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이마트가 4900원짜리 와인을 내놓은 뒤, 롯데마트(4800원)와 홈플러스(4990원)까지 최근 초저가 와인 전쟁에 뛰어들었다. 와인 하면 비싼 주류로 인식돼 1만~2만원대 와인 중에서 잘 고른, 맛 좋은 와인을 ‘가성비 와인’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수입 맥주 두 캔 가격(5천원)보다 저렴한 와인이라면? 5천원도 안 되는 값싼 와인이 ‘가성비 와인’이 될 수 있을까? 그중 가장 맛있는 와인은 무엇일까?
칠레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이마트가 제공한 통계를 보면, 도스코파스 카베르네 소비뇽과 레드블렌드 2종은 5월 현재까지 누적 160만 병이 팔렸다. 4월 출시된 화이트와인 ‘도스코파스 샤도네이’도 출시 2주 만에 5만 병이 판매됐다. 이마트에 이어 롯데마트도 지난해 12월, 4800원짜리 레드와인 ‘나투아’ 2종을 내놓았고 현재까지 누적 14만 병이 나갔다. 초저가 와인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홈플러스도 3월 4990원짜리 와인 ‘체어맨’과 5월 초 ‘카퍼릿지’를 연이어 선보였다.
이전에도 1만원이 안 되는 저가 와인은 존재했다. 홈플러스의 ‘빈야드’(5900원), 이마트의 ‘G7’(6900원), 롯데마트의 ‘L’(6900원) 등이다. 이 와인들도 꾸준한 인기를 얻긴 했지만, 와인 가격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완전히 낮추진 못했다. 오히려 ‘와인 가격이 질을 담보한다’는 생각에 거부감을 갖는 소비자도 많았다. 그러나 ‘수입 맥주 두 캔 가격’ ‘1만원에 와인 두 병’이라는 가격이 책정되자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5천원도 안 되는 파격적인 와인 가격 책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와인 수입 단계에서 대량 주문한 것이 비결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와인을 수입할 때 구매하는 물량은 3천 병 정도지만, 이마트는 첫 계약부터 100만 병의 압도적 물량을 샀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도 “이마트보다는 적은 물량이지만, 대량 주문을 보장해 원가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에게 가장 인지도 높은 와인 생산지는 칠레, 인기 있는 포도 품종이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점을 초저가 와인을 선정할 때 고려했다. ‘가성비 와인은 칠레 카소’라는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도스코파스·나투아·체어맨·카퍼릿지 시리즈에 모두 카베르네 소비뇽이 포함됐고, 특히 도스코파스와 나투아는 칠레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가격이 심리적인 벽으로 작용
롯데마트는 칠레에서도 유명한 와이너리인 몽그라스를 선택했다. 칠레 남부의 콜차과 밸리를 터전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국내에서도 ‘가성비 와인’으로 인지도가 있다. 특히 콜차과 밸리는 ‘칠레의 내파밸리’로 불리는 곳으로, 카베르네 소비뇽이 유명하다. 반면 이마트는 새로운 산지를 개발하는 전략을 썼다. 이마트 관계자는 “칠레의 유명 산지는 남부에 집중됐지만, 인지도가 낮은 대신 포도 생산량이 많은 북쪽 아타카마사막 쪽을 새로 개발해 단가를 낮췄다”고 말했다.
또 와인 선정 기준에는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와 출시 시점도 포함됐다.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출시됐기에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레드와인에 초저가 와인이 집중됐다.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4월 중순에 이마트가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도스코파스’ 화이트와인을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저가 열풍이 계속된다면 와인이 대중적인 술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와인 전문 블로거('촉촉한 와인' 운영자) ‘주니니님’은 “비싼 가격, 초보자가 구분하기 힘든 할인 가격 등이 소비자의 와인 구매에 심리적인 벽으로 작용했다. 초저가 와인은 품질이 괜찮은데다 가격 부담이 적어 쉽게 살 수 있어 인기가 높아졌다. 다만 4천원대 와인에서 4만원대 와인의 품질을 기대하면 안 된다. 1만원대 와인을 4천원대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샤도네이 “잔디밭 와인으로 적절”
<한겨레21>은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초저가 와인 5종을 모아 지난 5월5일 서울의 한 한식 주점에서 시음회를 열었다. 와인을 마셔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와린이’(박정령), 위스키를 좋아하는 술 블로거(김하경), 주종을 가리지 않는 술 애호가(한재원), 이탈리아 와인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장하리), 와인을 자주 마시는 주류업 관계자(김국화), <한겨레>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을 연재하는 기자까지 6명이 참여했다. 이마트의 레드와인 2종인 ‘도스코파스’ 레드블렌드와 카베르네 소비뇽, 롯데마트의 레드와인 2종인 ‘나투아’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 등 초저가 레드와인 4종의 라벨을 가리고 번호를 매겨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5천원이 안 되는 가격을 고려해, 1점부터 5점까지 점수를 매긴 결과 나투아 카베르네 소비뇽, 도스코파스 레드블렌드 순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레드와인 4종 중 하나를 사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나투아 카베르네 소비뇽이 3표, 도스코파스 레드블렌드가 2표, 나투아 메를로가 1표를 얻었다.
이마트가 도스코파스 레드와인 2종의 후속작으로 4월 중순에 내놓은 도스코파스 샤도네이(유일한 화이트와인이라 블라인드 테스트는 하지 않았다)는 참석자 전원에게 높은 평가(평균 4점)를 얻었다. “4900원이라는 가격에 이 정도 맛이면 호불호가 없을 듯하다”(박정령), “시원하게 마시면 병나발 불고 싶을 것 같다”(한재원), “잔디밭 와인으로 적절하다”(장하리) 등의 평이 나왔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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