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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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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기저질환자 못 지키면 ‘K방역’ 무너진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인터뷰
수도권 코로나19 중증환자 늘어 병상 확보 비상
등록 2020-06-20 14:41 수정 2020-06-21 08:45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 사는 수도권에서 ‘감염경로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히 퍼져가던 바이러스가 60살 이상 고령, 고혈압·당뇨·치매·정신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등을 앓는 건강 취약층을 덮치면 인명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6월17일 브리핑에서 “수도권 확산세를 꺾고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자료를 보면, 5월31일부터 6월13일까지 2주간 서울·경기·인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환자는 하루 평균 36.5명으로, 이전 2주간(5월17~30일) 하루 평균 20.4명에 견줘 대폭 늘었다. 6월1일에서 15일 0시까지 발생한 환자 618명 가운데 감염경로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63명(10.2%)이었다. 그중 80% 이상은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60살 이상 환자가 늘면서 코로나19 중증·위중환자도 6월3일 8명에서 6월17일 25명으로 껑충 뛰었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스스로 호흡할 수 있지만 폐렴 등의 증상으로 산소 공급 치료를 받는 환자는 중증으로, 인공호흡기 등 기계 호흡을 하는 환자는 위중으로 분류한다.

코로나19 국내 사망자 현황 *6월4일 사망자 273명 기준

코로나19 국내 사망자 현황 *6월4일 사망자 273명 기준


고령 환자 늘면서 중증환자 급증

중증·위중환자를 치료할 병상은 충분할까? 6월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를 보면, 수도권에서 코로나19 중증환자 21명(6월15일 기준)이 치료받고 있으며 사용 가능한 치료병상은 47개에 그친다.

지난 3월, 임승관(사진)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이자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밤낮없이 중증환자 치료병상 확보에 매달렸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환자 급증 추세가 둔화할 무렵인 3월5일 분당제생병원(43명 확진·3명 사망)을 시작으로 3월19일 군포 효사랑요양원(27명 확진·7명 사망), 3월30일 의정부성모병원(50명 확진·5명 사망) 집단감염이 잇달아 발생한 탓이다. 당시 임 단장과 경기도가 확보한 중증환자 치료병상은 34개였으나 금세 동났다. 중증환자 2명은 결국 다른 지방자치단체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 이러한 위기를 맞닥뜨려본 임승관 단장에게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확산한다면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할지 묻고 싶었다. 6월15일 경기도 안성병원에서 만난 임 단장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자체가 코로나19 재난의 전반전도 치르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대구·경북 지역처럼 대규모 유행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3월 경기도 중증환자 치료병상이 부족해진 이유는 뭔가.

“경기도에선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약 2.5%가 중환자실로 갔다. 환자가 1천 명 조금 넘게 나왔으니 30병상가량을 확보하면 중증환자 치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병원·요양원 집단감염이 며칠 간격을 두고 연이어 발생하니 2.5%라는 숫자가 무의미해졌다. 집단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병상이 10개씩 사라지는 거다. 이런 일을 겪어본 지자체는 대구·경북을 제외하면 경기도밖에 없다. 중증환자 치료병상이 부족해 다른 지자체로 환자를 보내거나 노인요양시설 집단감염을 겪지 않았다면 아직 코로나19를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것이다.”

병상 수가 빠듯하면 입원치료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경미한 증상인 80대 환자의 경우 대학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500병상 이상 규모)에선 아직 중증이 아니라며, 받기 어렵다 한다. 반면 규모가 작은 공공병원에선 중증이 될 위험이 너무 커 진료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일단 공공병원이 환자를 받고, 증상이 악화되면 긴급대책단이 병원을 옮기는 걸 책임지기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중증환자 치료병상이 모두 찼을 땐, 중증에서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와 경증에서 증상이 악화한 환자의 병상을 맞바꾸기도 했다. 미리 각 병원 의료진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실시간으로 소통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비어 있는 중환자실에 감염 차단 설비를 설치하고 의료장비를 보강해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병상 15개를 마련했다. 6월15일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이자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중증환자 치료병상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비어 있는 중환자실에 감염 차단 설비를 설치하고 의료장비를 보강해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병상 15개를 마련했다. 6월15일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이자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중증환자 치료병상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민간 중심 의료체계 탓에 병상 태부족

