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6일 폐업 첫날, 서울 은평구 ‘동네서점’인 불광문고를 찾았다. 책이 머물렀던 자리에 정리가 한창이다. 230평 공간이 텅 비었다. 서점을 오갔던 독자들이 남긴 메모가 잎사귀처럼 달린 키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불광문고 앞에 서 있었다. 메모에는 안타까움과 추억이 도배돼 있었다.
‘꼭 다시 돌아와주길 희망합니다. 25년 동안 같은 자리에 같은 미소로 있어주셔서 참 많이 든든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책임져준 불광문고, 고맙습니다.’ ‘갑작스러운 뉴스에 많이 걱정되고 우울합니다.’ ‘어린이 코너에서 한국문학으로, 토론 문제집에서 수능 전날 기출풀이까지 인생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8월19일엔 한 주민이 은평구청 누리집에 ‘불광문고를 지켜주세요’라는 청원글을 올려 1600여 명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 주민은 불광문고에 대해 “오래된 서점임에도 뒤처지지 않고, 좋은 책을 잘 소개하기 위해 독자적인 큐레이션을 시도하는 좋은 서점”이라고 했다.
불광문고는 2000년부터 어린이 문화교실을 열어 7년간 운영하는 등 시민사회 거점 구실을 했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다른 서점에서는 신입 위주로 직원을 뽑지만, 이곳엔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여럿이다. ‘훈련돼야 책 진열 등 서점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잘 안 팔린다는 이유로 다른 서점에선 구석으로 몰리거나 아예 사라져버린 ‘시집 코너’ ‘인문 코너’를 서점의 괜찮은 위치에 계속 마련해뒀다. ‘창작동화’ ‘그림책’ ‘1인 출판사’ 관련 코너도 불광문고의 고집이 있어 유지됐다.
“책 진열이 달랐다는 건 손님들도 알고 계셨더라고요. 저희라고 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위주로 진열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다른 서점과 비교해보니 저희는 시집 매출이 그나마 높은 편이더라고요. 손님이 봤으면 하는 책을 잘 보이는 데 진열하고 사가고 그러면 그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유지되는 거잖아요.” 장수현 불광문고 실장이 말했다.
불광문고가 문을 닫은 것은 건물주와의 임대계약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서점이 문을 닫은 데엔 온라인·대형 서점의 영역 확장과 도서 유통회사들의 동네서점에 대한 ‘가격 차별’ 등이 그 이면에 있다.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버텨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판매해 얻은 이익으로는 임대료·인건비 감당이 버거운 날들이 오래 지속됐습니다. 2020년에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여러 명의 동료들도 일터를 떠나야 했습니다. 슬펐습니다. 도서유통시장은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습니다. 오프라인 지역 서점은 온라인 서점에 비해 비싸게 책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런 기형적인 유통구조로 인해 ‘책을 비싸게 파는 도둑놈’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불광문고 직원 일동’
임직원들 “규모 줄여서라도 다시 열겠다”장 실장은 “규모를 줄여서라도 불광문고의 명맥을 이어가려고” 한다. 9월 첫 정리해고를 한 뒤에 남은 직원은 8명이다. “책만 20년 동안 팔던 사람들이 할 일이 달리 뭐가 있겠어요. (서점을 이전할 장소는) 되도록 은평구로 알아보고 있는데, 임대료와 권리금 같은 비용 문제가 크더라고요. 다들 너무 지쳐 있어서 일단은 좀 쉬려고 합니다.”
도서 유통회사들은 앞으로도 만만하고 영세한 동네서점엔 책값 바가지를 씌울 것이다. 동네서점은 인터넷서점보다 더 비싸게 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동네서점에는 ‘책을 판다’는 보람 하나만 간신히 남아 있다. 불광문고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서울=글·사진 김양진 <한겨레>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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