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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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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강간죄 동의 않는 한동훈 장관의 쇼

법무부는 ‘피고인이 억울해질 수 있다’며 법 도입 우려하지만
성범죄 수사·재판에서 검찰의 무능을 덮는 것일 뿐
등록 2023-02-23 23:05 수정 2023-02-26 14:22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2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2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 법을 도입하면 동의가 있었다는 입증책임이 검사가 아니라 해당 피고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범죄를 의심받는 사람이 현장에서 동의가 있었다는 것을 법정에서 입증하지 못하면 억울하게 처벌받게 된다.”

2023년 2월8일, 국회 대정부질문 때 ‘비동의강간(간음)죄’에 관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답한 말이다. 이어 한 장관은 비동의강간(간음)죄 도입에 대한 ‘종합적 검토’(법무부 입장대로라면 ‘실질적 반대’)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높은 성범죄 유죄율, 성범죄 관련 특별법으로 보완 가능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2월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처럼, 검사의 역할 왜곡, 성범죄 수사·재판의 현실 몰이해, 부적합한 통계자료 인용 등 법무부와 검찰의 게으름과 무능, 무책임을 덮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성범죄 재판은 피해자 책임

본래 범죄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지만, 성범죄 관련 수사·재판에서 실질적으로 입증책임을 부여받는 쪽은 피해자다. 물증 확보가 어려운 사건일수록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이유로,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닦달하는 관행이 이어진다. 결과에 대한 비판 역시 피해자나 재판부로 향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기소를 잘못하거나, 공판에 불성실하게 임하고, 피해자 증인신문에서 피해자 보호는 도외시한 채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검사를 법정에서 계속 보는 상황에서 ‘입증책임의 전환’ 운운하는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피해자 재판’으로 불리는 성범죄 재판에 대한 처참한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동의/비동의’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을 내세운 법무부 장관의 논리는 재판 현장과도 괴리가 있다. 법원은 이미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을 가장 좁은 의미(최협의)로 해석하고, 피고인 쪽은 피해자에게 ‘암묵적·묵시적 동의’가 있었음을 내세운다. 피해자는 이와 관련해 ‘(명시적·묵시적) 비동의’였거나 ‘내심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음을 입증하길 요구받고, 재판부는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학계까지 합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30년 정도 이어온 ‘비동의강간(간음)죄’의 논의 과정에서 ‘동의/비동의’에 대한 판단 기준은 ‘비동의강간(간음)죄’를 먼저 도입한 다른 국가의 사례까지 합하면 얼마든지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음에도 법무부가 논의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 20~30년의 검토가 부족하다면 도대체 현실 변화는 언제 가능한가? 이번 법무부의 입장이 정부에서 강조한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와 결을 같이하는 정치적 ‘쇼’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성범죄 관련 특별법이나 판례 축적으로 입법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법무부 장관의 주장은 형법과 성범죄 관련 특별법의 관계 등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최협의의) 폭행·협박’으로 명시한 이상, 특별법이 존재해도 입법 공백을 메울 수 없고, 재판부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갈리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2022년 서울고법 재판 모니터링 과정에서도 강간죄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20대 피고인이 무죄를 받았는데, 재판부는 그 이유로 ‘피해자의 명시적 거부 의사가 있었고 피고인도 이를 인지했음에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강제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간죄가 요구하는 폭행·협박을 통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정에서 재판부는 피고인과 가족을 향해 ‘현행법상 무죄라는 것일 뿐 피고인의 행위는 잘못됐다’고 말했지만, 법정 밖으로 나온 피고인의 가족은 바로 ‘꽃뱀’ ‘무고’를 언급하며 피해자를 비난했다.

‘유죄율 독일 8% 대 한국 90%’는 잘못된 비교

한동훈 장관은 대정부질문에서 “독일의 성범죄 유죄율이 8%인 것에 비해 한국은 90% 수준에 이른다”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비동의강간(간음)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6년 비동의강간(간음)죄를 도입한 독일의 통계는 2012년 것이고 기준도 다르다. 독일은 ‘신고 대비 유죄율’이고 한국은 ‘기소 대비 유죄율’이다. 한국식으로 10년 전 독일 통계를 바꿀 경우 성범죄 유죄율이 ‘77%’에 이르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의 주장은 사실 호도다.

법무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제3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 속 ‘성폭력 관련 법률개정 5개 과제’ 모두에 ‘검토’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실질적으로는 ‘반대’ 입장임을 밝혔다. 5개 과제는 △강간죄 개정 △형법 제 32장 제목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 수정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과거 성 이력 증거 채택 금지 조항 신설 △‘성적수치심’ 용어 개정 △메타버스 등 온라인에서 사람을 성적 대상화해 괴롭히는 행위 처벌 규정 신설이다. 이 과제는 그간 법무부 장관도 필요성을 인정했거나, 2021년 운영된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TF)’의 권고안 11개 속에 포함됐다.

2020년 이후 법무부는 한때나마 성범죄 관련 법률의 개정과 피해자 보호·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21년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의 권고안에 따라 법무부 내 피해자 지원신청 창구를 일원화해 통합지원을 실시한 것이나,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충원, 피해자 국선변호사 평가시스템 도입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법무부는 2022년 한동훈 장관 취임 뒤 역할이 남아 있는 TF를 해체했다. 또한 ‘여성가족부 폐지’를 앞세운 정부 입장을 대변하며 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의 현실 분석은 도외시하고 여성가족부의 각종 정책이나 시도에 직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방식으로 퇴보에 앞장서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 보호 흐름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

검찰 출신 장관이 들어선 지금 독립성을 갖고 상호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법무부와 검찰청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검찰의 침묵 속에 법무부 장관의 행보가 검찰 입장으로 포장되면서 법무부의 무지와 무능, 게으름과 무책임함이 곧 검찰의 현재인 것처럼 보인다. 법무부가 일명 ‘검수원복’ 등 검찰 수사권 회복에 집착하거나 시의성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명성을 누리는 것에 집중하면서 현실 속 성범죄 관련 수사와 재판은 엉망이 되고 있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이자 연대자로서 법무부의 태만이 가져오는 악영향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성범죄 관련 법률개정은 고사하고 기존에 구축한 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 파악과 개선 방안 마련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반대’를 위한 법무부의 ‘검토’ 속에 형사사법시스템은 더 망가지고 있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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