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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재택근무를 해도 회사는 ‘지켜본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확산하자 카메라나 GPS로 노동감시…“디지털 노동통제 문제를 검토할 때”
등록 2022-02-14 16:30 수정 2022-02-15 10:43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내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재택근무에 들어간 공무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내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재택근무에 들어간 공무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연구직에 종사하는 박창수(가명)씨는 2020년 3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재택근무자 비율’과 같이 근무의 큰 틀은 회사 차원에서 정했으나, 구체적인 재택근무 시행 방침은 각 부서 책임자에게 일임했다. 박씨는 재택근무 전날 ‘내일 ○○모델의 △△을 □□해보겠다’고 상사에게 보고한 뒤, 재택근무하는 날이면 퇴근하기 30분 전에 업무 진행 경과나 성과를 다시 보고했다. 그런데 2020년 여름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을 이용해 ‘각자의 컴퓨터 화면을 전체 공유한 상태에서 근무하라’는 상사의 지시가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일방적 지침에 사내 익명게시판이 들끓었다. ‘일종의 감시 아니냐. 위법이 의심된다.’ 누군가 장문의 글을 올리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컴퓨터 화면 공유 방침은 하루 만에 철회됐다.

관리와 감시 사이

“얼렁뚱땅 모두가 합의한 척하면서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려고 한 거죠. 관리자니까 관리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서 팀원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박씨가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비대면 근무’ 방식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새로운 근무 방식의 가능성을 경험한 이상 재택·원격근무는 팬데믹이 종식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21년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재택근무를 시행한 사업체 10곳 중 7곳(75.2%)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답했다.1 팬데믹 종식까지 멀리 내다보지 않더라도 당장 2022년 2월 초부터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일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5만 명을 넘어서면서 재택·원격근무가 다시 확대되는 추세다. 정보기술(IT)·식품·건설 업계 가릴 것 없이 “회사로 출근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근태관리와 노동감시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재택근무 환경에서 눈으로 하는 통제는 어렵지만, 오히려 디지털 수단을 통해 더 강화된 통제도 가능’2해지면서 노동자의 업무 자율성과 사생활을 위협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사업장 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한 감시 등 디지털 노동감시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눈앞에 닥친 재난 상황, 디지털 기술의 발달 속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사업장마다 업종과 특성이 다양해서 근태 모니터링이 어디까지 정당하고 어디서부터 정당하지 않은지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자들에게 모니터 위에 캠을 설치하라고 한다. 회의나 교육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회의나 교육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인데 캠 설치가 왜 필요한지 문제를 제기했더니 ‘개인정보 유출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하다’ ‘집에 찾아온 지인이 개인정보를 볼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댔다.” 시민사회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상담 사례다.

이처럼 카메라를 이용한 노동감시는 가장 흔한 유형 중 하나다. 일반적인 업무용 소프트웨어나 보스웨어(Bossware·직원들의 컴퓨터 등을 감시하거나 분석하는 데 쓰이는 컴퓨터 프로그램), 노동자 개인 휴대전화에 설치된 지피에스(GPS·위성항법장치) 추적 기능까지 노동감시를 위해 활용된다. 2021년 10월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동의 없이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했다며 노동조합에 고발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재택근무시 사용자가 노동자의 근태를 관리하는 것은 영업 기밀 보호, 업무 진행 상황 관리,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 등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동의’를 받았느냐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개인정보보호법(제15조 1항)에 있다.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거나(1호),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해야 한다(6호). 그러나 이 법은 카드 정보 대규모 유출 사건처럼 소비자나 시민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기울어진 지위에서는 ‘동의’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뿐더러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 등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감시설비가 필요하다 해도 정보주체(노동자)의 권리침해를 최소화하는 한도 내여야 하고 정보 수집의 목적과 처리 절차, 보관 기한도 고지돼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동의받거나,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인지 따져보는 그 모든 절차가 사실상 생략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관계 법령상 노동감시와 관련된 규정은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제20조 1항 14호)에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설비의 설치를 노사 협의 사항이라고 규정한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노사협의회가 없는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그 처벌 규정이 없어 문제다.3 2021년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노동자 117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 내 전자기기 설치 전에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와 사전에 협의했다는 응답 비율이 전자기기 유형별로 10% 안팎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참여법의 유일한 조항조차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의미다.4

국가인권위원회도 2005년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과 2017년 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내놨지만 정작 사업장에서는 별다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동의’가 일치하려면

시민사회계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노동현장이 변화하길 기다리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할 예정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감시설비를 명확히 정의하고 근로조건의 하나로 명시한다. 특히 노동자가 감시설비 설치에 문제를 제기해도 사후 동의로 문제를 봉합하던 관행을 막기 위해, 노동조합과의 서면 합의 절차와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등 ‘노동자 동의’ 과정의 절차적 정의를 최대한 보장하고 다른 대체 수단을 요구할 권리까지 법에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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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아예 배제할 수 없고 (근태에 대한) 모니터링이 일정 정도 필요하다면 그 동의 절차를 명확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양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찾아나가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노동자의 개인정보 보호 이슈의 관할도 고용노동부로 정리된다. 2021년 12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노동감시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명확한 감독기관이 고용노동부인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인지 불분명한 상태였다. 노동자를 감시할 목적의 전자감시 설비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도 2021년 9월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지난 2년 동안 기업들은 재택근무자에 대한 통제와 평가 방식을 충분히 학습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재택근무가 시공간의 자율성, 돌봄노동과의 병행 등 긍정적 측면에서 논의됐다면 이제는 제도적인 노사 협의, 디지털 노동통제 문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참고 문헌
1. ‘2021년 고용영향평가 결과 발표’, 고용노동부, 2021년 12월16일
2. 성공적인 재택근무 도입을 위한 길잡이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 2020년 9월, 고용노동부
3. ‘노동감시 규율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취지와 내용’, 김하나 변호사, 2021년 11월
4. 진보네트워크센터, ‘디지털 노동감시 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직장 내 디지털 전자기술 활용 실태’ 조사 결과,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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