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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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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된 제도, 두 번째 배제

기준 확대 이후 4개월, 장애 인정 결과는 예상 인원 2.5%에 그쳐
새로운 질병 기계적 판단… 당사자가 겪는 사회적 제약 반영 어려워
등록 2021-08-17 10:26 수정 2021-08-17 23:53
2021년 7월12일 경기도 파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건희씨. 최고기온 31도를 기록한 이날 오후, 에어컨을 켠 실내가 아닌 3층 실외 루프톱에서 1시간30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는 야외 좌석이 마련된 카페가 아니면 가지 못한다. 10초마다 한 번씩 목을 몸 쪽으로 꺾거나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 이를 피해 여름엔 땀 흘리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밖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1년 7월12일 경기도 파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건희씨. 최고기온 31도를 기록한 이날 오후, 에어컨을 켠 실내가 아닌 3층 실외 루프톱에서 1시간30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는 야외 좌석이 마련된 카페가 아니면 가지 못한다. 10초마다 한 번씩 목을 몸 쪽으로 꺾거나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 이를 피해 여름엔 땀 흘리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밖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 김진수 선임기자

투렛증후군 유튜버 이건희(36)씨는 2021년 4월 장애등급을 신청했다. 투렛증후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틱과 소리를 내는 음성틱이 1년 넘게 지속되는 질환이다. 그는 30여 년 동안 목을 꺾거나 ‘왁’ 소리를 지르는 투렛증후군을 앓아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법적 기준에 따르면 그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장애인 대상 스포츠센터에 갔더니 ‘소리를 내면 장애인들이 놀란다’고 이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소속감이 절실했다. 2021년 4월 정부가 장애 인정 범위를 넓혀 투렛증후군도 장애의 하나로 인정하기로 했다.

2021년 7월28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박서령씨. 고한솔 기자

2021년 7월28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박서령씨. 고한솔 기자

완치 어려워 장애등급 신청했는데, 또 병원 다니라니

“뚜렛증후군 당사자로서 사회의 편견이나 제도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면 어디든 소속돼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는 장애 진단서 등을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했다.

부푼 기대는 이내 깨졌다. 2021년 6월1일 국민연금공단 심사 결과, 장애등급 결정을 ‘보류’한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장애정도판정기준에 따르면, 투렛증후군으로 장애를 인정받으려면 ‘예일 틱증상 평가척도’(YGTSS) 등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 할 뿐 아니라 2년 이상의 치료 기록이 있어야 한다. 정해진 기간 동안 성실하고 지속적으로 치료받았음에도 호전의 기미가 없을 정도로 장애가 고착됐을 때 장애 인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으로, 3개월 이상 약물치료가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약물치료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투렛증후군은 정신과의원, 한의원, 대체의학을 거쳐도 나아지지 않았다. 목을 꺾는 행동이 계속되면서 2013~2014년 두 차례 목디스크 수술까지 받았고 그로 인해 걸음걸이도 불편해졌다. 자연스럽게 병원으로 가는 발길이 뜸해졌다. 3~4개월에 한 번씩 들러 약만 받았다. 현재 다니는 병원의 과거 진료 기록 8년치를 제출했지만 고려되지 않았다.

“약을 아예 끊은 건 아니지만 별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몽롱해지기만 했어요. 수십 년 치료해봤자 완치가 어려워서 장애등급 신청을 낸 건데, 다시 2년 동안 병원에 다니라는 게 납득이 안 가요. 그렇게 성실히 치료받으면 이 병이 고쳐지기는 하느냐고, 저는 묻고 싶었어요.” 8월10일 그가 제출한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체온이 떨어지면 통증이 극심해지기 때문에 보온기를 항상 들고 다니며 착용해야 한다. 고한솔 기자

