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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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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반복된 ‘세 모녀의 죽음’…‘복지 사각지대’의 비극

아파도 병원가기 어려운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 조명한 <한겨레21> 기획연재 다시 보니
등록 2022-08-24 11:33 수정 2022-08-24 14:54
8월22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모녀가 거주하던 월셋방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이정하 <한겨레> 기자

8월22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모녀가 거주하던 월셋방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이정하 <한겨레> 기자

세 모녀의 죽음. 비슷한 비극이 8년 만에 또 반복됐습니다.

2022년 8월21일 경기 수원시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60대 어머니 ㄱ씨와 40대인 두 딸 ㄴ씨, ㄷ씨입니다. 이들은 모두 암, 난치병 등으로 투병 중이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건강보험료도 1년 넘게 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4년 2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입니다. 60대 어머니의 실직과 30대 큰딸의 투병 등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는 밀린 집세와 공과금 등 현금 70만원이 담긴 종이봉투에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단전·단수 등 각종 공과금 미납 정보나 건보료 체납 정보 등으로 취약가구를 파악해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제도 등 복지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고, 화성시에서 수원시로 살고 있던 집을 옮긴 뒤에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정부의 복지망 안에서 보호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23일 국무회의에서 “복지정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되는, 그런 주거지를 이전해서 사시는 분들에 대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서 이런 일들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어려운 국민들을 살피겠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요.

송파 세 모녀 사건 2년 뒤인 2016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20대 쌍둥이 형제가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이들은 17개월분의 건강보험료 70여만원을 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한겨레21>은 당시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들을 취재했고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는 주제로 4회의 기획 연재를 이어갔습니다. 돈이 없어서 건강을 압류당한 7명의 사례를 자세히 취재한 2016년 기사를 소개합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7명의 이야기 
2016년 7월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한겨레21> 표지 이미지.

2016년 7월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한겨레21> 표지 이미지.

한 달 수입 50만원. 고시원 총무로 일한다. 55살, 미혼. 고향은 대구. 젊어서는 원단 장사를 했다. 1998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연대보증을 부탁했다. 3천만원 가까운 돈. 믿고 해줬다. 삶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연락 두절. 그도 ‘도망자’가 되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을 떠돌았다. 2000년 충북 음성 꽃동네에 찾아들었다. 5년간 봉사하며 지냈다. 다시 고향 대구로.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용역업체를 찾았다. 사장은 급여를 가로채 달아났다. 날카로운 삶의 예각이 그를 찔렀다. 그는 자주 아팠다.

“아파도 병원 가기 두렵다”

7월7일 서울. 잠시 장마전선의 여백. 대낮 폭염이 거리에 내리꽂혔다. 영수(가명)씨를 만났다. 짧은 머리, 그을린 얼굴, 마른 몸. 그러나 밝은 웃음. 수직의 절벽에 매달린 듯한 삶. 하지만 그는 잘 웃었다.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지만, 마음적으로는 편해요.”
그의 건강보험료 체납액은 500만원 가까이 된다. 빚보증으로 삶에 강진이 일어나면서, 그는 폭삭 주저앉았다. 건강보험료를 챙길 형편이 아니었다. 음성 꽃동네에 있을 때는 다리 수술을 두 차례나 했다. 하지정맥류. 다행히 꽃동네에서 장기봉사자 혜택을 주어 병원비 600만원을 감당할 수 있었다.
독촉 고지서 하나를 그가 내밀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것. 3만원 조금 넘는 체납액이 찍혀 있다. 다달이 이 정도 금액을 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못 낸다. 다달이 그가 쥐는 돈은 50만원이 전부. 고시원 월급이다. 채 1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지낸 적도 많다. 건강보험료 체납액 3만원이 정말 ‘큰돈’인 이유다.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갚고 싶어요. 근데 한두 푼도 아니고 계속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돼요.”
그가 일하는 고시원에는 척추, 혈액, 위암환자 3명이 있다. 노숙인이다. 그는 날마다 그들을 살핀다. “누가 빚지고 싶어 빚지겠어요. 살다보니 부득이하게…. 이런 사람들은 (건강보험료 체납액을) 삭감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없는 사람들 정말 많아요. 그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 못 가요. 집에서 죽는 거예요. 죽을 때가 돼서야 병원에 가요.”
99.4%. 지난해 건강보험 징수율이다(‘2016년 1/4분기 건강보험 주요 통계’,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운영실 자료). 2010년 이후 징수율은 줄곧 99%를 넘는다. 영수씨는 99.4%의 여백에 있는 사람이다.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이들을 위한 제도가 있다. 분할납부와 결손처분(탕감).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운용이다. 이들은 제도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해 6개월 이상 보험료 체납 가구는 140만 가구를 넘는다. 금액은 2조4천억원. 고의로 건강보험료를 고액 체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험료 5만원 이하 생계형 체납 가구는 100만 가구 안팎이다.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의료급여(병원 무료 이용) 혜택조차 못 받는 사람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다. ‘건강보험료 체납→건강보험 급여 제한→ 체납 가산금 부과→ 납부 독촉 고지→ 재산 압류→ 병원 이용 제한→ 건강 악화→ 노동력 상실’.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들을 옥죄는 악순환 고리다.

