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있는 노이뮌스터 동물원. 매년 15만 명이 찾는 이 동물원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상계획으로 ‘동물 안락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독일 정부가 3월 중순 전국에 봉쇄 조처를 내놓은 뒤 방문객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운영비 대부분이 방문객 입장료였던 터라, 동물원은 현재 변변한 수익이 없어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등 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노이뮌스터 동물원의 페레나 카스파리 국장은 독일 등과 한 인터뷰에서 4월 말 재개장했을 때 손실 규모를 17만5천유로(약 2억3400만원)로 봤다.
동물에게 제대로 사료를 공급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노이뮌스터 동물원이 마련한 비상계획에는 순서를 정해 동물 100여 종, 700마리를 안락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악의 경우, 일부 동물은 도살해 다른 동물의 먹이로 쓴다는 계획이었다. 염소와 사슴이 안락사 목록 상위에 올랐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동물로 북극곰 ‘비투스’가 정해졌다. 이 동물원엔 알파카, 사슴, 스라소니, 물개, 거북이 등이 있다.
사료 부족해 죽어나가는 동물들동물원에서 사육하던 동물을 도살해 다른 동물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계획을 짠 독일의 사례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지만, 코로나19가 동물원 동물까지 위기로 내모는 현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서울대공원은 코로나19 이후 방문객이 현저히 줄었다. 서울대공원은 동·식물원 면적이 242만㎡로 넓어, 상대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해 운영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1~3월 입장객 수는 약 13만2800명으로, 2018년 같은 기간 23만4천 명(2019년은 20만7천 명)과 비교해 10만 명가량 줄었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미세먼지 등 다양한 영향이 있어, 단순히 코로나19 탓이라고 할 순 없다”면서도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공원은 정부가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2월 4주차부터 실내관은 문을 닫고 야외 동물원만 운영해왔다.
서울대공원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영동물원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지만, 입장료 수익으로만 운영되는 민간동물원, 특히 소규모 실내 동물원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받은 충격파는 셌다. 7개층에 카페와 식물원, 실내 동물원을 함께 운영하던 부산의 ‘위드쥬’는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돼 4월 문을 닫았다.
2015년 개원해 1년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해온 경남 ㄱ동물원도 코로나19가 퍼진 뒤 관람객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ㄱ동물원은 2월부터 주중·주말 모두 휴관하다가 3월 말부터 주말에만 방문객을 받고 있다. 보통 봄철이 시작되는 4월 주말엔 1500~2천 명이 동물원을 찾았지만, 현재 방문객은 100~200명 정도다. 그에 따라 인력도 줄였다. 1월 말부터 직원의 약 10~20%, 코로나19가 심각해진 2월 중순부터는 50%가 단축근무를 한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냉혹한 현실은 원치 않게 철창에 갇힌 동물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입장 수익이 줄어 운영이 어렵자 동물원이 동물 먹이양을 줄였다. “원래 남길 정도로 넉넉하게 주던 먹이도, 식판을 깨끗하게 비울 정도만 준다. 예를 들어 사자에게 닭고기 100g을 줬다면 60~70g으로 줄이는 식이다. 최소한의 영양 공급만 하고 있다.”(ㄱ동물원 관계자) ‘덕분’과 ‘때문’으로 갈리는 입장 사이에서 동물 먹이 구매비는 한 달 평균 500만~600만원에서 300만~400만원으로 줄었다.
배고파서였을까, 인력이 줄어 관리를 못 받아서였을까. 동물이 죽어나갔다. 2월 말엔 10살 수컷 원숭이가 급사했다. 잘 죽지 않는다던 원숭이였다. 두세 마리씩 새끼를 낳던 염소가 겨우 한 마리 낳은 새끼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었다. 토끼, 양, 염소, 캥거루 새끼도 줄지어 죽음을 맞이했다. 봄이면 태어나는 여우 새끼는 올봄엔 생기지 않았다. 원인은 모른다. “동물 상태를 자주 확인해 수의사를 부르든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든지 해야 했는데 관리 인력을 줄여서….” ㄱ동물원 관계자가 흐린 말끝엔 자책과 변명이 묻었다. “개장 이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을 맞은 ㄱ동물원엔 80종 240마리를 돌볼 동물원 소속 수의사가 없다.
마구잡이 폐업으로 멸종위기종 폐사도“일시적으로 입장료 수익이 없으면 타격이 있을 순 있지만, 단기간 수입이 없어서 동물을 굶겨 죽여야 한다면 애초에 사업하지 말았어야 한다. 동물원은 큰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닌데도 난립하고, 동물체험 같은 동물 학대 요소가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익을 보완한다. 그러다 입장 수익이 없으면 문을 닫는다. 얼마나 비윤리적인가.”(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ㄱ동물원의 “가장 안 좋은 상황”은 단순히 바이러스가 만든 것일까. 동물보호단체들은 코로나19는 방아쇠가 됐을 뿐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터질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경영난으로 폐원한 동물원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 진행 중인 곳도 있다.
