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엔 한국이 해마다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일어난 사고로 숨지는 끔찍한 ‘산재 공화국’의 오명을 벗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노동계가 지난 10여 년 꾸준히 도입을 추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20년 12월21일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 “중대재해법은 국민의힘을 포함해 여야 모두 입법을 약속했다. 야당에 상임위와 본회의 등 임시회 의사일정 협의를 정중하게 제안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중대재해법 입법을 촉구하며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11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제안에 즉각 응답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21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관련 법 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주 원내대표는 다음날인 12월22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이른 시일 내에 해당 상임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려 이 문제를 헌법 체계 적합성에 맞게 논의할 수 있도록 논의 테이블에 민주당이 참여하기를 요청한다”고 화답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상대방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하는 공세적 태도를 취했으나, 2021년 1월8일 끝나는 임시국회 회기 안에 중대재해법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는 비슷하게 밝혔다.
관건은 앞으로 국회 법사위 차원에서 논의할 법안의 내용이다. 쟁점이 수두룩하다. 이 법을 둘러싼 첫 번째 쟁점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는 등 중대재해가 일어난 때 해당 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 포괄적 책임을 물어 무거운 처벌을 하는 게 현행 법체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강은미 원내대표의 발의 뒤 이어진 박주민·이탄희·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물론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별도 발의안 모두 포괄적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벌 수위도 만만찮다. 강은미 원내대표 안은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천만∼10억원 벌금’, 박주민 의원 안은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 벌금’이고, 임이자 의원 안은 ‘5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가장 높다.
경영책임자한테 포괄적 책임을 묻는 내용은 주 원내대표가 12월22일 원내대책회의 자리에서 “법조문에는 과잉 입법도 있고 책임 원칙에 반하는 규정도 있어서 여러 손볼 규정이 있다”고 지적한 대목에 해당한다.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도 “현행 형법 체계는 처벌에서 고의성을 중요하게 보는데, 중대재해법은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범을 더 세게 처벌한다는 점에서 법리적인 난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 법이 도입돼도 추후 사용자 쪽이 헌법소원을 내면 헌법재판소에서 쉽사리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년 징역 하한이 가혹하다고?이 법 도입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사용자 단체들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미 시행 중인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도 대표를 7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데, 금번에 발의된 법안들은 과실범임에도 불구하고 최소 2년에서 5년까지 징역 하한을 두고 있다. 이는 6개월 이하 징역형인 미국·일본보다 높고, 특히 중대재해법의 모태인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에서 사업주 처벌이 아닌 법인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과 비교해도 너무 가혹하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중대재해법의 근본을 흔들어 무용지물로 만드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산업재해를 규율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음에도 특별법에 해당하는 경영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법을 새로 도입하자는 여론이 10여 년간 끓어오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근절하려면 사고 발생 때 현장 실무자가 아니라 실제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도 책임지지 않는 한 중대재해를 막기 힘들다. 국회가 그 책임을 피해가려는 사용자 단체 쪽 논리를 반복하면 사실상 중대재해법을 도입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그 논리는 이미 19대 국회 때 노회찬 의원이 관련 법안을 처음 내놓았을 때 정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쟁점 사안이다. 이는 중대재해 사고가 일어났을 때 경영책임자 등의 직접적 책임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사고 이전에 세 차례 이상 법 위반 사실이 있거나 해당 사고 증거 인멸에 나서는 등의 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 경영책임자가 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한 결과로 산재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는 개념이다. 주 원내대표는 이 또한 형사법의 ‘자기 책임 원칙’에 어긋나는 조항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박주민 의원 안에 포함된 해당 조항이 논란거리로 떠오른 뒤인 12월14일, 법사위원인 박범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선 해당 대목을 삭제했다.
이 밖에 중대재해 때 안전관리와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과 해당 기업에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조항도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각 당의 말을 종합해보면, 50명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유예할지, 다중이용시설 가운데 피시방이나 노래방 등 영세한 업소에도 이 법을 적용할지 등도 논의 대상이다.
<한겨레21>이 중대재해법 제정을 심의할 법사위원들을 대상(18명 조사, 4명 응답)으로 의견을 물어보니, 김남국·박주민·신동근 민주당 의원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모두 법 도입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쟁점 가운데 기업의 경영책임자와 법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문제와,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 원청 사용자도 함께 처벌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신동근 의원은 공무원 처벌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처벌 대상 공무원 범위가 너무 넓어서 입법 과정에서 조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경영책임자에 대한 벌금의 경우도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이어 한국도 중대재해 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갖춤으로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산재사망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2021년 1월 국회가 내놓는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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