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무성한 숲과 옹기종기 모인 집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강원도 동해시 심곡동에 자리한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평지를 품은 나지막한 동네 뒷산인 이 일대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는 ‘임야’라서 주택을 지을 수 없지만, 개발사업이 시작되면 ‘공동주택용지’가 돼 아파트가 들어선다. 망상해수욕장 인근 밭도 복합용지로 개발돼 주상복합이 올라갈 수 있는 상업시설이나 주택용지로 쓰일 수 있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동해이씨티 국제복합관광도시(망상1지구)’라는 이름으로 그려지고 있는 청사진이다. 인구 9만인 동해시에 2만여 명이 살 수 있는 주택 9천여 채를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개발계획을 두고 동해 지역민심은 갈라졌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이 터져나온 뒤로는 이 사업시행자 역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개발사업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의 현장인 동해시를 10월5일 찾아간 이유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은 최문순 강원도 도지사가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내건 공약에서 시작됐다. 외국자본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2013년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됐다. 애초 계획으로는 강릉시 옥계면, 동해시 망상동 등 여의도 절반 규모인 4.32㎢(약 130만 평) 면적에 사업비가 8880억원으로 예상되는 대형 사업이었다. 그러나 투자 유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업 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사업 시행은 오랜 기간 지체됐다. 망상1지구 개발 사업계획은 ‘국제화훼단지’에서 ‘사계절 해양·복합리조트단지’(2013년), ‘정주형 복합관광도시’(2018년)로 계속 바뀌었다. 2015년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외국계 기업 던디360 동해개발공사는 급기야 사업권을 포기했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은 망상1지구의 관광개발용지를 기존보다 4분의 1 이상 줄이는 사업계획을 세웠다. 마을 인근 토지는 개발구역에서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임야로 개발 면적의 85%를 채우고, 밭과 논 등은 15%가량 사들이는 안이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없이 관광만으로 개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미니 신도시’를 만들어 고급형 관광빌라를 지어 분양할 수도 있고 생활 숙박시설이나 오피스텔로 쓸 수도 있다.” 이우형 동자청 망상사업부 부장의 말이다. 망상1지구 사업계획상 건설하려는 주택은 모두 9125가구로 인구 2만여 명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다. 문제는 동해시 주택보급률이 이미 116.9%(2019년 12월 기준)라는 점이다. 동해시민인 김재길 목사는 “구도심 안에도 주택이 비어 있는 곳이 많고 신축아파트 분양도 쉽지 않다. (대형 주택단지를 건설하면) 구도심이 지금도 한산한데 공동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던디가 포기한 민간 사업시행자 자리는 동해이씨티라는 회사가 차지했다. 관련한 특혜 의혹도 나온다. 동해이씨티가 허위로 사업자 자격을 꾸몄다는 의혹이다. 동해이씨티의 상진종합건설은 2017년 사업제안서를 동자청에 제출하면서 직원 2521명, 총자산 1조2천억원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10월5일 국내 기업데이터 제공 사이트인 ‘크레탑’에서 조회한 내용을 보면 상진종합건설의 종업원은 9명, 2017년 기준 자산총계는 21억1100만원으로 나온다.
동자청 “경제자유구역법에 사업 공모 의무 없어”동자청이 공모 절차를 빠뜨린 채 사업을 진행했다는 논란도 인다. 동자청은 2018년 8월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망상지구 개발계획 변경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며 ‘2017년 7월10일 사업자 공모 실시’(국내외 4개사 참여)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창수 동해시의원은 “동자청이 뒤늦게 시의회와의 간담회에서 사업 공모를 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산업부에 허위로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자청과 남헌기 동해이씨티 대표(상진종합건설 회장)가 사전 협의된 상태에서 공모 절차를 빠뜨린 채 사업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우형 동자청 부장은 “원래 경제자유구역법에서 꼭 사업 공모를 하라는 의무 요건은 없다”고 반박했다.
상진종합건설은 2017년 8월 동해이씨티를 설립하고, 그해 9월 망상지구 토지경매에 단독 입찰로 참여해 54만5천 평을 143억8천만원에 낙찰받았다. 당시 동해이씨티가 확보한 토지는 전체 망상지구 사업부지(약 193만 평)의 28%가량에 그쳤다. 그런데 동자청은 2018년 8월 사업부지 면적을 줄이는 ‘개발계획 변경안’을 산업부에 보고했고, 두 달 뒤인 10월 동해이씨티가 수정된 계획에 따라 토지 52.9%를 확보한 뒤 사업자 자격을 얻었다.
남헌기 동해이씨티 회장은 “당시 (동자청이) 대기업 20~30곳을 찾아갔지만 투자를 안 해서 우리까지 찾아온 것이다. 누가 투자하려는 분위기도 아니었다”며 “(상진종합건설 종업원 수 등이 사업제안서와 다른 이유는) 여러 기업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다 공개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니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 역시 사업시행자 지정 과정에 문제는 없다는 태도다. 안성일 산업부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은 “사업시행자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일은 동자청 업무다. 다만 지역에 민원이 있다고 들었고, 강원도에서도 확인했지만 잘못된 것이 없다고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부동산개발 비리는 컨소시엄 시행사에서 시작된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시행자 자격이다. 사업시행자의 자격이 뻥튀기돼 있었다. 그 자체가 경제자유구역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마스터플랜 수립에 참여한 이성만 박사(행정학)의 설명이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는 ‘개발사업 시행자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시행자) 승인, 지정 등을 받은 경우’에는 ‘시·도지사는 개발사업 시행자의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역 주민들도 현재 진행 중인 개발사업의 이익이 대부분 민간기업에 넘어간다는 우려가 크다. 주택 미분양 리스크만 없다면, 임야를 택지로 형질 변경해서 사업시행자가 얻게 될 이득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대장동 사건이 터지고 확신이 들었다. 이 사업은 대장동보다 훨씬 못하다. 민관 공동개발이라고 하지만, 개인과 민간기업이 차지하는 지분 비율이 95%에 이르고 사업 권한을 사실상 동해이씨티라는 특수목적법인에 넘겼기 때문이다.” 2020년 9월부터 1년 넘게 동자청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온 김원석 환경운동가가 말했다. 지역 주민은 ‘동자청 망상지구 범시민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렸다. 위원회가 바라는 점은 아파트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개발’이다.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광객을 유입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비대위)하는 것이다.
동해=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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