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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차별에 법원 제동… 천 가지 권리 향한 중요한 첫 걸음

김용민·소성욱, ‘건강보험료’ 차별한 건보공단 상대 소송 2심서 승리
“누구나 소수자일 수 있다.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등록 2023-02-24 09:42 수정 2023-02-25 00:44
동성부부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김용민(오른쪽)·소성욱씨가 2023년 2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동성부부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김용민(오른쪽)·소성욱씨가 2023년 2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서울고법 행정1-3부(재판장 이승한)가 2023년 2월21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용민(33)씨가 한집에 사는 동성 배우자인 소성욱(32)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판결문 마지막에 적은 문구다.

재판부는 “원고(소성욱씨)는 동성결합 상대방임이 인정된다. 피고(건보공단)는 합리적 이유 없이 동성결합 상대방인 원고를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하여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처분(건강보험료 부과)을 한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이유로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던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가족을 이뤄 한집에 사는 부부이지만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내게 해온 건보공단의 차별적인 사회보장 행정에 제동이 걸렸다.

“동성이라고 피부양자 인정 않는 건 차별”

소성욱씨와 김용민씨의 사연은 2020년 10월 <한겨레21> 보도(제1335호 ‘건보공단, 동성커플을 ‘부부’로 인정하다?’)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2012년 겨울 처음 만난 이들은 2017년 동거를 시작했다. 2019년 5월에는 양가 가족과 친척,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소소한 결혼식’도 올렸다. 혼인신고만 못했을 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동성 부부였다.

결혼식을 올린 이듬해인 2020년 2월26일, 용민씨는 성욱씨를 자신의 피부양자로 등록하겠다고 건보공단에 신고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용민씨가 직장가입자로 건보료를 내고 있어, 건강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뒤 소득이 없는 성욱씨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등록 기준을 충족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배우자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은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이면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혼인 신고를 한 법률혼 상태인 부부뿐만 아니라 사실혼 상태인 부부도 ‘배우자’로 인정한다.

건보공단은 처음엔 성욱씨를 용민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해줬다. 두 사람은 2020년 2월 건보공단 누리집에 “동성 부부라 아직 혼인신고를 못했지만 2017년부터 동거했고 2019년 결혼식을 올린 사실혼 관계에 있다. 다른 이성 부부들처럼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할 수 있느냐”고 사전에 질의했고, 건보공단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도 피부양자 취득이 가능하다”는 확인도 받았다. 피부양자 자격 확인서에는 성욱씨가 용민씨의 ‘배우자’라고 쓰여 있었다. 등록 이후 성욱씨는 지역가입자 신분으로 내오던 월 1만5천원의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2020년 10월23일, 이 소식을 다룬 <한겨레21> 보도가 나온 뒤 건보공단은 입장을 180도 바꿔 일방적으로 성욱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동성 배우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등록 조처는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착각한 실무자의 실수였다며, 성욱씨에게 보험료를 내라고 처분했다.

이에 대해 성욱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 배우자에 대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점 등을 근거로 배우자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며 2021년 2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동성결합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진 않아

2021년 8월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가족법 전문가’인 차선자 전남대 로스쿨 교수는 “(이성 간 혼인만 인정하는) 민법상 사실혼과 사회보장에서의 사실혼은 그 출발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 사회보장은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해석돼야 하므로, (동성 간) 사실혼도 최대한 인정하는 게 사회보장제도 취지에 맞는다”고 말했다. 사회보장기기본법(제2조)은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2월21일 2심 판결을 맡은 재판부는 “건강보험은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수급권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가 있다”며 “동성결합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다.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밝혔다.

다만 “입법론으로는 몰라도, 현행법령의 해석론으로 동성결합은 사실혼 관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 묵시적 차별이 존재”해왔으며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인 이상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승리”

이날 용민씨는 판결을 확인한 뒤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늘 사법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동성 부부의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승리”라며 “그간 참고 견딘 것들이 오늘 결과로 녹아버린 것 같아 기쁘다. 오늘 얻어낸 권리는 혼인으로 얻어낼 수 있는 천 가지 권리 중 하나일 뿐이라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성욱씨도 “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권리와 존중, 평등,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원한다. 그런 세상이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도록 판단해준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했다.

두 사람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첫 재판부터 2심 재판부가 사건 쟁점을 ‘평등 원칙'으로 따져보자고 했는데, ‘동성 부부에 대한 차별이 헌법에 반한다'는 우리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준 것 같다. 오늘 판결은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를 법원이 인정한 최초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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