<한겨레21>은 7월4~7일 7명의 사례를 자세히 취재했다. 모두 ‘건강을 압류당한 사람들’이다. 이유는 하나. 돈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 가기가 두렵다.” 한결같이 그들은 말했다.

명희(64·가명)씨. 한때 그는 남부럽지 않았다. 남편과 활어 유통 사업을 했다. 성실 납세자로 상도 받았다. 2006년 싱싱회 가공공장을 크게 차렸다. 횟감을 가공해 전국에 배달하는 사업. 시 보조금을 더해 4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그러나 운영이 잘되지 않았다. 현금 유통이 막히고 대출 연체이자가 불어났다. 채무가 20억원 넘게 쌓였다. 명의가 모두 자신 앞으로 돼 있었다. 끝내 남편과도 이혼했다.
그리고 10년. 그는 인천의 한 동사무소에서 자활공공근로를 한다. 우울증에 골다공증, 수면장애…. 약봉지 가짓수가 10개가 넘는다. 건강보험료 체납액은 380만원가량. 통장도 압류됐다. “제가 집이 한 칸이라도 있었으면 진즉에 냈을 거예요.”
자녀는 2남1녀. 큰아들은 월세방 신세.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병든 시어머니 간호. 작은아들은 실업자. 그는 가슴을 쳤다. “보험료 탕감해주시면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 것 같아요.” 81만3천원. 그의 월소득이다. 최저임금선 아래, 전화기 너머 명희씨는 울고 있었다.

의료보장 사각지대 눈감은 복지부

경북 구미 철호(51)씨. 그는 마라톤 프로선수였다. 발목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선이 예사롭지 않다. 액정디스플레이(LCD) 수리사업을 크게 했다. 연매출 300억원. 노무현 대통령이 초청한 자리에도 불려갔다. 잘나가던 시절은 풀잎 위 이슬. 몇 년 만에 호시절은 갔다. 대기업이 기술을 빼가면서 사업은 무너졌다. 2007년 즈음이다. 부인과도 이혼했다. 이곳저곳 떠돌면서 주민등록도 말소됐다. 건강보험료 체납에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죽지 못해 살았다. 막노동으로 버텼다. 체납액은 300만원까지 늘어났다.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냈다.
2년 전 허리를 다쳤다. 공사판에서 자재 정리를 하다 그리됐다. 디스크협착증. 건강보험 체납액이 그제야 떠올랐다. 사업주는 산재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병원을 일주일 다니다 그만두었다. “한방병원 한 번 갔다오면 5만원씩 나가요. 일당 벌어 먹고사는 처지라 겁이 나서 못 가겠더라고요.” 원룸 좁은 방에서 3개월 넘게 누워 지냈다. 챙겨줄 사람은 없다. 식사도 형편없었다. 곡절 끝에 지난해 산재보험금을 받았다. 110만원. 병원 진료 기록이 거의 없어 터무니없이 적었다. 제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허리는 지금도 시원찮다.
그는 술·담배를 안 한다.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 체납액이 발목을 잡는다. 예금통장 잔액은 체납보험료에 한참 못 미친다. 어쩌면 좋을까. 그는 답답하다. “제 잘못이니까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저처럼 사업하다 말아먹은 사람들, 극히 재기하기 어려워요. 체납보험료를 낼 의향은 얼마든지 있어요. 좀 액수를 줄여주면 좋겠어요. 정부에서 소외된 사람들한테 조금만 신경을 써줘도 그 사람들은 혜택을 엄청 많이 볼 텐데….” 최근 그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체납보험료 문의를 했다. 좀 줄여주거나 탕감해줄 수 없느냐는 것. 돌아온 대답은 냉정한 거절이었다.

