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여성들의 ‘미투’를 지원하는 변호사가 ‘미투’를 했다. 8월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안건심사 관계인으로 출석한 전수미(38·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사진) 변호사는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해오다가 탈북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뒤 탈북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후 진술 과정에서 같은 피해 사실을 두 번 더 언급했다. 전 변호사가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국회 외통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이 “그런 조건에도 오늘 출석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한 것을 빼곤 20여 명 여야 의원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날 외통위 회의는 대북전단 이슈에 집중됐다. 반면 언론 반응은 뜨거웠다. 외통위 회의가 있은 지 2~3일 뒤부터 ‘탈북 여성 성폭행 피해, 당신 탓이 아니다’ 등 전 변호사의 메시지가 담긴 인터뷰 기사가 이어졌다.
전 변호사는 국군정보사령부 군인 2명이 북한이탈여성을 성폭행한 혐의(제1318호 표지이야기)로 8월31일 기소된 사건(37쪽 상자기사 참조)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7월 말에는 또 다른 북한이탈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현직 경찰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성범죄를 당한 북한이탈여성들을 돕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국회에서의 발언 이후 2주쯤 지나 전 변호사가 <한겨레21>에 칼럼을 싣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칼럼 제목은 ‘당신의 말 한마디, 자살에 대하여’였다. 그가 미투 이후 받은 다양한 반응 중 비수처럼 꽂힌 말과 자신이 경험한 자살 충동, 그리고 미투 배경 등을 다룬 글이었다. <한겨레21>은 A4용지 한 장 남짓한 그의 글로는 그의 뜻을 다 담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전 변호사와 협의해 인터뷰했다. 9월2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전 변호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정은주 편집장이 동행했다.
‘공감’ 통한 ‘위로’ 상담 과정에서 밝혀와
미투 이후 후폭풍은 거셌다. 전 변호사는 성폭행 피해 당시의 상황을 ‘재경험’(플래시백)하는 고통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하루하루 지인들로부터 ‘힘내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살이처럼 버티는 일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가지 ‘말’이 전 변호사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하나는 전 변호사의 남편 지인들이 남편에게 ‘너 알고 있었어? 괜찮아? (전 변호사가) 결혼 전에 너한테 얘기했어?’ 등 남편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그런 일을 당한 여자를 아내로 둔 남편’을 안쓰럽게 보는 시선으로 느껴져 몹시 충격받았어요.” 또 다른 ‘말’은 전 변호사의 지인에게서 날아들었다. “방송 봤는데 왜 그렇게 대책 없이 용감해요?” 그는 말하며 몇 차례나 거듭 웃었다고 한다. 전 변호사는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걸 직접 경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독’이 담긴 반응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양육하며 살고 있다는 한 북한이탈여성이 전화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 전화를 받고 울었어요. 이런 분들 덕분에 지칠 수가 없죠.”
2014년 변호사가 된 그는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상담할 때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자연스레 털어놨다. ‘공감’을 통한 ‘위로’였다. “‘나도 당신처럼 피해를 당한 적 있어요.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시죠. 나도 잘 알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피해자들이 힘을 많이 얻더라고요.”
전 변호사는 국회에서 미투를 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상담하면서 개인적으로 나눴던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제가 만나지 못했지만 끙끙 앓고 있을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아쉬웠다. “제가 피해 사실을 얘기하면 국회의원들이 북한이탈여성들의 피해 실상에 대해 연계해 질문해줄 것을 기대했거든요. 그런 질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전 변호사가 자신의 미투를 통해 북한이탈여성의 인권 문제가 조명되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다.
북한인권활동가 시절부터 따지면 20년 가까이, 변호사로서는 7년째 북한이탈여성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 그는,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많다고 했다. “낯선 남한 땅에서 성폭행 피해 북한이탈여성은 움츠리고 있다가 때때로 공격성이 발현되기도 해요. 그래서 성폭력 피해 북한이탈여성을 만날 때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를 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많은 변호사가 북한이탈여성들을 돕다가 지원을 중단하는 이유다.
“왜 북한에는 관심이 없어”라는 질문에
쉽지 않은 길을 걷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 변호사는 2000년대 초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기말고사 즈음 친구가 힘들다며 만나자고 연락했다. 무슨 일인지 몰랐던 그는 시험 끝나고 보자며 거절했다. 그리고 친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친구가 가정 내 성폭력에 시달렸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그는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무작정 한국을 탈출했다.
