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펼침막을 들고 우리를 맞이했다. 펼침막 중 하나에 ‘우리는 당신 편’이라는 말이 있었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를 환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쁨 덕분이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데 정작 내 동족은 나를 위협하고 있다는 슬픔 때문이기도 했다.”
2021년 8월27일 탈레반의 집권을 피해 한국에 들어온 자파리 모센(29)은 전남 여수시 해양경찰교육원에 처음 들어선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한국대사관과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에 고용돼 근무하면서 한국 정부에 도움을 준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390여 명을 ‘특별기여자’ 자격으로 받아들였다. 자파리의 아내 타헤라 파이미(29)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이었다. 자파리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자파리 부부 등 이른바 ‘특별기여자’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 5~6개월간 충북 진천군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전남 여수시의 해양경찰교육원에서 한국에 정착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생활했다. 2022년 1~2월 390여 명 모두가 교육시설에서 나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정착했다.
자파리가 기억하는 한국의 첫인상은 ‘환영’이었지만, 150명 넘는 아프간인이 정착한 울산에서는 일부 주민이 ‘난민 집단 거주 형성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고 손팻말 시위를 하는 등 반발했다. 한국에 정착한 이들은 이제 편견과 맞서야 할 처지가 됐다. 2월22일 전자우편, 전화 통화 등으로 자파리와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파리는 아프간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이다. 시아파 모슬렘인 하자라족은 아프간에서 인구가 세 번째(9%)로 많지만, 아프간 주 통치 세력인 파슈툰족(42%)과 탈레반한테 줄곧 탄압받았다. 아프간 인구의 90%는 수니파로 분류된다. “나와 가족들은 민족성 때문에 탄압을 많이 받았다. 탈레반 고위 인사는 모두 파슈툰족이다. 탈레반은 타민족 전문가를 수용하지 않고 비파슈툰 인력을 고위직으로 활용하려 하지도 않는다. 외국 정부와 협력한 적이 있다면 탈레반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다. 아내가 한국대사관 직원이었다는 것만으로도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카불공항에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가 떠나려던 날,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공항으로 안내하기 위해 지정된 입구에서 대기했지만 인파를 헤치고 다리를 건널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운하를 건너야 했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운하를 건넜다. 겨우 공항에 도착해 밤을 보냈다. 여성과 아이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공항 내 미용실에서, 남자들은 공항 뜰에서 대기했다. 다음날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대피했다. 이 그룹에는 임산부 2명과 어린이 14명이 있었다. 이슬라마바드에 먼저 도착해 다른 그룹들이 무사히 도착하길 기다렸고, 전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7시간 휴식 뒤 이슬라마바드공항에 준비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이동했고, 2021년 8월26일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미라클 작전’이라는 이름처럼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렇게 도착한 이들은 한국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수업에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이 포함돼 한국 사회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엔 음식이 새로워 먹기 어려웠지만, 식단을 바꿔달라는 아프간인들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여줘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자파리는 1월 여수시 해양경찰교육원을 나와,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경기도 김포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현재 온라인으로 일하고 있다. 나무공예가였던 그가 아프간에서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라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전기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계속 예술 분야에서 일했다. 다행히 컴퓨터를 다루는 데 익숙해서 업무에 도움이 된다. 사장님도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 노력해 힘이 된다.”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은 거주 비자(F-2)를 받았다. 거주 비자는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장기체류 자격의 한 종류로 발급 이후 5년까지 체류할 수 있고, 아무런 제한 없이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 이들은 생계비나 정착지원금 등 국내 정착 과정에서 일시 지원되는 혜택에서는 난민보다 나은 대우를 받았지만 법적 자격(F-2)은 난민과 같다. 일각에서는 까다로운 난민 심사를 면제받은 것만으로도 한국 정부가 큰 혜택을 줬다고 말하지만 5년은 한 나라에 정착하고 적응하기에 결코 긴 기간이 아니다.
그래도 자파리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한국 정부가 살 곳을 제공하고 취업에도 도움을 줌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 일하는 분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잘 배우면 이직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직업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비자 종류를 바꿔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정착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지역 주민들의 아프간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두려움이다. 특히 최근엔 울산 동구에서 반대 여론이 크게 일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 중 29가구 157명이 2월7일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에 새 거처를 마련하고 정착을 시작했다. 29명의 가장은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산하 협력업체에 취업했고, 자녀 85명도 인근 학교에 배정될 예정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초등학교 학부모 중심으로 반대시위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자파리 역시 부정적인 여론을 알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의견은 신념에 기초하고 신념은 관찰에 기초한다. 만약 우리가 한국 정부와 한국인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우리는 그런 사람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인과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감사를 표시한 자파리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의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나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때때로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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