이들에게 기회는 있었다. 2009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국회에 제안서를 냈다. ‘건강보험 급여제한 예외대상자 확대’. 당시 건강보험 지역가입 체납자는 199만2천 가구. 이들 가운데 49.9%가 월보험료 3만원 아래인 빈곤층이었다. 권익위는 건강보험료 체납자 관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①보험급여 제한, 가산금 부과, 의료 이용시 부당이득금 징수 등 체납자에 대한 불이익이 강력하고 중복적. ②건강보험료 체납자들에게 보험급여를 못 받게 하는 것은 사회보장에서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의 침해이자 사실상 의료보장의 사각지대. ③보험급여 제한이 세대 단위인 탓에 납부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
이를 근거로 권익위는 개선안을 제안했다. “건강보험료를 6회 이상 체납하였다 하더라도 급성 질환자, 임산부, 희귀·난치성 질환자에 대하여는 급여 제한을 하지 않도록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5항 개정.”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반대 의견을 냈다. 성실 납부자와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였다.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제도 개선은 제자리걸음. 고통받는 이들은 계속 늘었다. 광주에 사는 은희(44)씨. 한부모가정이다. 이혼 뒤 중학교 다니는 딸과 지낸다.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돕는다. 자활공공근로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월급은 80만~90만원. 최저임금도 안 된다. 건강보험료 체납액(부당이득금 포함)은 60만원가량. “독촉 고지서를 볼 때마다 ‘내야 하는데’ 생각을 해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한숨이 창밖 장맛비 소리를 덮었다.
한때 어깨 근육통이 심했다. 잠을 못 잘 정도. 몇 차례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는 가지 못했다. 건강보험은 그에게 멀리 있다. 오는 10월엔 자활공공근로 기간마저 끝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방치할 수 없으니,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더 벌기도 힘들어요. 건강보험료 체납 독촉 때문에 심적 고통이 커요. 살기가 버거워요.” 어두워진 하늘, 장대비는 좀체 그치지 않았다.

(중략)

누가 생계형 체납자를 구할 수 있을까

친구집에서 더부살이하는 소희(38)씨는 공황장애까지 앓는다. 2010년 불성실한 남편과 헤어졌다. 1억원 넘는 빚을 떠안았다.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 환자. 간병을 도맡았다. 이듬해 아버지는 숨졌다. 아버지 모시고 병원 가던 길에 단독사고를 냈다. 차량은 견인됐다. 아픈 아버지 탓에 경황이 없었다. 차를 챙기지 못했다. 잊고 지내는 사이 세금이 300만원가량 붙어 있었다. 건강보험료 체납액도 430만원.
사고로 폐차해야 하는 자동차가 몇 년간 재산으로 간주됐다. 그만큼 보험료가 더 붙었다. 최근에야 그걸 알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통사정했다. 보험료는 재조정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가끔 ‘일당 교사’로 일하며 버는 돈은 100만원 안팎. 남은 채무를 갚는 데 50만원 넘게 다달이 빠진다.
건강보험제도는 그에게 딴 나라 얘기다. “평소엔 건강보험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평범하게 살다 무너져버리면 건강보험 같은 거에 신경도 못 써요. 이 정도 체납된 줄도 몰랐어요. 이만큼 무서운 줄도 몰랐어요.” 소희씨 눈 밑이 검고 깊었다.
6월30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건강보험료 부과체계 세부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해 보험료 인하와 형평성을 높인다는 게 뼈대다. 특히 이 대목에 눈길이 갔다. “저소득층의 부담이 경감될 뿐만 아니라 의료취약계층의 보험료 체납으로 인한 보험급여 혜택의 제한도 없어질 것.” 그러나 체납보험료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한 보완책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사각지대다.
2016년 한국, ‘레미제라블’(참혹한 사람들). 100만 가구 안팎. 사각지대가 너무 넓다. 사람을 도와야 한다.
광주·구미·고양=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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