체온이 떨어지면 통증이 극심해지기 때문에 보온기를 항상 들고 다니며 착용해야 한다. 고한솔 기자

10가지 질환, 장애로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2019년 10월 투렛증후군도 법이 정한 장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후 국정감사에서의 지적, 민원을 종합해 보건복지부는 2021년 4월 장애 인정 범위를 넓혔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중증의 복시(시각장애) △투렛증후군 △기면증 △강박(정신장애) △복합부위통증증후군(지체장애) △백반증(안면장애) 등 6개 장애 유형의 10가지 질환이 장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표 참조). 우리나라 복지시스템 아래서는 국가가 인정하는 장애인으로 등록돼야 복지정책 혜택 받을 길이 열린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니었던 경계인도 장애인으로 포함시켜 사회서비스·소득·고용 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부 인정 기준 앞에 선 장애 당사자들은 당혹감을 호소한다. 장애인권단체는 새로운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존 판단 체계를 형식적으로 적용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7월25일까지 인정된 장애인 수는 294명으로, 보건복지부의 등록 예상 장애인 수(1만1778명)의 2.5%에 머무른다. 두 번 배제된 장애인들은 큰 낙담에 빠진다.

이건희씨의 장애 등록을 가로막은 ‘2년’이라는 조건은 기존에 통용되던 제한 조건이다. 정신장애와 같이 변화하는 장애는 1~2년 이상의 지속적인 치료에도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착됐을 때 장애를 진단하고 인정하게 돼 있다. 치료로 나아지는 경우도 있으니 일종의 유예기간을 두고 지켜보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투렛증후군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국뚜렛병협회 설명에 따르면, 투렛증후군은 완치가 어렵고 부작용으로 약을 끊는 환자도 많다고 한다. 치료 자체를 포기한 30~50대 환자가 많은 이유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심리치료학)는 “투렛증후군은 타 질환에 비해 약물치료 효과가 높다고 보기 어렵고 소화기장애나 수면장애 등 약물 부작용이 크다.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씨가 이용하는 휠체어. 타인과의 접촉이 곧 통증으로 전이되기 때문에 안내 메시지를 붙였다. 박서령 제공

박씨가 이용하는 휠체어. 타인과의 접촉이 곧 통증으로 전이되기 때문에 안내 메시지를 붙였다. 박서령 제공

통증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도 장애 인정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다. CRPS는 외상이나 수술, 신경 손상 등이 발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났는데도 신체 한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지속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몸이 불에 타는 것 같거나, 바람에 스쳐도 죽을 것만 같은 통증을 겪어 외국에서는 ‘자살병’이라고도 불리는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에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과 고통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입증해야 한다. 그만큼 장애 인정이 절실했지만, 통증의 객관적인 증명이 어려워 20여 년 동안 환자들의 호소는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장애 인정 범위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통증 자체로는 장애로 인정받지 못한다. “CRPS를 진단받은 뒤 2년 이상의 충분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위축 및 관절구축 등이 뚜렷한 경우”로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통증이 심하면 → 특정 신체 부위를 움직이기 어려워지고 → 그 기간이 길어지면 2차로 관절이 굳거나 근육이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하니, 이렇게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경우만 심하지 않은 장애(경증)로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의료계는 관절구축 등이 CRPS에 따른 필연적 증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용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관절구축은 하나의 양상일 뿐, 관절구축은 없으면서 통증이 극심한 환자들도 있다. 관절구축, 근위축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전체 환자의 30%도 안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CRPS 환자 한지수(34·가명)씨 사례가 그렇다. 장애 인정 범위 확대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상담받았지만 현재 관절구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장애등급 신청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2012년 넘어져 왼쪽 어깨가 탈골된 뒤 CRPS 진단을 받았다. 왼쪽 팔에서 시작된 돌발통이 옆구리를 타고 내려와 다리와 전신으로 퍼졌다. 응급실에 실려가기를 1년에 수십 차례. 휠체어 타고 병원 문턱조차 넘기 힘들고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게 어려워 기저귀를 착용하기도 했다. 통증을 완화하는 척수신경자극기를 몸에 심었다. 현재 다리 쪽 증상은 완화됐지만, 통증은 지속되고 있다. “통증이 아무리 심해도 몸에 마비가 오지 않는 한 안 된다는 얘기잖아요.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 때문에 기준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의사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정도의 아픔은 누군가 흉내 내거나 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용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우회 회장은 “장애 인정은 안 해줄 수 없고 해주자니 눈으로 보이는 장애만, 그것도 심하지 않은 장애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있는 유형(지체장애)에 끼워 맞춰 분류하지 말고 법을 개정해 장애 유형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CRPS뿐 아니라, 기면증 환우회도 불만이 크다. 기면증도 기면증 자체로는 장애로 인정받을 수 없고 정신병적 증상(우울, 불안, 공포 등)이 동반돼야 해서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기면증 환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환우회는 우려한다. 7월25일까지 8명의 기면증 환자가 심사를 거쳤으나 3명이 인정됐다.

