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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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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장사를 멈춰라”

터키군의 쿠르드 민병대 공격에 사용된 한국산 무기

무기 수출 규모 11위 한국, 난민인정률은 139위
등록 2019-10-21 09:39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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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장사 멈춰라.”

서울 용산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10월15일 오후 6시께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만찬 행사장 앞에서 ‘ADEX 저항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쳤다. 활동가들은 ‘무기상인 돌아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피 묻은’ 지폐 모형을 공중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서울 ADEX는 한국 군수산업의 발전과 무기 수출을 목적으로 2년에 한 번 여는 국제 전시회다. 사람의 목숨을 앗는 무기 수출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ADEX 저항행동은 2013년부터 전시회장을 찾아 ‘전쟁 반대 퍼포먼스’를 하는 등 단체행동을 해왔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이 ADEX 저항행동에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10월19일 경기도 성남에서 열리는 서울 ADEX 무기전시회장을 찾아 행사를 규탄하는 단체행동을 벌일 계획이다. 10월19일과 20일은 전시회가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라크, 시리아, 예멘… 피 묻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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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X 저항행동이 단체행동에 나설 때마다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돈 모형을 뿌리는 퍼포먼스는 ‘무기’와 ‘자본’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한다.

한국 자본도 예외가 아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이하 SIPRI)가 2018년 발표한 자료를 기준으로 세계 무기 수출 규모 11위 국가인 한국에서 생산한 무기는 이라크전쟁,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터에서 사용돼 생명을 앗았다.

최근에는 터키군이 쿠르드 민병대(YPG)를 공격하는 데 한국의 자주포 기술을 도입해 만든 T-155 프르트나(폭풍)가 사용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터키 국방부가 10월10일(현지시각) 홈페이지에 ‘평화의 샘 작전 개시’라는 설명과 함께 올린 사진을 보면 T-155 프르트나의 포격 장면이 담겼다. 터키군은 이날부터 시리아 북동부에 자리잡은 쿠르드 민병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착수했다. 터키 국방부는 해당 무기가 어느 지역을 포격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날 시리아 북부의 국경도시 탈아브야드가 터키군의 폭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터키군의 초기 공습과 포격으로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 8명이 숨졌고, 위중한 부상자가 더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터키의 공격이 개시된 이날 시리아 북동부에서 6만 명 넘는 사람이 피란길에 올랐고, 이재민 수십만 명이 추가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에서 수출된 무기가 전쟁에 이용되고, 무고한 민간인 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T-155 프르트나는 한국의 자주포인 K-9의 파생형 무기다. K-9은 1997년 터키로 수출되기 시작했는데 방위산업체인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은 2001년 기술이전 방식으로 350문 수출 계약을 맺었다. 한국의 자주포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SIPRI 자료를 보면 2000~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 점유율에서 한국 K-9 자주포가 48%를 차지했다.

