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자연환경조사 최종보고서가 임의로 수정돼 부산시 누리집에 공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신공항 예정지 가덕도가 속한 서부산권역 자연생태계 조사 보고서다. 2021년 4월19일 부산시가 누리집에 공개한 ‘제2차 부산자연환경조사 서부산권역’ 최종보고서 피디에프(PDF) 파일(이하 ‘파일본’)을 보면, 2016년 5월 발간한 최종보고서 단행본(이하 ‘단행본’)에서 가덕도 생태계 가치를 높게 평가한 부분이 최소 10곳 이상 수정·삭제됐다. 부산시는 <한겨레21>이 취재를 시작하자 다음날(4월20일) 기존 파일을 누리집에서 삭제하고 최종보고서와 동일한 파일을 재등록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시 공식 보고서를 임의로 수정하도록 지시했는지 관심이 쏠린다.
부산자연환경조사는 부산시가 자연보전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10년마다 실시한다. 가장 최근 조사는 2013~2015년 부산연구원(옛 부산발전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2014년 4월 부산 동부산권역 보고서, 2015년 4월 부산 중부산권역 보고서, 2016년 5월 부산 서부산권역 보고서가 나왔다. 그중 서부산권역 보고서는 2015년 5월7일~2016년 5월6일 가덕도를 포함한 강서구, 사하구 등 자연환경을 조사한 내용이다. 3개 권역 전체 조사에 세금(연구용역비) 약 9억원, 서부산권역 조사에만 약 2억7700만원을 들였다.
두 최종보고서(단행본과 파일본)를 비교하면 표지부터 마지막 쪽 연구진 명단까지 목차, 형식,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단행본에서 가덕도 생태계 가치를 높게 평가한 문장, 문단, 절이 파일본에선 수정·삭제됐다. 그 내용은 크게 3가지다.
첫째,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대흥란 서식지를 ‘가덕도 어음포골 계곡 주변’에서 ‘서부산권역’으로 수정했다. 두 보고서를 비교하면 총 3곳에서 수정한 내용이 발견된다(단행본 기준 59쪽, 61쪽, 66쪽). 예를 들어 ‘또 다른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2급인 대흥란이 어음포골 계곡 주변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단행본 제3장 자연환경조사 제2절 식물상 59쪽)를 ‘또 다른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2급인 대흥란이 서부산권역에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파일본 제3장 자연환경조사 제2절 식물상 59쪽)로 고쳤다. 단행본 같은 절 ‘낙동강권역에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인 가시연꽃이 서식하고 있었다’는 문장이 파일본에 그대로 실린 점과 대조적이다. 단행본 61쪽 ‘가덕도 권역에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등급인 대흥란이 서식하고 있었다. (…) 가덕도 권역은 서부산권역에서 가장 (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또한 보호종 및 희귀종도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는 문단은 파일본에서 아예 삭제됐다.
둘째, 상록활엽수 주요 군락지를 ‘가덕도와 바닷가 산지’에서 ‘바닷가 산지’로 수정하고 가덕도 산림식생의 우수성을 언급한 내용을 삭제했다. 총 4곳에서 발견된다(단행본 기준 64쪽, 65쪽, 66쪽, 73쪽). 예를 들어 ‘서부산권역에서 상록활엽수종의 분포를 살펴보면, 가덕도와 바닷가 산지에 상록활엽수의 종류와 피도가 높은 경향을 나타내었다. 또한 서식하고 있는 상록활엽수종은 대부분 아교목이거나 관목이었으며, 교목성 수종인 후박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등은 대부분 가덕도에 일부 분포하고 있었다’(단행본 제3장 자연환경조사 제2절 식물상 66쪽)을 ‘서부산권역에서 상록활엽수종의 분포를 살펴보면, 바닷가 산지에 상록활엽수의 종류와 피도가 높은 경향을 나타내었다. 또한 서식하고 있는 상록활엽수종은 대부분 아교목이거나 관목이었다’(파일본 제3장 자연환경조사 제2절 식물상 64쪽)로 수정·삭제했다. 또 ‘(가덕도는) 서부산권역의 타 권역보다 우수한 산림식생을 보이고 있었다’(단행본 제3장 자연환경조사 제3절 식생 73쪽)는 구절을 파일본에서 삭제했다.
셋째, 가덕도의 우수한 생태계를 설명한 절과 소절을 통째로 삭제했다. 총 3곳에서 발견된다(단행본 기준 325~339쪽, 414~417쪽, 430쪽). 단행본 ‘제3장 자연환경조사 제12절 우수생태계’ 총 15쪽 분량이 파일본에서 사라졌다. 해당 부분은 서부산권역 우수생태계 지역 4곳을 소개하는데, 그중 3곳이 가덕도 권역(가덕도 어음포 계곡, 가덕도 국수봉 지역, 가덕도 동백나무군락)이다. 예를 들어 ‘가덕도 국수봉 지역’에 대해 ‘인위적 피해가 상대적으로 작아 부산 해안림의 극상을 볼 수 있는 안정적이고 양호한 식물군집 구조의 특성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한다. 단행본 ‘제5장 제1절 종합결과 12. 우수생태계’와 같은 장 ‘제2절 평가 및 제언 12. 우수생태계’도 파일본에선 빠졌다. 가덕도 우수생태계를 포함해 부산 전역에 있는 우수생태계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종합 정리한 부분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4월19일 “누리집에 등록된 보고서 파일이 최종본과 일부 문구가 다르거나 일부 내용이 누락된 점을 확인했다”며 “그 출처와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당시 연구용역을 맡은 부산연구원에서 최종본 파일 원본을 다시 전달받아, 다음날인 4월20일 누리집에 새로 등록했다.
연구진 “최종보고서 이후 추가 수정 하지 않아”당시 조사에 참여한 연구진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연구 책임을 진 부산연구원 여운상 연구위원은 “부산시 누리집에 어떤 파일이 올라갔는지 모르겠지만 2016년 5월 최종보고서 발간 이후 추가 수정 작업을 한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서부산권역을 포함해 부산 전역 ‘식생’ 연구를 맡은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이미 출판한 보고서를 연구진에 사전 문의도 없이 임의로 고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자체 자연환경조사 보고서는 환경영향평가 등에 근거 자료로 인용되는데, 수정한 내용을 볼 때 다분히 의도적인 조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위법 논란도 제기된다. 정명희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아직도 건설사업을 위해 공식 환경조사 결과를 맘대로 누락하고 조작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게 현실”이라며 “누구의 지시로 수정했는지 밝혀내고 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장인 최재홍 변호사는 “임의로 지자체 공식 보고서 파일을 조작했다면 공전자기록 위작·변작 혐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법에선 ‘사무처리를 그르치게 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전자기록 등 특수 매체 기록을 위작 또는 변작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자체는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자연환경조사 계획과 결과를 환경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부산시가 2014년과 2015년 각각 부산 동부산권역과 부산 중부산권역 자연환경조사 보고서를 별송(우편배송)한 기록은 있는데 (2016년 발간한) 부산 서부산권역 자연환경조사 보고서는 별송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최종보고서 원본은 환경부에 제출하지 않고, 임의로 수정한 파일본만 부산시 누리집에 공개해온 것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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