50%, 75%, 90%, 다리 못 쓰는 건 똑같은데…

하루 이틀 벌어지던 문제는 아니다. 장애계는 근본 원인으로 의료적 기준에 따른 장애 진단 체계를 지적한다. 정상에 가까운 수치를 정해두고 이에 근거해 가부를 결정하는 체계다. 그러나 의료적 기준으로 장애 당사자가 처한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순 없다. 이런 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장애 인정 범주가 확대된다고 해도 새로운 유형의 누수가 이곳저곳, 고비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서령(39)씨는 간호사로 일하며 겪은 산업재해로 CRPS를 앓게 됐다. 오른쪽 발목의 극심한 통증으로 5분 이상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야 한다. 혹시 모를 접촉을 줄이기 위해 양말은 3개 이상 신는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지 못해 대중교통은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 가족이 번갈아 그를 차에 태워 출퇴근해준다. 그 때문에 장애인주차표지 발급이 절실했다. 장애인주차표지를 발급받으려면 보행장애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장애유형별 판정기준에 따르면 그는 한 다리의 발목 관절이 완전히 강직됐거나 운동 범위가 90% 이상 감소돼야 한다. 그의 오른쪽 발목 관절의 운동 범위는 75% 이상 감소된 상태다. CRPS로 장애 인정(50%)은 받았지만 보행장애(90%)는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필요 없는 대중교통 요금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경증은 거의 혜택이 없어요. 보행장애로 장애등급 신청하는 사람한테 지하철 무료 이용 혜택은 너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서 발급한 보행장애 소견서만큼 정확한 근거 자료가 없을 텐데, 이런 숫자로만 따진다면 75% 이상은 90%도 포함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생물학적 장애에서 사회적 장애로

당사자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 대해 면밀한 평가가 더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CF)는 장애를 생물학적 장애에서 사회와의 상호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장애로 그 무게중심을 옮기도록 했다. 독일은 장애 자체의 손상보다는 개인 주위의 환경적 맥락, 일상생활이나 사회참여 제약을 고려해 장애 여부를 판정한다.1 김재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의료적 기준을 참고자료로 보되 장애인의 복지서비스 욕구를 주요하게 살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돼 있다.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행정편의적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장애 당사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판단해 심사할 수밖에 없고, 각 장애 판단 기준은 오랜 기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는 게 보건복지부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 개별적으로 편차가 클 수 있다. 개별 사례는 안타까워도 정부 입장에서는 하나의 제도를 운영하다보니 그나마 합리적인 중간값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는 투렛증후군 이건희씨 등 사례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계획이다.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는 “기존 판단 기준을 그대로 둔 채, 그 기준에 따라 새로운 질병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다보니 실제 당사자가 겪는 제약이나 어려움이 반영되지 않는다. 장애 당사자가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정책이 설계, 실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1. ‘장애인복지법 제도권 밖 소수자의 복지욕구에 관한 연구: 배제에서 포용으로’, 한국장애인개발원,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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