6월17일 오후 경기도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병상은 19개로, 2개 병상만 비어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성남시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 확보할 수 있는 병상은 많아야 10개다. 민간 상급종합병원에 중증환자 치료를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감염병인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려면 평소보다 더 많은 인력과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민간병원으로선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수록 손해가 난다. 중증환자 치료병상을 늘리는 데 한계에 부닥치자 최근 안성병원은 경기도 지원을 받아 중환자실(ICU)에 감염 차단 설비를 설치하고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장비를 구비했다. 그렇게 중증환자 치료병상 15개를 마련했다. 올해 2월 코로나19 환자만 치료하는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안성병원은 중환자실을 비워뒀지만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없다. 이러한 까닭에 정부와 경기도에 전문의와 경력 간호사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빈 공공병원 병실을 활용해 군의관, 민간병원 의사 등이 협력하면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 자원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게 임승관 단장의 생각이다.

안성병원에선 왜 중증환자 치료를 못하나.

“중환자를 진료하려면 여러 과목 전문의가 고르게 있어야 한다. 적어도 500병상 이상 돼야 다양한 분야 전문의를 채용할 여력이 생기고, 의료진이 환자를 계속 치료하면서 경험이 쌓일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의료원 가운데 300병상 넘는 데가 몇 군데 없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공공병원 5곳 가운데 안성병원이 249병상(허가 기준)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이번에 마련한 병상에선 어느 정도 중증 증상을 치료할 수 있나.

“에크모(심장이나 폐 기능을 상실한 환자의 심폐 기능 유지를 돕는 기계) 치료를 하려면 고도로 훈련된 의료진이 필요한데 그 정도 치료는 어렵다. (중증환자가 급증하면) 병상이 부족해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숨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야전형 중환자실’이다.”

인명 피해 최소화 위해 가장 중요한 것

감염내과 전문의인 임승관 단장은 2008년부터 아주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2018년 안성병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할 때 경기도 감염병 대응책 마련에 민간 전문가로 참여했다. 의료자원이 대부분 민간에 있는 상황에선 지자체와 공공·민간병원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시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임 단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요양병원·노인요양시설 등에 있는, 나이가 많고 아픈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사망자 273명(6월4일 기준) 가운데 94명(34.4%)은 요양병원과 노인요양시설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한다. 2020년 1분기 기준 전국 요양병원 수는 1584개로, 경기도 352개를 비롯해 수도권에 모두 547개(35%)가 있다. 2018년 기준 노인요양시설은 전국 3389개로 경기도에만 1101개(32%)가 밀집해 있다.

노인이나 아픈 사람을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왜 방역 대책에서 중요한가.

“코로나19는 병약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비정한 바이러스다. 이런 취약층을 보호하지 못하면 생명에 위협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정된 병상 자원이 줄어드는 요인이 된다. 집단감염이 이어지면 아무리 병상을 공급해도 수요를 따라갈 수 없고 결국 병원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중증환자가 생길 수 있다.”

요양병원·노인요양시설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곳에 장기간 머무는 어르신보단 출퇴근하는 돌봄노동자를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역 요양병원·노인요양시설 직원을 대상으로 1~2주에 한 번씩 정기 진단검사해 발병 여부를 확인하는 전략도 가치가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의심 증상이 있으면 출근하지 않도록 하고 그만큼 지원하는 것이다. 증상이 나타난 상태에서 접촉 기간이 길면 집단유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기도 광주 행복한요양원의 경우 초발환자인 요양보호사가 1개층 어르신만 돌봐 접촉자가 적은 편이었다.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시설 기준을 높이는 등 돌봄의 질을 개선해야 집단감염을 줄일 수 있다.”

2차 대유행 대비할 방법 찾아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재생산지수(환자 1명이 전파 가능 기간에 직접 감염시키는 사람 수)가 2.5라고 했을 때, 국내 인구 60%에게 면역이 생겨야만 감염병 유행이 잦아들 거라고 전망한다. 면역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예방접종을 꼽지만, 백신 개발엔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이란 예측과 더불어 적정한 백신이 나올지도 불확실하다. 코로나19 재난이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서 임 단장은 스페인·미국 등 다른 나라가 겪은 유행 상황을 분석하고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케이(K)방역을 통해 대구·경북 유행을 조정해봤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일이 너무나 많다. K방역은 대규모 물량과 인원을 투입해 환자를 찾는 게 특징이다. 효율보다 효과를 고려한 방식인데,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것보다) 10~20배 큰 유행이 발생하면 과거의 정답이, 미래의 오답이 될 수도 있다.”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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