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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과 특별기여자, 불만과 환영 사이에

아프간에서 온 특별기여자 390명 머무는 충북 진천 현장을 가다
등록 2021-09-04 07:51 수정 2021-09-05 01:21
한국에 온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태운 버스가 2021년 8월27일 낮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개발원 입구에는 환영 펼침막이 걸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국에 온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태운 버스가 2021년 8월27일 낮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개발원 입구에는 환영 펼침막이 걸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21년 9월1일 충북 진천군 덕산읍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진천캠퍼스. 경비는 삼엄했다. 개발원 정문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내부에는 경찰기동대 2개 중대가 배치됐다. 개발원 외곽에는 순찰차 3대가 돌아다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지만, 경찰관 3명이 근무하는 임시 치안상황실도 꾸려졌다고 한다. 삼엄한 분위기와 달리 개발원 입구에는 각각 한글과 영어로 적힌 펼침막 4개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환영했다.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합니다.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가시길 바랍니다.” -진천군민 일동-

“여러분과 슬픔을 함께합니다. 힘내세요.” -음성군민 일동-

‘돈쭐 나세요’ 응원 구매에도 불구하고

8월27일, 진천군은 ‘미라클 작전’을 통해 무장조직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한국으로 온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를 수용했다. 이들의 포용력에 화답하기 위해 전국에서 진천 특산물 구매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2018년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반대가 심했던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와는 다른 기류다. 당시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도망친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대거 입국하자 ‘난민 반대’ 집회가 열릴 정도로 여론이 싸늘했다.

8월31일 진천군에 따르면 아프간인들의 인재개발원 수용이 확정된 지난 25~29일 닷새 동안 진천군이 운영하는 온라인쇼핑몰 ‘진천몰’에 주문이 폭주했다. 진천몰은 진천 지역 농특산물을 온라인 판매하는 사이트로, 판매 금액 전액이 생산자에게 지급된다. 닷새간 2천여 건의 주문이 진천몰에 몰려들었다. 아프간인들을 수용한 데 대해 전국의 소비자들이 ‘돈쭐을 내주자’며 응원 구매에 나선 것이다. 쇼핑 후기에도 ‘감사한 마음에 구매했다’ ‘돈쭐 나세요’ ‘국격을 높여주셔서 감사드린다’ 등 응원 댓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폭주한 주문에 8월29일 진천몰 운영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 기간 6900만원 매출을 올렸다. 이는 최근 한 달 매출액을 웃도는 수치다.

이처럼 진천 주민들의 포용력에 전 국민이 응원과 찬사를 보내지만 충북혁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충북혁신도시는 2013년부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국가기술표준원·법무연수원 등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이 이전해오면서 생긴 도시로, 진천군 덕산읍과 음성군 맹동면 일원에 조성돼 있다. 인재개발원이 위치한 곳도 충북혁신도시로, 주민들은 가까운 곳에 사는 자신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아프간인들을 수용할 장소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재주는 혁신도시가 부리고, 돈은 진천이 번다”고 입을 모 았다.

8월29일, 충북혁신도시 주민 300여 명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아프간 난민 의견방’을 만들고 법무부 등에 전달할 요구사항을 취합했다. 이들은 아프간인들의 숙소 이탈 및 테러 같은 위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하고, 수용 기간 이후 아프간인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송해달라는 내용의 요구서를 8월31일 진천군과 음성군에 전달했다. 이 요구서에는 주민 1천여 명이 서명했다.

채팅방을 열어 의견을 취합 중인 이아무개(31)씨는 “아프간인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은 주민들의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떼어달라고 민원 전화를 넣기도 했다”며 “혁신도시는 국가기관을 이전하면서 타 지역에서 들어온 주민들이 대부분이라 지역 농특산물을 재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국민들은 엉뚱한 사람들만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우한 교민 이어 “또 우리 동네”

혁신도시 주민들은 아프간인들이 한국 문화에 잘 어우러지지 않아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아무개(27)씨는 “(2020년 1월 중국에서 대피해온) 우한 교민을 수용할 때는 시위까지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번에도 또 우리 동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진천군의 한 택시 기사는 “우한 교민 수용 때는 걱정이 많았지만, 걱정과 달리 아무 일 없지 않았나.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 주민의 불만이 쏟아지자 송기섭 진천군수는 9월1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프간인들이 8주간의 인재개발원 수용 기간을 마치면 제3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윤창열 국무조정실 1차장이 수차례 확언했다”며 “떠돌고 있는 관내 정착지 조성에 대한 소문은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도왔던 아프간인과 그 가족들인 특별기여자 390명은 인재개발원에서 2주간 격리된 뒤 6주간 머물며 정착 교육을 받고, 정부가 마련한 다른 시설로 옮겨질 예정이다. 법무부는 8월26일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위해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 최종적으로 F-2 체류 자격을 취득하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F-2 체류 자격은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장기체류 자격의 한 종류로 최장 5년까지 체류할 수 있고, 아무런 제한 없이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다. 아프간인이 F-2 체류 자격을 얻는 시점은 개정될 시행령에 따른다.

이들은 생계비나 정착지원금 등 국내 정착 과정에서 일시로 지원되는 혜택 면에서는 난민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법적 자격은 난민과 같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F-2 체류 자격이 부여되고, 취업 활동도 제한 없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난민 심사는 까다롭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음을 본인이 직접 증명해야 한다. 한국의 난민인정률(2020년 기준)은 0.4%에 그친다. 이번에 특별기여자 자격으로 입국한 아프간인으로선 난민 심사가 면제된 것만으로도 혜택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수용 기간 8주, 그다음엔?

김종철 어필 변호사는 “한국 정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기에 이미 난민으로 인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법무부는 난민 인정이라는 정면 돌파를 피하고 부정적인 여론은 내버려둔 채 특별기여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비겁한 방법을 썼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진천몰이 마비되는 등 우호적인 여론이 생기긴 했지만 장기적으론 난민과 특별기여자를 구분짓게 만들고, 난민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기회를 잃었다”고도 말했다.

전문가들은 ‘8주 뒤’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난민 지원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2018년) 예멘 난민 입국 때보다는 국민들의 정서가 좀더 우호적으로 변한 것이 느껴진다. 한국과 라포(상호 신뢰)가 형성돼 있는 ‘특별기여자’라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며 “수용 기간 이후 이들을 어디에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주민들과 소통하며 난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천=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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