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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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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설렁설렁 살어리렷다

열심·집착·과로·인증·전력·계획 내려놓은 6인6색 2020년
등록 2020-01-02 11:23 수정 2020-05-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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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과 마음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나. 나와 자연이 하나 되는 것. 마음의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 원수도 사랑하는 것. 성인도 수련과 고행과 기도를 통해 닿을까 말까 한 최고의 경지다. 그나마 장삼이사가 넘볼 수 있는 경지는 ‘설렁설렁’의 상태.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움직이는 모양’이라니. 다들 ‘무엇을 이루려고 애쓰거나 우겨대며’ 아등바등 살 때, 나는 목적이 있는 듯 없는 듯,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후 불어 꿀떡 먹고 꺽!>(장세이 지음)에서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얽매이는 바가 없으니 이 얼마나 높은 경지인지 매사에 아등바등 허덕이는 범인은 가늠하기 힘들다. 설렁설렁 가벼이 하는 일은 술술 풀리고 착착·척척 진행된다”고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2020년, 이토록 어려운 경지를 넘보는 사람들이 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의 트랙에서 탈출해, 사방에 곁눈질해가며 제 속도대로 걸어가보겠노라고 야무지게 마음먹은 이들이다. 사연은 제각각. 그냥 너무 지쳐서, 정말 하고픈 일을 찾기 위해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아이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 아득바득 흘러가는 세상이 천지개벽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나 혼자라도 설렁설렁 살겠다는 사람들의 새해 결심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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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고 무작정 열심히 안 살래”

대학교 4학년인 나영씨는 올해 “질릴 때까지 놀” 작정이다. 최소 6개월은 “정말 쓸데없는 일”만 하며 빈둥거릴 생각이다. 학교에는 출석하더라도, 취업과 상관없는 짓만 골라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일 철학 원서를 읽기 위해 독일어 공부 시작하기, 밤에 자전거 타기, 탭댄스 배우기.

스물세 해 인생에 경로 이탈은 처음이다. 고등학생 때 방송사 예능 프로듀서(PD)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가성비 따져가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아왔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선 ‘순수공’(스톱워치로 쟀을 때 학교 수업을 포함해 공부한 총시간)으로 11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었고 대학에 와서는 방송국 활동, 토익 점수 만들기, 영국 교환학생 연수, 취업 스터디, 언론사 인턴으로 취업 준비의 정석을 밟아왔다.

1초도 24개로 쪼개 살았다. “영상 자막을 1프레임(1초에 24프레임) 앞에 넣으면 호흡이 급하진 않을지, 1프레임 뒤에 넣으면 호흡이 느리진 않을지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다. 남들이 신경도 안 쓰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면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나는 치열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쉼표가 사라질수록 물음표는 늘어만 갔다. ‘영국에선 오후 4시면 카페, 저녁 8시면 마트가 문 닫는데 한국에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인턴도 힘든데 PD가 되면 잘 견딜 수 있을까.’ ‘놀면 지구라도 멸망하는 걸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정답을 찾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재충전하고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멈춰선 사이 친구들이 너무 앞서나가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일단 아르바이트로 모아놓은 500만~600만원을 다 쓸 때까지는 충분히 먹고, 쉬고, 놀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부터 다시 차분하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더 이상 “불안하다고 무작정 열심히 하지는 말기로”(<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지음) 굳게 마음먹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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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걱정 내려놨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시험에서) 9등급 나와도 돼. 100점 안 맞아도 돼.” 2019년 초,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를 앞둔 딸에게 은주씨는 말했다. 내심 ‘설마 9등급을 맞아 오겠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딸은 정말 9등급을 맞을 기세로, 공부를 멀리하고 게임과 스마트폰에 몰두했다. 엄마는 미칠 노릇이었다. 처음엔 “내일 시험 아니야?” “불안하지 않니?” 좋게 이야기하다가, 나중엔 화가 치밀어 “너무 심하지 않냐!”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아이 인생, 나는 내 인생”이니 딸의 대학 입시에 몰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엄마는 점점 딸과 “물아일체”가 되어갔다. 2019년 11월, 딸이 모의평가에서 2~6등급으로, 성적을 생각보다 잘 받아왔을 때는 성적표를 냉장고에 붙여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기필코 “아이에게 더 느슨해지기”로 했다. “뮤지컬 배우를 하고 싶으니, 뮤지컬을 우선해야겠지만 성적도 등한시하지 않겠다”는 딸의 선택을 무턱대고 믿어주기로 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된다”는 평소 소신을 되뇌고 되뇌면서. 딸에게만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암 선고를 받은 은주씨는 “우울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병원 치료를 받는 ‘명랑투병’”을 시작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딸이 무조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욕심은 살짝 놓았지만, 그래도 좋은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바람은 더 커졌다. 은주씨와 남편은 “아이가 앞으로 밥은 벌어먹고 살겠나” 하는 평생의 불안과 걱정을 접어두고, 딸이 스무 살이 되는 해 정서적·경제적으로 독립하도록 연습시키고 있다. 연말부터 딸은 휴대전화 없이, 웬만한 곳은 혼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겨울방학에는 첫 아르바이트도 하기로 했다. 그래도 딸에겐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 사업가→충청도 시민활동가

