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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기대수명 ‘급제동’, 왜?

2018년 82.7살로 전년 수준 멈춤

폐렴 증가, 기록적 폭염, 자살률 증가등 영향 추정
등록 2019-12-18 05:24 수정 2020-05-03 04:29
서울 종로 탑골공원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 종로 탑골공원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한겨레 신소영 기자

‘82.7살.’

대한민국 기대수명 증가가 멈췄다.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1970년(62.3살) 이후 처음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생명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82.7살로 2017년 출생아동의 기대수명(82.7살)과 같았다. 성별로 나눠보면 남자아이는 79.7살까지 살고, 여자아이는 85.7살까지 살 것으로 예상됐다.

한파 영향 폐렴 사망률 3배 증가

“지난해 겨울 기온이 1973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는 등 한파가 심했다. 고령화로 사망률이 높아지는 추세에다 지난해는 특히 한파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2018년 1월, 2월 사망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1.8%, 9.3% 늘어난 것에 근거해 기대수명 정체의 원인으로 추웠던 ‘날씨’를 꼽았다. 폐렴으로 인한 사망 확률 증가도 원인으로 꼽혔다. 2018년 주요 사망 원인 중 폐렴은 10%로 파악돼, 10명 중 1명이 폐렴으로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3.2%)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었다. 암이나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2018년 기대수명 증가의 정체는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통계청 설명을 보면 올해 한파가 다시 불어닥치지 않는 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대여명’은 특정 연령의 인구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의미하는데 해당 연령 인구의 사망자 수, 생존자 수, 사망 확률 등을 이용해 산출한다. 연령이 ‘0살’인 출생아동의 기대여명을 ‘기대수명’이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계속 늘 것이라 믿고 있다. 학계와 정부도 지속적인 기대수명 증가를 점쳐왔다.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해 2030년에 태어나는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90.82살을 기록해 처음 기대수명 90살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장수에 접근하는 국가로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기대수명 증가가 멈췄다. 당국에선 한파로 인한 일시적 정체로 설명했으나 학계에선 ‘충격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국내 기대수명과 불평등 문제 전문가인 서울대 의과대학 강영호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기대수명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최근 기대수명이 줄어 주목받았지만 이들 국가는 변화 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0.2∼0.4살씩 증가 폭을 수십 년 동안 기록해온 한국의 기대수명이 증가를 멈췄다는 것은 큰 문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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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정체 “심각한 보건 위기”

강 교수는 기대수명 증가 정체와 관련해 폐렴 사망이 중요한 요인인 것은 맞지만 이는 혹독한 겨울 날씨 같은 기후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불평등’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폐렴 사망자 증가는 주로 75살 이상 인구에서 일어나는데, 상당수 노인이 요양병원 같은 요양기관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이 모인 가운데 감염되기도 하고, 뇌졸중을 앓고 누워 있다가 기관지나 폐로 이물질이 들어가는 흡인성 폐렴으로 인한 사망도 많은 것으로 보고된다. 요양보호사 수가 부족한 시설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폐렴 사망률이 높은 것이다. 강 교수는 “사회경제적 요소와 기대수명을 같이 들여다보면 나이 많고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폐렴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다. 폐렴은 기대수명을 낮추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기대수명 불평등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10년 동안 꾸준히 늘어난 폐렴 사망률로 기대수명 증가 멈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 정밀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몇 가지 주목할 내용이 있다. 첫째는 기록적인 폭염이다. 2018년엔 한파뿐만 아니라 폭염 일수도 31.5일로, 1973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제1288호 ‘2018년 폭염 사망자 48명 아닌 160명’ 참조). 고온이 심혈관과 호흡기 질환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은 자살률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해이기도 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11년 10만 명당 31.7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자살률은 2012년 자살예방사업 확산 이후 꾸준히 줄었다. 2017년에 24.3명을 기록했지만 2018년 26.6명으로 2.3명 늘어나 다시 반등했다. 2018년 자살 통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젊은층에서 자살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연령대로 보면 80살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증가했는데, 특히 10대에서 전년 대비 22.1% 늘었고, 30대(12.2%), 40대(13.1%)에서도 크게 늘었다.

2014년(78.9살)에서 2017년(78.6살)까지 3년 잇따라 기대수명 감소를 경험한 미국에서도 자살률 증가가 주목받았다. 미국 가정의학회(AAPF)는 2018년 발간한 자료에서 ‘약물 오·남용과 자살’을 기대수명 감소의 원인으로 설명했다. 학회는 “2017년 한 해 7만237명이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해 전년 대비 9.6% 증가했고, 자살률은 10만 명당 13.5명에서 14명으로 늘어 기대수명 감소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산업화 이후 100년 동안 기대수명이 빠르게 늘었지만 2011년부터 기대수명 증가가 정체됐던 영국에선 일찍부터 기대수명이 보건의료계의 관심사로 자리잡았다. 2000~2015년 출생아동의 기대수명은 여성은 5년마다 1년, 남성은 3.5년마다 1년이 늘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지만 2015년 이후 둔화됐다. 영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에서 2018년 사이 기대수명에서 남성과 여성이 각각 4.7주, 3.1주 느는 데 그쳤다. 이를 영국의 어느 학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보건 위기’라고 불렀다.

영국에선 기대수명 증가 정체와 관련해 사회경제적 원인이 주목받고 있다. 런던보건대학원 루신다 히암 연구교수는 영국 일간지 과 한 인터뷰에서 “영국의 기대수명 증가 정체는 긴축재정 실시(2010년) 이후 시작됐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건복지 예산 감소가 기대수명 감소를 초래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이 지적을 반영해 지역별 건강 격차와 빈부 격차에 따른 기대수명의 차이를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

병 없이 살아가는 건강수명 지속 감소

한국에선 기대수명 증가 정체도 문제지만 건강수명의 지속적인 감소도 큰 문제다. 건강수명은 질병을 앓는 기간을 빼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의미하는데 2012년부터 격년 단위로 파악하고 있다. 2012년 65.7살이던 건강수명은 꾸준히 줄어 2018년 64.4살을 기록했다. 기대수명 통계와 비교하면 2018년에 태어나 85.7살까지 사는 여성은 20.8년 동안 질병을 앓으며 살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대수명 증가 정체의 원인을 ‘기록적 한파’와 ‘폐렴 사망자 증가’로 국한해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대수명 증가를 가로막는 문제와 건강수명 감소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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