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주변은 지금 병원과 어울리지 않는 펼침막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촉구부터 문재인 정부 규탄까지 날선 정치적 구호가 적힌 것들이다. ‘태극기 부대’를 비롯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내건 이 펼침막들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지난 9월16일 오십견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박 전 대통령은 11월14일 현재 59일째 이 병원에 머물고 있다. 병원 쪽은 9월17일 박 전 대통령의 왼쪽 어깨를 수술한 뒤 “회전근 인대 파열에 동결견(오십견)까지 진행되는 등 복합적인 증상으로 2~3개월가량 재활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병원 쪽은 “일단 8주 동안 경과를 지켜본 뒤 퇴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어깨 수술 입원은 특혜그로부터 8주가 지난 지금 박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로 돌아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는 “치료가 다 끝나면 원칙대로 처리(구치소로 돌려보냄)할 것”이라면서도, “병원 쪽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서울성모병원 쪽은 박 전 대통령을 구치소로 돌려보낼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수술을 집도했던 김양수 주치의(정형외과)는 11월13일 과 한 통화에서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퇴원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퇴원 여부는) 아직까지 고려해보지 않았다. 나중에 결정되면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힐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가 박 전 대통령의 어깨 수술을 위해 입원을 결정한 것은 명백한 특혜였다. 교도소에 수감된 수용자 가운데 형집행정지 등의 조처 없이 박 전 대통령처럼 장기간 병원에 입원한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조국 대전’(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모든 이슈를 삼킨 탓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의 입원이 형집행법 제37조(수용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교정시설 밖에 있는 의료시설에서 진료받게 할 수 있다)에 따른 조처라고 주장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교도관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 병원에 감방을 하나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형집행정지 상태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치소 밖 병원에서 잠시 치료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병실에 입원한 것은 형을 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은 앞서 4월과 9월 두 차례 형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모두 불허됐다. 전문의와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외부 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 형집행정지를 할 만큼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판정이 두 차례나 내려진 것이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입원은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법조인은 “외부 심의위원회가 형집행정지를 불허하자 꼼수를 쓴 것 같다. 나중에 불법 시비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제471조)은 ‘형집행으로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상태’ 등 형집행정지의 조건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합법 같은 불법박 전 대통령은 서울성모병원 21층 브이아이피(VIP) 병실에 입원해 있다. 병실 요금은 하루 140만원 정도인데 박 전 대통령 쪽이 전액 부담하고 있다고 병원 쪽은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 재활기계를 이용한 수동운동 등 재활치료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정 당국은 박 전 대통령이 외부 인사와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교도관 2~3명을 배치해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지도력 공백)을 막기 위해 내년 4월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여당으로서는 박 전 대통령의 재수감이 자칫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까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10월31일 문 대통령의 모친상 때 문상을 간 홍문종 우리공화당 대표가 언론에 공개한 일화는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당시 홍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려를 요청하자, 문 대통령이 ‘구치소 내 책상 반입 및 병원 입원치료 등 내가 박 전 대통령의 상황을 챙기고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것이다. 우리공화당은 당시 보도자료를 내어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내지 형집행정지를 간곡히 부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선 전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옛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으로 징역 2년이 확정된 기결수 신분이지만, 본류인 국정 농단 사건은 8월29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공직자인 피고인의 뇌물 혐의를 다른 혐의와 구분해 선고하라”며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하라고 했다. 파기환송심이 총선 전에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피고인의 형이 확정되지 않으면 아예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
배려할 이유는 없다지만이런 맥락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지금처럼 병원에 계속 머물다가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이 확정되기 전에라도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병원 치료가 끝나는 대로 구치소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병원 치료가 끝나면 구치소로 돌려보낸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정당한 절차를 어겨가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을 배려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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