하루 13시간씩 주 78시간. 기현(가명)씨는 미국의 세탁소에서 한 달 351시간씩 3년을 근무했다. 미군으로 코소보전에 참전하고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때보다 힘든 시기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세 곳에 세탁공장을 차려 스무 명의 직원과 함께 7년을 더 일했다. “돈을 좇아 죽을 둥 살 둥 사는 동안” 미국에 건너온 17살 소년은 40살이 됐다.

“앞으로 40년은 돈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기현씨가 4월, 한국에 들어온다. 대충 살겠다고 했어도, 계획이 다 있다. 충청도의 작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사는 시민활동가. 생의 대전환은 두 권의 책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의사 빅터 프랭클이 쓴 <삶의 의미를 찾아서>, 그리고 조지 오웰이 5년 동안 빈민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도시 빈민 문제를 드러낸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이타적인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컸다’는 빅터 프랭클의 통찰력과 기득권을 좇지 않은 조지 오웰의 무모함을 조합하니 ‘시민단체’라는 길이 그려졌다.

다른 갈래의 길도 낼 생각이다. 시민운동가를 포함해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비영리 온·오프라인 공간 만들기. 글 배우기. 돈 안 되는 공부 해보기. 그 끝에 뭐가 나올지는 기현씨도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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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인증샷 인생 18년’

카페라테 위에 우유 거품으로 그려진 하얀 하트. 찰칵. 스마트폰에 사랑스러운 하트를 담는다. ‘손하트’도 함께. “회사 일로 밖에 나왔는데, 혼자 커피숍에서 잠시 노는” 달달한 시간을 자축하는 세리머니다. 그러고는 커피와 손하트와 행복한 시간을 친구에게 전송. ‘나 땡땡이치고 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

손하트와 전송.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안 보여줄 사진은 무의식적으로 안 찍겠다’고 결심한 소미(가명)씨의 실천이다. 2020년에는 ‘인증 인생 18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21세기 초반, 대학교에 입학해서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친구, 음식, 소품 사진들은 글과 함께 매일 ‘싸이월드’에 올렸다. 2012년 스마트폰을 구입해서는 무의미한 ‘인증질’이 시작됐다.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먹지 마!” 하고 음식 사진부터 찍었다. 길거리 예쁜 장식, 공연장의 간판과 팸플릿까지. 하루 열 장, 스무 장 계속 찍어댔다.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문제가 생길까 싶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공유하지도, “귀찮아서” 스스로 다시 꺼내보지도 않았다.