터키는 거액의 면허생산료를 한국 쪽에 지급하고 K-9 자주포 부품과 기술을 받아 터키 모델인 T-155를 개발해 자체 생산했다. 이렇게 생산한 T-155는 지난해와 2016년 8월 터키가 쿠르드족 거주지인 아프린 지역을 공격할 때도 사용됐다.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터키는 한국 방위산업의 주요 고객이다. 지난해에는 터키군이 시리아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 한국산 120㎜ K-277 대전차고폭예광탄을 사용하는 장면이 담겼다. 한국의 방위산업체 풍산이 생산한 것으로 알려진 포탄 탄피에는 ‘취급 주의’라는 노란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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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글로 ‘취급 주의’ 적힌 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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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2011~2016년 한국에서 최루탄 380만 발도 수입했다. 2013년부터 터키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터키 정부는 최루탄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터키의 시민사회단체는 최루탄에 맞아 9개월 동안 사투를 벌이다 끝내 목숨을 잃은 15살 소년을 포함해 2014년 한 해 동안 최소 8명이 한국산 최루탄에 목숨을 잃고, 45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파악했다. 터키 시민사회단체는 에 한국산 최루탄 반대 광고를 내는 등 분투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터키에 최루탄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한 방위산업체가 터키 현지로 생산라인을 옮겨 계속 최루탄 생산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한국에서 수출된 각종 무기가 약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터키 정부는 극단적인 무장세력을 공격한다고 하지만 무기는 사람을 가려 공격하지 않는다. 어린이, 노인 등 무고한 민간인도 피해를 본다. 시리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은 과의 통화에서 “극단적인 무장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은 무고한 시리아 주민들을 폭격이 이뤄지는 분쟁지역에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터키의 공격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무기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10월15일(현지시각) “터키가 자제력을 발휘해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끝내야 한다”며 “시리아에서 사용될 수 있는 무기 수출과 관련해서 추가 승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국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 캐나다 등도 터키에 무기 수출 중단을 밝혔다. 터키의 우방국이던 미국도 “터키 정부의 조치는 무고한 민간인을 위협하고 있고, 이슬람국가(IS) 퇴치 움직임을 약화시키는 등 지역 정세를 불안하게 만든다”며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SIPRI가 분석한 내용을 보면 지난 10년 동안 터키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무기를 수출한 한국은 터키의 쿠르드 공습과 관련한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한국 언론과 여론은 터키 공습을 규탄하면서도 공습에 사용되는 한국산 무기는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생산된 무기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국가들에 판매돼 여러 전쟁 현장에서 사용된다는 소식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판매된 무기는 예멘, 시리아 등지에서 사용돼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다. 무기 사업을 계속해온 미국과 러시아와 달리 중동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이 더 이상 중동 국가들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동의 평화 유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한국의 대중동 무기 판매 중단을 촉구했다.

터키가 한국산 무기 등으로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을 공격해 치안이 불안해지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에는 1300명 넘는 시리아인이 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들 중 4명만 법적 난민으로 인정했다. 세계 11위 무기 판매국인 한국이 난민인정률은 139위인 현실은 비극성을 더한다.

[%%IMAGE3%%]<font size="4"><font color="#008ABD">진보-보수 넘는 무기 수출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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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보도로 예멘 내전 현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사용된 사실이 알려졌지만(제1236호 ‘예멘 전쟁터의 메이드 인 코리아’ 참조), 여론의 시선은 차가웠다.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면 “군사 동맹국에 한국이 우수한 기술로 개발한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이 무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까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눈에 띄었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산업 논리로 무기 수출을 장려하는 데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2020년까지 무기 수출 세계 7위를 목표로 분쟁 지역에 맞춤형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공언했고, 박근혜 정부는 “방위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키우겠다”고 장려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방위산업을 4차 산업으로 내세웠다. 2017년 서울 ADEX 개막식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방위산업도 첨단무기 국산화의 차원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인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더 많은 일자리로 이어질 것이고, 방위산업이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발전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강력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2019년 서울 ADEX는 34개국 430여 개 방위산업체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기획됐다.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학생의 날’을 마련해 서울과 경기도 성남 지역 초·중·고교 학생들을 초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서울과 경기도 교육청은 이 공문을 받고 응답하지 않았지만 성남시의 3개 학교(2개 고등학교, 1개 초등학교)가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ADEX 저항행동은 “15살 미만의 아동과 청소년이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것을 유엔아동권리협약에명시하고 있다”며 서울 ADEX에 학생들이 단체 관람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리도 전쟁의 가해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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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세계 각국의 군대가 몰려오고 각종 무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던 것이 불과 70년 전이다. 수십만 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던 한국이 이렇게 대규모 방위산업 국가로 성장한 모순적인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반전 활동가들은 한국이 해결되지 않은 분단 상황을 이유로 여전히 스스로를 전쟁 피해자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 쭈야는 “한국에선 남북 분단 상황과 국가 안보가 무기 생산의 ‘면죄부’처럼 활용되고 있다. 외국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무기를 생산한다고 해놓고, 다른 나라에 무기를 수출하면서도 전쟁에 가담하는 가해 국가라고는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등 반전 단체들은 10월 중 터키로의 무기 수출을 중단하는 캠페인을 벌일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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