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4일이었다. 초여름의 햇살이 뜨거워질 때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1t 트럭 하나가 도착했다. 8명의 살림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단출한 이삿짐이 실려 있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살던 장애인 8명이 시설을 나와 공원에 펼쳐놓은 짐은 옷상자 몇 개, 소형 냉장고 1개가 전부였다. 30년 가까이 시설에 살았지만 내 살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12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한 건물 안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야 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8명은 기꺼이 시설을 뛰쳐나와 노숙 생활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를 외쳤다. 그렇게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탈시설 정책이 만들어진 것은. ‘마로니에 8인’의 투쟁으로 장애인도 시설 밖에서 자립할 수 있는 탈시설 정책이 서울시에서 만들어졌고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가 이슈가 됐다.
“(일과를 묻는 말에) 휠체어에 앉아 있어요.” “이야기해봐야 통하지 않아요. 빨리 죽고 싶어요. 낙이 없어요.” “나가고 싶어요. 나 여기 싫어, 선생님 나 여기 싫어.” “이름 안 부르고 ‘너 이리 와’ 그래요. 속상해요.” “누워 있고 못 움직이는 사람은 방에 그냥 있어요.” “6시에 일어나서 그냥 이렇게 앉아 있다 9시에 자요.” “30여 년 동안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해본 게 처음이에요.” “바람 좀 쐬고 싶다. 바깥은 필요 없고 운동장이라도.”
-‘2017년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중 시설거주인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
대부분의 사람은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장애가 있으면 시설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사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시설 입소자 가운데 67.9%는 비자의적으로 입소하고, 한 방에 4명 이상 사는 경우는 66.7%에 이른다. 집단생활을 하다보니 하루 일과와 식단이 정해져 있고 머무는 공간도 제한적이다. 혼자 외출이 가능한 정도의 장애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시설 장애인은 외출이 불가하다. 직원 1명이 지원해야 하는 장애인이 여러 명이라 개별적 욕구에 따른 지원이 어렵다. 목욕과 세탁 등도 단체로 해야 한다. 특히 최중증장애인은 직원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어려워 더 소외되거나, 어려운 행동장애가 있을 때는 약물 통제,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도 한다. 직원들의 퇴근 시간 때문에 저녁 식사를 오후 4시30분에 하거나, 건물 밖에 아예 나가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020년 말 보건복지부가 전체 시설 장애인에 대해 실태조사를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변화가 없다’고 대답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이라는 이유로 외출, 면회, 각종 활동이 제한되는 등 자유권이 제한되는 상황을 확인하려는 질문에서 당사자들은 ‘변화가 없다, 즉 기존에도 계속 이렇게 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우리 사회에서 시설이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추방된 사람들, 이들은 투명인간으로 살기를 강요당한다. 시설 장애인 가운데 80%는 발달장애인이다. ‘나 여기 있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억울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개인은 삭제되고 집단보호 대상자로만 남아 있게 된다. 그렇게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회복지시설 수용 방식이 유지됐다.
2009년 서울시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2021년 8월2일 중앙정부 차원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2007년 우리 정부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무려 14년이 걸렸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하면 국제법과 국내법이 같은 효력을 갖게 되고, 가입 당사자국인 우리나라도 협약을 지켜야 한다. 협약 제19조는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을 위한 탈시설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지원하라’고 규정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무려 14년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과제 42번으로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탈시설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도 무려 4년 반 동안 지켜지지 않다가, 임기를 6개월 남은 시점에서 로드맵이 발표됐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 정말 너무 늦었다.
더욱이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막히는 듯하다. 현재 장애인 거주시설에 사는 2만9천 명의 탈시설을 2041년까지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평균 입소 기간이 18.9년인 사람들에게 앞으로 20년을 더 기다리라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복지부의 발표 자료에는 ‘스웨덴이나 캐나다 등 서구 유럽은 30~40여 년이 걸렸다’고 설명을 붙였다. 스웨덴은 1940년부터 영국은 1960년대부터 미국은 1970년대부터 탈시설을 추진했다. 이들 나라가 30~40년 걸렸다는 것은, 20세기의 이야기다. 지금은 2021년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근거 논 리다.
노르웨이 정부 공식위원회보고서(1985)는 “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처해 있는 생활 여건은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 했고, 뉴질랜드인권위원회는 1950~1992년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과 시설에서 아동과 성인에게 자행한 학대를 조사해서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제목이 <시설은 학대의 공간이다: 1950~1992년에 걸쳐 조사한 국립 시설 장애인들의 삶>(Institutions are places of abuse: The experiences of disabled children and adults in State care between 1950~1992, 브리짓 머핀 베이치 박사 및 제니 콘더 박사 공저, 2017)이다. 거주시설이라는 공간이 돌봄과 사랑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믿었던 뉴질랜드 국민은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 정부도 먼저, 진정성 있는 반성부터 해야 한다. 장애나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격리·배제 방식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을 대우했다.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시설에 격리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그 정책을 고수했다. 장애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종국에 모든 국민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와 일치한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시설 말고 내 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정책을 의미한다.
2012년 8월21일 서울 광화문 지하보도 안에서 시작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수용시설 폐지’ 운동은 3천 일이 넘도록 정말 안 해본 것이 없는 투쟁이 됐다. 정부청사 앞에서 ‘뻥튀기’ 차를 섭외해 부양의무제를 폐지한다고 하고서는 폐지하지 않는 정부에 뻥튀기를 즉석에서 선물했다. 제발 약속을 지켜달라고. 수많은 시민의 엽서와 종이접기를 모아서 청와대에 갖다줬다. 탈시설을 한 장애인들의 증언을 모아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지난 10년간 “탈시설이 뭐예요?”라고 묻는 시민들을 온·오프라인에서 만났다. 그렇게 해서 탈시설 로드맵이 탄생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외친 결과로 만들어진 탈시설 로드맵은 어찌 보면 너무 소중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정부의 로드맵이 발표되자 수많은 비판 성명이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쏟아져나왔다. 탈시설 로드맵이 장애인 당사자를 위하기보다는 ‘시설 운영 집단의 이권 보장을 위한 정책’으로 보인다는 점에서였다. 탈시설 정책에서 제일 중요한 철학과 가치는 장애인이 물리적 시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시설적 문화에서 벗어나 장애인이 자기 삶에 대한 권한을 되찾는 것이다. 공급자에게 전적으로 빼앗겼거나 위탁돼 있던 권한이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유엔이나 유럽연합(EU)에서 우려하는 ‘위성화된 소규모 현대적 시설’로의 시설 쪼개기와 ‘전문화’라는 이름 아래 또다시 중증장애인을 선별·격리하는 정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더욱이 예산은 없이 정책만 나열한 수준이라서 이행 가능성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탈시설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여야 하는가시설 운영 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탈시설’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부담스러워하는 복지부가 좀 힘을 냈으면 좋겠다. 탈시설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나는 이 정부가 끝나기 전에 주객이 전도되지 않고, 이권집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국제규약과 인권 모델에 기초한 탈시설 로드맵 업그레이드 버전을 기대한다. 그리고 국회에서 하루빨리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법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설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애정한다면, 하루가 급하다. 2041년 완료가 아니라 10년 내, 아니 이를수록 좋다. 우리 모두는 늙고, 시설 건물 안에서 밖으로 한 번 나가기를 열망하는 장애인들도 늙고 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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