언제부턴가 소소한 재미, 흩어지는 순간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일이 되어갔다. 하나도 즐겁지 않고, 의무적으로 처리하는 업무. “친구와 음식을 먹으며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건데, 인증샷만 찍고 있으니 오히려 그 순간이 방해받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친구들의 핀잔도 거세졌다. 스마트폰의 저장 용량 관리도 큰일이 됐다. 친구와 가족사진은 주기적으로 클라우드로, 외장하드로, 플래시메모리카드(SD카드)로 옮겨지고 저장됐지만, 먹을 수 없는 음식과 만질 수 없는 소품은 스마트폰에 잠시 머물다 삭제됐다. 이제 닥치는 대로 인증부터 하고 보는 습관을 삭제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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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원서는 그만

정희(가명)씨는 ‘원서 절필’ 선언을 했다. 2017~2019년 시청·구청·공공기관의 행정사무직(무기계약직) 신입 공채에 넣은 원서만 100통 정도. 취업 준비 온라인 카페에 합격자가 올린 ‘실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참고해 40~50번씩 고친 원서들이었다. 그 덕분인지 100번 중 70번은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해 면접까지 봤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는 못했다. 결국, 101번째 원서를 내지 않기로 정희씨는 결심했다. 나이 앞 숫자 ‘4’와 ‘5’는 느낌이 확 다르니까.

51살 정희씨는 3년 전, 아이 둘을 다 키우고 나서 구직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해 무역회사에서 통·번역을 했던 터라 “능력과 경력이 있으니 (나이 제한이 없는) 국가기관에 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벌써 스무 해 전의 일이었다. 또래 면접관은 정희씨에게 “그사이(경력 단절 기간)에 뭐 했냐”고만 물었다. “젊은데 이상(꿈)이 뭐냐” “입사하면 어떻게 일하겠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3년간 전력질주한 끝에 남은 것은 속상함과 아쉬움과 비참함뿐.

올해는 무작정 놀면서 “내년에도 또 놀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고 딸은 외국으로 나간 ‘절호의 기회’에 “홍콩 여행”도 가고 “자기계발서나 취업 준비서가 아닌 에세이와 시도 실컷 읽기로” 했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는 것의 반대말은 ‘포기’가 아니라 ‘내려놓고 흘러가게 두는 것’”(<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댄싱스네일 지음)이라는 말처럼, 그냥 유유자적 흘러가다보면 어딘가 닿지 않을까 정희씨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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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안 되는 삶… 계획을 디폴트

‘플랜맨’ 선미(가명)씨에겐 올해 계획이 없다. 새해 달력에 부모님 생일, 남편 생일 따위 일정을 빼곡히 적어넣는 일부터 집어치웠다. 습관적 계획인 ‘몸무게 3㎏을 빼겠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취업하고 결혼한 30대가 되니 결심할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대학 입시와 취업 준비를 할 때나 직장생활을 할 때나 촘촘하게 계획을 짰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실한 플랜맨은 새해가 오면 습관적으로 결심을 했다. 그럴싸한 새해 목표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피아노로 한 곡을 치겠다’는 2019년의 계획도 어찌 보면 억지로 만들었다. “새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 때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무척 재밌게 봤으므로. 그러나 악보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밖에 못 읽는 초보에게 <라라랜드> 영화음악 연주는 무리였다.

올해는 또 실패할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느니 차라리 “과거 사진을 불태우겠다”고 선언했다. ‘계획 디폴트’ 계획. 우연히 뜨개질하다가 즐거우면 가족의 목도리를 휘뚜루마뚜루 짜주리라. 올해 안에 뜨개질로 온 가족 목도리를 다 짜주겠다고 낑낑대다가 실패하고 또 결심하는 바보짓도 그만두리라.

“하나의 계절이 오면/ 하나의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봐요/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마세요./ 그냥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좋아하는 거 많이 하면서 살아봐요.”(<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 지음) 물론 좋아하는 일도 설렁설렁.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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