홀로 간 인도 갠지스강을 끼고 있는 바라나시에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그는 조금씩 마음을 추슬렀다. “갠지스강은 하늘과 이어지는 강이라서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 띄우면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가닿을 것”이라는 말에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외교관을 지망했던 그의 꿈도 변했다. “‘아이들이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내 친구는 그런 일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런 일이 더는 없으면 좋겠다, 내가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때부터 생겨났어요.”
이후 동남아시아 메콩강 유역 비정부기구(NGO)에서 자원활동에 나섰다. 팔려가는 아이들을 구출하는 일이었다. 메콩강 유역에서 12~15살 여자아이들이 한국돈 500원에 홍등가로 팔려갔다. “깡패들이 아이들을 관리하는데 이들에게 돈을 주는 방식 등으로 협상해서 아이를 구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 함께 활동하던 영국인 친구가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왜 한국 사람들은 동남아에서는 자원활동을 많이 하면서, 바로 코앞에 있는 북한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어?” 그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1년 가까운 동남아 자원활동을 매듭짓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대학에 다니며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북한이탈주민 단체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비서가 출범시킨 북한민주화위원회, 북한전략센터 등에서 활동했다. 전 변호사는 이 단체들에서 중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행을 돕는 일을 했다. 또 북한인권실태 보고서를 영문으로 작성하고 국외 인권기관이나 등 외신과의 업무 연락을 맡았다.
가해자는 돌아다니고 피해자는 도망 다니고
전 변호사가 국회 외통위에서 증언한 것처럼 북한인권단체들은 미국 싱크탱크 전미민주주의기금(NED)의 지원금을 유흥업소에서 유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평생 트라우마가 남을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술 취한 북한이탈남성이 유흥업소 화장실에서 전 변호사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가해자는 단체 직원은 아니었지만 단체와 함께 일하며 자주 얼굴을 보는 사람이었다. “무서워서” 가해자에게는 직접 항의하지 못했고, 단체 관계자에게 “용기 내어” 문제를 제기했다. 그 관계자는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사건이 알려지면 후원금이 끊겨 단체가 사라지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게 된다”며 사건을 덮어줄 것을 요구했다. 20대 중반 ‘순진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후에도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모임에 나오니까 미치겠더라고요. 가해자가 나타나면 밥 먹다가도 뛰쳐나가고, 그렇게 저만 도망 다녔어요.”
자살 시도도 있었다. 친구의 죽음과 본인의 성폭행 피해 직후로 두 차례였다. “고통의 기억이 알이 되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어요. 고통이 너무 크니까 당장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 방법이 죽음이라고 해도.” 힘든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은 성폭행 피해를 본 북한이탈여성들이 겪는 자살 충동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표현하고 싶어서다.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여성가족부, 2017) 보고서를 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북한이탈여성의 자살 생각에 대한 응답을 분석한 결과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거나 죽었으면 하고 바란 경우’가 50% 넘는다. 또한 ‘자살을 시도한 경우’가 21.7%, ‘자살을 계획해본 경우’가 13.3% 등으로 나타났다.
북한인권단체에서 성범죄 피해와 북한인권활동의 회의감 등이 중첩되면서 ‘활동가 전수미’는 ‘변호사 전수미’로 변신하기로 결심했다.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두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정착보다 ‘북한인권’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북한이탈주민이 도움을 청해도 변호사에게 연락해보라고 넘기기 일쑤였죠. 변호사들은 바쁘거나 연락이 안 되거나 하는 식이고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내가 변호사가 돼서 (북한이탈주민에게) 필요한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던 거죠.” 그는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고 2014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피해자 잘못’이라는 잘못된 전제
전 변호사는 지난 7년 동안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 등 여러 곳에서 법률 상담과 강의를 했다. 성폭력·사기 등 남한에서 겪는 북한이탈주민의 피해와 관련한 지원활동도 한다.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공감’에서 출발한다. 여성, 성폭력 피해, 자살 시도, 친구의 죽음 등 약자와 상처받은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북한이탈여성 피해자들과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성폭행은 폭행이다. 피해자가 폭행당한 사실을 밝히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성폭행 피해를 당한 사실을 밝히는 일(미투)이 “대책 없이 용감한 일”이 되는 것은 ‘성폭행은 피해자의 잘못’이라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 아닐까. 미투 이후 고통스러운 후폭풍을 견디고 있지만 전 변호사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처럼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없도록 한 번이라도 손을 더 잡는 게 제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북한이탈여성 한명 한명을 먼저 떠나보낸 친구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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