 기사를 내리면 광고비 5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천용길은 단칼에 “필요 없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천용길은 그해 겨울 “대구시 돈 받아 쓴 ‘메디시티’ 기사, <한겨레> <경향>도 예외 아냐”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대구시 대변인실에서 각종 일정을 문자로 보내준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나 주변에서 인정받는 것과 수익은 별개의 문제였다. 천용길을 포함해 <뉴스민> 기자는 모두 아르바이트를 했다. 천용길은 토요일 학원에 나가 온종일 근현대사를 가르쳤다. 일요일엔 액화석유가스(LPG) 배달을 4년 동안 했다. 기자들에게 줄 월급이 부족하면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때웠다. 박중엽에겐 자신이 하던 복지회관 화장실 청소 아르바이트 자리를 물려줬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뉴스민>에 복귀한 이상원은 학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수업을 했다. 천용길과 박중엽은 지금도 강의와 청소 일을 한다.
이런 노력에도 후원자 규모가 200여 명에서 더 늘어나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던 2016년 7월, 경북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된다는 속보가 나왔다. 국방부 발표 직후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성주에 오는 날, 천용길이 현장에 갔다. “별다른 생각 없이 저 혼자 가서 취재했어요. 그날 주민 5천여 명이 나왔는데, 한 언론에서 ‘외부 세력이 와서 깽판을 쳤다'는 취지로 보도하더라고요.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천용길은 그날 저녁 기자들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다 성주로 출근하자.”
사드 배치 부지 발표 이후 며칠이 지나자 성주를 찾는 언론사는 점차 줄었다. 기사를 쓰는 언론사라고는 <뉴스민> 하나뿐인데, 성주 주민들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호외판 지면을 만들기로 했다. 경험이 없어 신문 <한겨레>를 참고했다. 그해 8월11일 호외판 5천 부를 발행해 돌렸다. 호외판을 들고 찾아오는 기자들을 보며 주민들은 <뉴스민>에 카메라를 사줬다. 그 카메라로 매일 주민들의 반대집회를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기자들은 휴일에도, 명절 연휴에도 쉬지 않고 번갈아 성주에 갔다. 그렇게 약 400일을 성주에 붙어 기록했다. 정체됐던 후원자 규모가 거짓말처럼 2배가량 늘었다.
2020년부터 대유행한 코로나19는 또 다른 기회였다. 비대면 행사가 늘다보니 중계사업을 하면서 수입이 생겼다. 2021년 처음 신입 공개채용을 했다. 디지털 담당 피디(PD)와 경력기자도 채용했다. 이즈음부터 창간 9년 만에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했다. 대표부터 막내기자까지 월급은 같았다.
2022년, 다시 위기가 시작됐다. 코로나19로 한때 잘나가던 중계사업 수익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윤석열 정부 이후 각종 용역사업도 줄었다. 대구 내에선 도맡아 하던 국가인권위원회 관련 용역사업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단 한 건도 맡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구광역시도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광고를 끊었다.
그럼에도 창간 때부터 지켜오던, 먼저 광고를 요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켰다. 지자체나 기업이 ‘굳이 먼저 주겠다'는 광고만 받아왔다. 고민도 있었다. “제일 손쉽게 돈을 벌 방법이 광고니까, 고민해보자고 했는데 어쨌든 그런 식으로 시작하면 분명 저희한테 요구하는 것이 있거든요. 보도자료를 베껴서 그대로 써주는 것부터 요구할 텐데, 다른 매체에서 하는 걸 우리도 할 필요가 있냐고 의견이 모아졌어요.”(이상원)
<뉴스민>은 창간 이후 지난 10년 동안 관공서로부터 모두 20차례 걸쳐 약 3600만원의 광고비를 받았다. 이 중 대구광역시에서 받은 광고가 9차례였다. 대구광역시의회와 포항시청, 의성군청 등에서도 가끔 광고를 받았다. 대구시는 2020년 처음 광고를 넣었다. 2021년 주기적으로 5차례, 2022년 상반기 3차례 광고했다. 2022년 6월을 마지막으로 광고는 더 없었다.
2022년 4월6일. 당시 시장 후보이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7대 비전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구 시정개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계속 “시정을 잘 모른다, 인수하고 나서 이야기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가자 이상원이 이렇게 물었다.
“시정개혁을 하겠다고 하셨는데, 반복적으로 시정을 잘 모른다고 하시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잘 모르고 계시는데 어떤 부분을 개혁하겠다고 계속 말씀을 하시는 건지.”
“참 못된 질문이네.”
이 기자회견 이후 천용길과 이상원은 홍준표 시장 취임 뒤 광고가 끊길 것을 예감했다. 대구시 광고마저 끊기자, 한 달에 나가는 고정지출에 견줘 벌어들이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뉴스민>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1100만~1200만원 수준이었다. 400여 명이 내는 후원금 500만원(약 45%)을 비롯해 용역사업 수익 300만원(약 25%)과 방송 출연료 250만원(약 20%), 광고비 100만원(약 10%) 등이었다. 이에 비해 한 달 평균 지출은 기자들 월급과 사무실 임대료 등으로 평균 1400만원이 나갔다. 모자란 돈은 대표가 월급을 적게 가져가거나 아르바이트해서 메웠다.
이상원은 2023년 1월23일 <뉴스민> 누리집에 ‘<뉴스민>을 지켜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가치를 포기하고 ‘자본, 권력과 함께하는 언론'이 될 것인가. 독립의 가치를 유지한 채 <뉴스민>의 간판을 내릴 것인가. 얼마 전 <뉴스민>의 모든 구성원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간판을 내리자. 가치는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였습니다. <뉴스민>의 가치와 간판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그의 간절한 호소에 후원자가 100여 명 늘었다.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금액인 500만원을 일시 후원한 이승렬 영남대 교수는 <뉴스민>이 대구·경북 지역에 왜 남아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했다. “집회든 시민모임이든 취재하러 열심히 오잖아요. 영남대만 해도 문제가 있는데 중앙 언론은 오지 않아요.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돼주는 언론이 어렵다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뉴스민>의 목표는 현재 490명(2023년 2월12일 기준)인 정기 후원자를 1천 명까지 늘리는 것이다. 기자들은 취재하며 틈틈이 3월 후원의 밤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천용길은 기자들과 개별 면담을 했다. 기자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렇게 없어지는 건 안 된다고 했다. 가장 강력한 의지를 보인 기자는 박중엽이었다. 그는 2023년 1월30일 <뉴스민> 누리집에 올린 ‘<뉴스민>, 함께 이어가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뉴스민> 기자들은 앞으로도 하고 싶은 보도가 여전히 많다. 점점 더 나빠지는 세상 속에서 증오와 배제가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다. 만약 회사가 망한다면 의미를 잃어버려서,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언론이 되어 망해야 한다. 힘닿는 데까지 나아가고 싶다.”
대구=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뉴스민 후원 전화 문의 : 070-8830-8187뉴스민 후원 전자우편 문의 : newsmin@newsmin.co.kr일시후원: 504-10-127123-8(대구은행: (사)뉴스민)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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