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어를 위해 미국 전략자산이 상시 배치돼야 한다고 보느냐.” “이미 2만8천 명 이상의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한국 국민과의 우리 약속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2022년 10월18일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전략자산은 핵무기를 실은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 등을 말한다.
“전술 핵무기(재배치)에 대한 이야기는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확장 억제(핵우산)는 미국이 가진 핵전력을 포함한 모든 부문을 동원해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말했다.
같은 날 미국의 대표적 보수 성향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은 ‘2023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서 재단은 “북한의 핵역량 강화는 (한-미) 동맹의 기존 군사 계획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미국이 동맹을 지키기 위해 핵공격을 받는 위험까지 감수할 것이냐에 대한 동맹의 우려를 가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보수 성향 연구기관인 케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 수석연구원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글을 실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라면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뒤엔 자국민 수백만 명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한국 보호) 약속을 하거나 유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밴도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문가다.
북한의 9월8일 핵무력 정책 법령 채택과 10월 말~11월 초 7차 핵실험 우려가 한국에서의 핵무기 재배치와 개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선 정부 관리와 전문가들이 북한의 핵위협과 관련해 다양한 분석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물론이고, 미국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나 전략자산 상시 배치도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주한미군 주둔과 확장 억제를 통해 한국을 북한 핵무기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국민의힘이 새롭고 강경한 주장을 내놓았다.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불을 댕긴 사람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는 10월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만 30여 년 전의 남북 간 비핵화 공동선언에 스스로 손발을 묶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결단의 순간이 왔다”고 밝혔다. 이 발언 뒤 김기현, 나경원, 홍준표, 조경태 등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 주장을 쏟아냈다. 대통령실은 확장 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면서도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민 여론도 우리나라의 핵무장에 부정적이지 않다. 2022년 3월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에선 70.2%, 6월 사단법인 샌드연구소 조사에선 74.9%, 7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선 55.5%의 시민이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지지했다. 최근엔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모임 설립까지 추진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자강 전략포럼’이다. 이들은 11월5일 창립 모임을 연다.
한국의 핵무장을 둘러싼 네 가지 쟁점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리해본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2003년 이후 본격화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이미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북한은 2016년 수소폭탄(핵융합 폭탄),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018년 전략 핵무기(100kt 이상의 대규모, 장거리 핵폭탄) 등을 실험했고, 7차 핵실험은 한국을 대상으로 가정한 전술 핵무기를 실험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정성장 센터장은 “이미 북한은 전략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마쳤다. 최근엔 한국을 상대로 전술 핵무기를 배치,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 북한의 핵공격 능력은 높은 수준에 있다. 현재 상황에서 남북한의 핵전력을 균형적으로 만들 방법은 남한 자체의 핵무장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핵무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남북관계)는 “아직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탄착 지점을 공개한 일이 없다. 그 부분은 검증되지 않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미리 인정해선 안 된다. 분명하게 확인된 수준에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래식 무기로 북한의 핵공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창수 청와대 전 통일비서관은 “한국의 미사일 능력, 미국의 확장 억제,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통해 북한의 핵공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사거리와 탄두 규모가 큰 현무5 미사일은 북한의 도발에 강한 억제력이 된다”고 말했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미국의 확장 억제(핵우산)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수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확장 억제는 말뿐이다. 북한의 핵공격 때 확장 억제를 사용할지는 미국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한국 자체의 핵무기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들은 나아가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 위협이 있다면 한국이 핵공격을 당해도 미국이 쉽게 핵무기로 북한에 반격하지 못할 거라고 우려한다. 과거 프랑스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한 이유는, 소련으로부터 프랑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뉴욕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란 가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핵무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현재가 프랑스의 핵무장 시대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프랑스가 스스로 핵무장을 한 것은 냉전 당시 미국-소련 간의 ‘대량 응징 보복’이라는 공격적 군사 전략 때문이었다. 냉전이 해체된 뒤 그런 심각한 위험은 사라졌다. 특히 북한은 옛소련과 같은 엄청난 군사적 능력을 가진 나라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지는 이 문제의 관건이다. 핵무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다. 김용현 교수는 “미국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에 핵무장을 허용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무너지고 핵확산이 일어날 우려가 크다. 북한 제재도 설득력을 잃는다. 또 핵무기 보유국을 우위로 한 국제 질서도 흔들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핵무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미 국제 질서가 변화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창위 교수는 “한-미 안보 정책도 바뀐다. 문재인 정부 때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했고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폐지했다. 핵무기 정책도 바뀔 수 있다. 미국의 존 미어샤이머나 케네스 월츠 같은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들도 북한 비핵화는 실패할 것이고 한국은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 권리 조항이 한국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조약 제10조 1항은 “각 당사국은 주권을 행사하는 데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성장 센터장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바로 이 조항에 해당한다. 한국은 이 조약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승찬 전 대변인은 “핵확산금지조약이란 국제 규범은 매우 구속력이 강하다. 제10조 1항은 관행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을 인정하면 핵확산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핵무장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이 탈퇴하더라도 북한이 받는 것과 같은 강한 제재를 부르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정치학자는 “한국은 지구적 가치사슬(글로벌밸류체인)의 핵심고리이기 때문에 미국이 쉽게 버릴 수 없다. 정교한 전략을 세우고 관계국들을 설득하면 제재를 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핵무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의 핵무장이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가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재앙이 되리라고 지적한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미국이 반대하는데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아마 북한이나 이스라엘처럼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다. 미국과의 군사동맹도 깨지고 세계적 통상국가인 한국의 경제적 번영도 무너질 것이다. 무모한 행위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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