2015년 8월 경남 창원에 있던 실내동물원 ‘줄루랄라’는 경영이 악화돼, 개장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당시 동물원 현장을 찾은 동물자유연대는 전시장 한쪽과 쓰레기통에서 왈라비, 코아티, 앙고라토끼 등의 사체를 발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당시 “모두 17종류 26마리의 동물 사체를 발견했으며, 국립생물자원관이 확인한 결과 그중 15마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CITES)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그보다 2개월 전 인천에선 빈 동물원에 남겨진 다람쥐와 철갑상어 등 약 30마리가 집단 폐사 위기에서 구출된 적이 있다. 조희경 대표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파충류는 미라처럼 껍질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필요로 부적절한 서식 환경에서 학대당하는 삶을 살았던 동물원 동물은, 인간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죽임을 당하는 셈이다.
현재 폐원 위기에 처한 곳도 있다. 부산에서 2014년 문을 연 ‘삼정더파크’는 4월25일부터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삼정더파크를 운영하는 삼정기업은 동물원 매수 협약을 맺은 부산시가 동물원 안에 개인 땅이 있다는 이유로 매수를 거부하자, 한 달 전 비정규직을 포함한 ‘더파크’ 직원 50명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냈다. 삼정 쪽은 운영 중단 이후 “동물을 굶길 순 없으니 (최소 인력을 남겨) 먹이를 주겠다”고 밝혔지만,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동물이 줄어든 인력 탓에 제대로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운영 중단이 폐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부산시는 “아직 삼정더파크로부터 폐원 신고는 받은 게 없고, 운영 중단 이후에도 삼정 쪽에서 동물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물원이 폐원할 때는 지자체에 폐원 신고를 하고 계획에 따라 동물을 처분해야 하는데, 폐원하더라도 “요즘 같은 불경기엔 동물의 분양과 판매가 쉽지 않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동물은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다”(ㄱ동물원 관계자). 지자체에선 폐원한 동물원의 동물이 생태계에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동물 이력(다른 동물원 이송, 개인 판매, 안락사 등)을 점검한다. 하지만 과태료가 500만원 이하에 불과한 탓에 폐원 신고조차 하지 않고 문 닫는 동물원도 있어 추적이 어렵다. 환경부 요청으로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19 상황 이후 동물원 운영 상태를 점검한 경기도는 폐원 신고 없이 문 닫은 동물원을 찾아 강제 폐원할 예정이다. “폐원 신고 전에 이미 동물을 다 없애버린 경우도 있다. 멸종위기종이 아닌 일반종은 거래 기준이 없어 인터넷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어느 환경으로 흘러갔는지 모르고, 폐사하더라도 무슨 병 때문에 죽었는지 알 수 없다.”(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4월 현재 환경부에 등록된 동물원 수는 108곳이다. 서울 5곳, 제주도 12곳, 경기도가 20곳으로 가장 많다. 여기서 동물원은 흔히 떠올리는 공영동물원뿐만 아니라 실내 동물원, 카페형 동물원을 포함한다. 2016년 제정돼 2017년 5월부터 시행 중인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을 보면, 보유한 동물종이 10종 넘거나 개체 수가 50마리 넘으면 동물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동물원법이 제정되면서 이전엔 박물관 등으로 등록됐던 동물원의 설립과 운영 근거는 마련됐지만, 운영자 자격은 따지지 않아 동물원 환경과 그곳 동물의 복지는 법 시행 뒤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동물원법이 사육 환경과 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담지 않은 탓이다. 사업자는 ‘질병관리’ ‘서식환경’ ‘안전관리’ 등 4대 계획서를 첨부해 각 지자체에 내기만 하면 시설이 미비하더라도 동물원법상 ‘동물원’으로 인정받는다.
이형주 대표가 말한다. “야생동물을 서식지가 아닌 곳에서 집약 사육하기에 동물원은 본질적으로 동물복지와 어긋난다. 따라서 동물원을 전문적인 곳에서 운영해야 하는데 한국은 사업자등록을 내듯이, 서류상 기본 요건을 갖추면 돼 수준 미달 동물원이 생긴다.” 상업 목적으로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지는 동물원에서 동물은 복지는커녕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동물보호단체 쪽이 현행 동물원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이유다.
시멘트 감옥을 어떻게 부술까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1월 이상돈(무소속) 의원실과 함께 발간한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유럽연합(EU)·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 동물원 관련 법을 시행하는 국가는 동물원을 운영하려는 사업자가 일정 기준을 갖출 경우 정부가 허용하는 허가제(면허제)를 택하고 있다. 영국은 검사관이 시설을 점검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면, 지방 당국이 이를 검토해 면허를 발급한다. 또 정기·부정기적 검사를 해서 동물원이 운영 지침을 지키는지 확인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정부의 면허 없이 동물 전시 시설을 운영하면 6개월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대 국회 때 동물원 허가제 관련 법안이 6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물을 가두고 관찰하는 19세기 방식을 넘어 21세기 동물원의 역할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법의 사각지대 속에 동물원이라 부를 수 없는 ‘동물원’들이 오락·유흥 시설로만 존재한다. 재정 악화로 동물이 다 팔려나간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다룬 영화 에서 수의사 ‘소원’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해도, 동물에게 동물원은 그냥 시멘트 감옥이죠.” 시멘트 감옥을 어떻게 깨부술지는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글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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