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급격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초비상이 걸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국 이래 대동란”(2022년 5월13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이라고 규정했을 정도다. 북한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의 지휘 아래 엄격한 격폐(격리·폐쇄)와 환자 관리, 보건위생 수칙을 강화하지만 백신과 의료장비가 크게 부족해 국제사회의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실시간 세계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Worldometer)의 집계를 보면, 2022년 5월18일 오후 6시 기준 북한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97만8230명, 사망자는 63명이다. 이날 신규 확진자는 26만2270명으로 5월12일 첫 발표(1만8천여 명) 이후 일주일 내내 가파르게 치솟았다. 5월1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굳건히 지켜온 우리의 비상 방역전선에 파공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이 발생하였다”며 처음으로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최대 비상방역체계’ 이행을 선언했다. 방역정책의 주요 과업으로 △전국의 모든 시·군 지역 봉쇄 △전선·국경·해상·공중 경계근무 강화 △사업·생산·생활단위별 격폐 후 생산활동 △비상시 대비 의료품 비축분 동원 등을 지시했다.
다음날인 5월13일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4월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전국적 범위에서 폭발적으로 전파 확대돼 짧은 기간에 35만여 명의 유열자(발열자)가 나왔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뒤로도 북한은 2년2개월 동안이나 극히 예외적으로 ‘코로나19 청정 지대’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방역에 갑자기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지구촌 전역을 덮친 코로나19 대유행에 철저한 국경 봉쇄로 대응해온 북한에서 감염병의 최초 발원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이로써 2022년 5월19일 현재 전세계에서 코로나19 발병이 한 건도 보고되지 않은 나라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과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 두 곳으로 줄었다. 북한 전역에 급속히 퍼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오미크론 변종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아직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백신 비축 물량도 전혀 없다. 현재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실적이 전무한 나라는 북한과 에리트레아, 둘뿐이다.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의 마이크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세계보건기구는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곳에서 새 변이 출현 위험이 더 높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북한 방역 당국은 신규 확진자가 5월15일 39만292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완만한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아 실제로 호전 추세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북한은 2021년 9월부터 세계보건기구에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를 보고하고 있는데 장비가 부족해 (PCR 검사가) 하루 평균 120건 안팎에 그치는 실정”이라며 “(확진자) 대부분은 발열과 환자 접촉 여부로 판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응에 국가의 보건 방역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5월18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 치료안내지도서가 작성되어 중앙과 지방의 각급 치료예방기관들과 해당 단위들에 시달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지침은 “어른용, 어린이용, 임산모용으로 구분”해 작성됐으며, “(확진 지표인) 역학관계, 임상증상, RT-PCR검사, 항체검사에서 1개 지표가 양성인 경우 확진”으로 판정하도록 했다. 지도서에는 “중증도 판정 기준, 병 경과와 중증도에 따라 개별화한 약물 치료, 나이·체질·체중에 따른 약물 선택과 용량 확정 등 일반적 치료 원칙들”과 “각이한 증상과 수반증, 특이체질 환자에 대한 다양한 치료법”도 언급돼 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북한이 올해 초 중국에서 마스크와 의료용품을 대거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중국 해관총서의 북-중 무역자료를 보면 북한은 2022년 초 3개월 동안 중국에서 약 18만3천달러어치의 마스크(약 748만 개)와 1128만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수입했다는 것이다. 중국산 수입 의약품은 비타민·항생제·백신 등의 순으로 많은데 백신이 어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인지 표기되지 않아 정확한 용도는 파악되지 않았다.
앞서 5월14일 <노동신문>은 ‘유열자 치료 지침’에서, 바이러스 치료 약제로 인터페론, 2차 세균감염 치료제로 페니실린 등 항생제, 대증치료제로 해열제와 소금물 함수(입 헹구기), 한약재와 민간요법으로 패독산·우황청심환과 버드나무 잎 우린 물 등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북한의 의료행정 체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사회주의헌법 제56조는 전반적 무상치료제, 선진적인 의사담당구역제, 치료에 예방을 선행시키는 예방의학제도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의사의 담당구역제는 의사가 담당지역 주민의 가정을 연 1~4회 순회하면서 의료상담, 치료와 위생교육 등 체계적 진료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러나 “과다한 의료 대상, 넓은 진료 범위, 의약품 부족 등으로 대부분 형식적 진료 행위에 그치는 실정”(통일부 북한정보포털)이라는 평가도 있다.
북한의 보건 위기를 극복하려면 대규모 백신 접종이 가장 효과적이다. 신영전 교수는 “대북 방역 지원에서 신속, 대규모, 무조건이라는 세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단장비, 보호장구, 백신과 해열제·항생제 등 기초 의약품을 보건·의료 인력을 시작으로 전 주민에게 빠르고 충분하게 제공해야 하며, 그런 지원에 정치적 조건을 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북쪽 환자의 절대다수가 재택 격리치료를 할 텐데, 이 경우 환자 본인과 가족을 위한 식량 지원도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5월16일 한국 정부는 북쪽에 ‘코로나 방역 협력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을 제의하고 통지문 발송을 타진했으나, 북한은 5월19일 현재까지 통지문 수령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5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다. 한-미 동맹 강화와 중국·북한 견제에 초점이 맞춰진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의 합의와 실행이 북한의 보건 위기뿐 아니라 한반도 정국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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