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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동성 청구서가 날아왔다

대출 이자 부담에 한숨… 물가상승 부담 큰 저소득층 집중 지원해야
등록 2022-05-15 14:30 수정 2022-05-17 01:51
2022년 5월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5월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38)씨는 서울에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 현재는 세입자가 살고 있다. 가을에 재건축이 시작되면 이씨는 이주비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계획이다. 대출이자는 2021년까지만 해도 3%대 수준이었는데 최근 알아보니 4%대로 올랐다. 이씨는 “하반기에도 금리상승이 계속된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내가 대출받을 때는 이자가 5%를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평균금리 3.7%→5.46%

코로나19로 촉발된 유동성 잔치가 끝난 뒤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그동안 싼 이자로 빚내어 부동산·주식 투자를 했거나 대출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최근 늘어나는 이자 부담에 한숨을 쉬고 있다. 집값은 상승세가 꺾였고 주가는 2022년 5월11일 기준으로 전년 7월 고점 대비 20% 떨어졌다. 물가가 치솟으니 한국은행은 서둘러 금리를 올렸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겹치자 경제침체가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2022년 3월 국내 예금은행이 취급한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5.46%였다. 1년 전만 해도 3.7%였는데 1.76%포인트 올랐다. 한국은행은 2021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급증한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서다. 2021년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755조8천억원에 이른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37개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104.2%)이 가장 높았고, 1년 전보다 증가폭(6%포인트)도 가장 컸다(2021년 3분기 기준).

금리인상의 또 다른 목표는 물가 잡기다. 2022년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올랐다. 2008년 10월 이후 13년6개월 만에 최고치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2022년 물가상승률을 4%로 전망했다.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물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현재 기준금리(1.5%)를 2022년 말까지 2.25% 수준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한국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심각하다. 미국의 2022년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3%다. ‘40년 만에 최고 인플레’라는 말이 나온다. 월가에서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현재 0.75~1.00%인 기준금리를 2022년 말까지 3%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가상승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2년간 지속되면서 세계 물류 공급망이 계속 차질을 빚고 있다. 2022년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이런 외부 요인 외에도 지난 2년간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과도하게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 그 부작용이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난다는 진단도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재정 규모 적어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책임론’ 논쟁이 한창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물가상승의 주범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지목하며 “푸틴의 가격인상”(Putin’s price hike)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반면 일부 경제학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점을 들어 바이든 정부와 연준의 정책 대응이 늦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교수는 2022년 5월4일 논평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실은 칼럼에서 “진보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부채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인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바이든 대통령이 연준 의장의 임명권을 활용해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맞게 연준이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경제고문을 한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학 교수 등은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 대규모 부양정책을 펼 때부터 꾸준히 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에 쓴 정부 재정 규모가 미국 등 주요국보다 적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책임론에서 온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2022년 1월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사록을 보면 한 위원은 “코로나 팬데믹하에서 정부 재정의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취약 부문에 집중하면서 규모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재정이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자산이 많은 계층보다는 저소득층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지원금을 줘 소득 불균형을 보전하더라도 그 효과가 물가상승에 의해 상쇄될 수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그동안의 저금리 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이긴 하지만 정부가 전 국민에게 일괄 지급했던 재난지원금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방식이라 취약계층 지원 효과가 크지 않고 인플레이션에 부담이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성장 전략을 면밀하게 수립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그동안 정부 정책은 돈을 풀어 경기를 방어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해서 성장률을 더 끌어올렸다면 물가상승에 따른 부담도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제일 문제가 물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봉쇄가 길어져 인플레이션이 언제 사그라들지는 불확실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11일 열린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제가 굉장히 어려운데 제일 문제가 물가다. 물가상승 억제 대책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날 당정협의에서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370만 명에게 1인당 최소 6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저소득층 지원 등을 포함해 총 59조4천억원을 지출하는 방안을 추가경정예산안에 담았다. 정부는 물가와 금리 상승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초과세수와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정부의 추가 지출이) 물가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그보다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지원하는 게 더 절실한 상황”이라며 “공급망 관리 등 여러 물가안정 대책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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