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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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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판에서 저는 고통을 마주합니다

인권위에 진정 낸 ‘비건’ 청소년이 직접 쓴 ‘채식 급식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21-06-12 11:00 수정 2021-06-13 01:29
2021년 6월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채식급식시민연대가 ‘학교에서 채식 급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진정을 낸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채식급식시민연대가 ‘학교에서 채식 급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진정을 낸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4일 채식급식시민연대가 ‘학교에서도 채식 급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울산과 인천 등의 일부 학교에서는 최근 채식 급식을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채식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인권위는 2012년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채식주의자에게 채식 선택권을 주지 않는 것이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고 결정했다. 국방부도 2021년부터 채식주의자 병사를 위한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기로 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낸 청소년이 보내온 ‘채식 급식이 필요한 이유’를 싣는다. -편집자

2020년 1월, 저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를 보고 채식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더 게임 체인저스>는 채식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다뤘습니다. 저는 건강 외에 채식의 다른 장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다룬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라시>와 비건 입문서 <아무튼, 비건>, 동물권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담긴 책 <동물주의 선언> 등을 접하며 육식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삼겹살이 아닌 돼지가 보여요

작은 케이지(우리)에 불안하게 서서 ‘알 생산’을 착취당하는 닭, 10개월 주기로 임신당하며 우유를 생산해야 하는 소,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좁고 더러운 환경에서 빠르게 비대해지는 돼지. 그렇게 끝까지 재생산용으로 소모되다 가치가 떨어지면 처분돼 ‘고기’가 되는 동물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을 마주하고, 그렇게 저는 비건이 됐습니다. 한순간에 수많은 생명의 죽음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것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결과물이 아닌 죽기 이전의 존재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삼겹살이 아닌 돼지, 달걀이 아닌 닭, 우유가 아닌 소가 보였습니다. 이제는 음식을 보며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의식의 변화와 함께 고난도 찾아왔습니다. 매달 학교 급식 식단표를 받으며 멀어졌던 많은 것과 다시 마주했습니다. 학교 급식은 구조화된 시스템 아래 있습니다. 밥 또는 면, 국, 김치, 반찬 2개가 급식판에 오릅니다.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동물은 끊임없이 죽어갑니다. 국과 김치에 물살이(물고기)가, 대부분의 반찬에 돼지나 소나 닭이 있습니다. 육류를 빼고 남은 것은 밥과 늘 비치된 김 그리고 가끔 제공하는 채소와 과일입니다. 즐겁고 고마워야 할 식사 자리에서 돼지의 죽음을, 소와 닭이 품어야 할 것을, 학살당한 물살이를 만났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비건이 되기로 했는데도, 급식 때마다 죽음을 가까이서 느껴야 했습니다.

멀어지는 것은 관계였습니다. 누구와도 ‘다른’ 식판이 주는 은근한 불편함은 학교 안에서 암묵적인 배척의 명분이 됐습니다. 혼자인 것에는 익숙하지만 다수의 무의식이 자아낸 차가운 분위기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습니다. 시스템 속에 비건 청소년의 존재는 ‘지워’졌습니다. 늘 홀로 급식을 먹고, 함께 먹더라도 진심으로 함께하지 못하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때론 굶어가며 급식으로부터 지워짐과 동시에 자신에게서 급식을 지우기도 합니다.

급식 대신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그러나 지워지는 것과는 반대로 그 존재가 강조되며, 비건 청소년은 또 자신을 스스로 ‘지워’나가는 모순된 상황에 부닥치기도 합니다. 주변의 관심은 때로 그들도 모르게 비건 청소년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악의적인 공격도 괴롭지만, 의식하지 않은 건 저를 더욱더 괴롭게 했습니다. 제거식(육류를 제거한 식단)이 준비될 때마다 근심을 놓지 못하고 노심초사합니다. 상대의 선의와 배려가 담긴 음식을 받으며 고마워하면서도 죄송해지고 자책하며 자신을 지워갑니다. 제거식 짜글이에 들어간 스팸 조각을 보며, 제거식 황탯국에 들어간 황태 조각을 보며 ‘(채식 급식에)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순간 상대에게 품은 부정적인 마음에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급식에 지쳐서 바깥으로 나서면, 더 큰 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음식점에서 마주하는 ‘별종’ 취급, 놓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한 걱정은 급식실의 고난을 그대로 상기시킵니다. 결국 편의점의 감자칩과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맙니다. 이런 일상에는 익숙해지지만 비어가는 통장과 나빠지는 건강에는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배고픔에 과자를 먹고 부족함에 다시 과자로 돌아가는 악순환은 급식이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조금씩 굳어져갑니다. 시스템은 비건 청소년을 조금씩 절망의 수렁에 밀어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채식 급식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채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채식의 긍정적인 힘을 되찾고 비건 학생의 양심의 자유,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나섰습니다. 채식 급식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능동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육식으로부터 오는 환경 파괴를 막아 망가져가는 자연이 회복의 힘을 되찾게 도울 수 있습니다. 생태계를 보전하여 멸종해가는 생명에게 앞으로의 삶을 남겨줄 수 있습니다. ‘고기’를 위해 동물이 소비하는 식량을 어디선가 굶주림에 죽어가는 생명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더는 비건 청소년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연이 신음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때

학교는 수동적인 교육이 아닌 능동적인 교육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연대를 기반으로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채식 급식은 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비건 청소년의 권리를 되찾는 것부터, 더 나아가 학교에서 급식이라는 일상을 통해 주체성과 연대를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존재에게 무해한 급식이 주어지길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비건 청소년의 권리 보장임과 동시에 공동체를 위한 투자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자연에 우리가 져야 할 의무입니다.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입니다. 비건 청소년이 외치는 소리에, 자연이 신음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채식 급식이 실현될 때까지, 더는 비건 청소년이 시스템의 절망 속에 살아가지 않을 날까지 노력하겠습니다. 긍정적인 관심과 연대로 함께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이승주 비건(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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